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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거품론’이 거품

프로야구시장 성장세에 비해 합리적인 선수 연봉 인상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18-12-24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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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시리즈가 한창이던 11월 서울 잠실야구장의 모습. [동아DB]

    한국 시리즈가 한창이던 11월 서울 잠실야구장의 모습. [동아DB]

    ‘돈, 돈, 돈바람. 요즘 우리 야구계에는 돈, 돈, 돈바람이 거세다. 어마어마한 돈다발이 날아다닌다. 이쯤 되면 ‘야구 재벌’이라는 말이 나돌 법하고 내년, 내후년으로 넘어가면서는 (선수가 희망 연봉을) 또 얼마나 부르게 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우리 선수들이 부와 명예를 함께 누릴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매우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 위태위태하고 조마조마한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 프로야구가 이럴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는가. 이렇게 튼튼한 기반을 구축했는가. 

    구단 관계자, 선수 할 것 없이 차분히 머리를 식히고 주위를 한번 돌아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돈, 돈 하면서 너무 들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해본 소리다.’ 

    한 스포츠 전문지 편집국장 출신 언론인이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돈바람 거품이 너무 심하다’고 지적한 칼럼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이 글에 등장한 ‘어마어마한 돈다발’은 얼마였을까요? 정답은 18억 원입니다. 그것도 4년에 총액 18억 원(연평균 4억5000만 원)이었습니다. 2000년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김기태(49·현 KIA 타이거즈 감독)가 삼성 라이온즈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계약 조건이 바로 4년간 18억 원이었습니다. 

    이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이 4년간 18억 원이 ‘어마어마한 돈다발’이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NC 다이노스와 3년간 총액 17억 원(연평균 5억6667만 원)에 재계약한 모창민(33)은 이번 겨울 ‘야구 재벌’ 반열에 이름을 올렸나요? 



    12월 18일까지 계약 총액 18억 원은 역대 FA 계약 규모 순위에서 공동 91위에 해당합니다. 18년 전 18억 원과 현재 18억 원은 가치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분도 당연히 있을 겁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통해 소비자물가지수 기준으로 화폐가치를 환산해보면 2000년 12월 18억 원은 현재 28억1700만 원쯤 됩니다. 

    계약을 맺기 전까지 10년간 통산 타율 0.300(당시 역대 10위), 227홈런(당시 역대 3위), 772타점(당시 역대 4위)을 기록한 타자(김기태)에게 현재 가치로 연평균 7억 원 조금 넘는 돈을 책정한 게 과연 분수와 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을까요? 

    이듬해(2001)에도 ‘FA 거품론’을 지적하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단, 이번에는 톤이 조금 변했습니다. 다음은 당시 나온 기사를 요약 정리한 것. 

    ‘프로야구 FA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스토브리그 최대어로 꼽히는 양준혁(LG 트윈스)을 비롯해 김원형(SK 와이번스), 전준호(현대 유니콘스), 김민재(롯데 자이언츠) 등 4명이 FA 공시 신청 마감일인 (11월) 9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FA 선수로 등록했지만 예년과 달리 각 구단의 반응이 냉담하다.

    거품론은 언제쯤 거품이 빠질까

    NC 다이노스와 총액 125억 원에 계약하며 올해 FA 타자 최대어로 점쳐지는 양의지. 리그 최고 포수로 2018 시즌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동아DB]

    NC 다이노스와 총액 125억 원에 계약하며 올해 FA 타자 최대어로 점쳐지는 양의지. 리그 최고 포수로 2018 시즌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동아DB]

    특히 그동안 ‘FA시장의 큰손’으로 통했던 삼성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올해 FA시장이 개점휴업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2년 동안 42억 원을 FA 선수 영입에 쏟아부은 삼성은 또다시 ‘헛돈’을 들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이해 겨울은 FA 선수들에게 정말 추웠을까요? 그 4명은 총액 63억2000만 원(평균 15억8000만 원)에 계약을 마쳤습니다. 총액과 평균 금액 모두 당시 최고 기록. 1999년에는 5명이 총액 25억2500만 원(평균 5억500만 원), 2000년에는 6명이 총액 60억6800만 원(평균 10억1133만 원)에 계약했습니다. 

