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맘이어도 괜찮아

‘모유 수유’, 그 낯선 전쟁에 대하여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2주 고생하면 수월해져

  • 전지원 토론토대 글로벌사회정책연구센터 연구원

    latermotherhood@gmail.com

    입력2018-12-10 11: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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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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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원 천국.’ 한국의 산후조리 문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듣는 표현이다. 출산 후 약 2주간 산후조리원에서 산후 회복에 힘쓰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독특한 시스템이다. 보름 동안 산후조리사가 아기를 돌봐주고, 식사 준비나 집안일에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산후 마사지까지 받을 수 있으니 산후조리원 퇴소 후 몇 년간 이어질 정신없는 육아생활과 비교하면 ‘조리원 천국’이라는 표현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많은 초보 엄마가 이 ‘천국’에서 눈물로 날을 지새운다는 점이다.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출산 후 호르몬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타고난 가슴(?)을 가진 아주 운 좋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여성이 ‘모유 수유’라는 난제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모유 수유와 관련해 아기에게 젖 먹이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리라 생각한다. 아기와 눈을 맞추며 평화롭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광고 등을 통해 숱하게 봐왔으니까. 아기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울면서 온몸을 비틀며 모유 수유를 거부하고, 엄마는 안간힘을 쓰면서 가슴을 부여잡은 채 눈물을 흘리며, 아빠는 옆에서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을 상상하는 임신부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출산하고 몇 주가 흘러 엄마와 아기가 팀을 이뤄 평화롭게 수유할 수 있게 되기까지, 상당수 초보 엄마는 험난한 눈물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공동수유실의 ‘충격’

    모유 수유는 흔히 생각하듯 자연스러운 ‘본능’의 영역이 아니다. 국제모유수유 전문가 주경이 씨는 저서 ‘완모 프로젝트’에서 ‘모유수유의 본능은 다른 본능과 다르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절대 쉽게 자연스러운 수유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은 분유 수유라는 편리한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초기 모유 수유는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젖 물리기’를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이상 부동자세로 지속해야 한다. 30여 년간 아기라고는 몇 번 안아본 적 없는 초보 엄마가 거대한 수유 쿠션을 허리에 두르고 ‘풋볼 자세’(아기를 팔에 끼고 수유하는 자세)니, ‘요람 자세’(아기를 품에 안고 수유하는 자세)니 하며 자세를 취하는 것부터가 새로운 도전이다. 



    유방을 여러 사람 앞에서 드러내야 한다는 심리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산후조리원에서는 보통 공동수유실에서 다른 산모들과 함께 수유한다. 어떻게 생긴 유두가 수유에 적합한지 혹은 부적합한지를 원치 않아도 속속들이 알게 된다. 돌이켜보면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문화 충격’이 공동수유실에서 빈번하게 벌어졌다. 

    무엇보다 힘든 점은 피로와 수면 부족. 모유량을 충분히 확보하려면 초유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젖이 돌기 시작할 때까지 하루 평균 8~12회 아기에게 젖 물리기를 시도해야 한다. 24시간 동안 두세 시간 간격으로 가슴을 ‘꺼내야’ 하는 것이다. 아기가 힘차게 젖을 빤다면야 20여 분 만에 수유를 마칠 수 있지만, 대개의 산모는 아직 어설프고 신생아는 젖 빠는 힘이 약하다. 한 번 수유에 대략 4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 사실상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돌아서서 밥 먹고, 다시 젖을 물리는 하루가 반복된다. 

    ‘한밤중 수유’는 필수다. 한밤중에 2시간 반에서 3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주섬주섬 수유 쿠션을 들고 공동수유실로 걸어간다고 상상해보라. 엄마가 도착할 때쯤 아기는 배가 고파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엄마는 몽롱한 정신으로 아기에게 제대로 젖을 물리려고 또 1시간여 동안 씨름해야 한다. 

    아기 입장에서도 엄마 젖이 마음에 들 리 없다. 출산병원이나 산후조리원에서 ‘보충 수유’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입만 대도 우유가 쫙쫙 나오는 ‘우유병 수유’를 이미 경험한 터라 모양도 마땅치 않고 엄청 용을 써야 하는 엄마 젖꼭지가 매우 힘들다. 주경이 씨는 이에 대해 ‘아기도 쉽고 편하면 하고, 힘들고 어려운 것은 포기하려 든다. (수유를) 시도하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아기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그냥 잠을 자버리기도 하고, 내내 울기만 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30대 중반 이후 출산한 늦맘은 젊은 엄마에 비해 초유 이후 젖이 돌 때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가능성이 있다(Nommsen-Rivers et al., 2010).

    늦맘의 ‘모유’는 느리게 나올 수도

    유니세프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생후 6개월까지는 모유만 먹일 것을 권고한다. 이후에는 이유식 등 다른 음식과 함께 모유를 2년 이상 먹이라고 권한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표 참조).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아기의 63%만 모유 수유를 경험한다. 생후 6개월에 모유 수유를 하는 비율은 23