    이 기사는 그해 11월 10일자 신문에 나왔습니다. 보통 신문에 나가는 기사를 전날 쓰게 마련이니까 선수들이 FA 신청을 마치자마자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예상했던 겁니다. 예상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2년에도 ‘FA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기사가 나왔고 2003년에는 ‘구단마다 ‘FA 거품’을 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기사가 등장했지만, 이렇게 열심히 우려하는 기자들의 기대(?)와 달리 FA 몸값 총액은 40억 원(2003년 정수근)을 넘어 60억 원(2004년 심정수)까지 올랐습니다. 

    총액 106억 원에 SK 와이번스 잔류를 선택한 최정. 꾸준한 활약으로 현재 KBO 누적 득점 1위를 기록 중이다. [동아DB]

    총액 106억 원에 SK 와이번스 잔류를 선택한 최정. 꾸준한 활약으로 현재 KBO 누적 득점 1위를 기록 중이다. [동아DB]

    이번 스토브리그 때도 FA시장이 열리기 전 ‘구단들 분위기가 예년과는 정말 다르다. 이번에는 양의지(31)조차 대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결과는? NC 다이노스로 팀을 옮긴 양의지(125억 원)는 물론, SK 와이번스에서 6년 더 뛰게 된 최정(31)도 총액 100억 원 넘는 돈에 FA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정도면 인정해야 합니다. FA 몸값에 거품이 있는 게 아니라 ‘FA 거품론’이 거품인 겁니다. 그리고 FA 거품론 기사는 명절 때만 되면 세상에 나오는 ‘차례상 차리는 법’과 똑같이 그냥 ‘달력 기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올해는 기자들이 깜빡 속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KBO에서 9월 말 FA 계약 총액을 4년 80억 원으로 제한하는 제도 변경안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 제안했으니까요. KBO 관계자는 “이 아이디어는 10개 구단이 먼저 의견을 모아 발의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오르지 않았나

    이미 눈치챘겠지만 각 구단이 FA시장이 열리기 전 “이번에는 정말 돈이 없다”고 하는 것도 ‘적자 타령’이라는 레퍼토리일 뿐입니다. 2004년 최종준 SK 단장은 “국내 경제는 계속 하락세인데 지금처럼 각 구단이 선수 몸값을 올리는 것은 프로야구가 공멸하는 길”이라고 인터뷰했습니다. 그러고는 고관절 부상 때문에 원 소속팀 LG 트윈스에서 ‘각서’까지 요구했던 김재현(43·Spotv 야구 해설위원)과 총액 20억7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잘 아는 것처럼 이 투자 결과는 성공 그 자체였습니다. 

    이로부터 14년이 지나는 동안 FA 몸값 총액 최고액은 150억 원(이대호·롯데 자이언츠)으로 7.5배 올랐습니다. FA 몸값 총액만 늘어난 게 아닙니다. 87억2500만 원이던 프로야구 전체 입장 수입은 923억 원으로 10.6배 증가했습니다. 2004년 90억 원이던 프로야구 중계권료도 360억 원(추정치)으로 4배 뛰었습니다. ‘포브스 코리아’에서 2006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프로야구 구단 가치도 첫해 평균 646억 원에서 올해 1400억 원으로 역시 2배 이상 늘었습니다. 

    네, 프로야구는 공멸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각 구단에서 FA시장이 열릴 때마다 지갑을 활짝 여는 건 그만큼 투자 가치가 있다고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구단 결재 라인을 전부 바보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물론 프로야구 인기도 부침(浮沈)을 겪을 것이고, 언젠가 프로야구가 망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전날까지 FA 몸값 거품 이야기로 시끄럽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프로야구가 망한 진짜 이유가 FA 몸값 거품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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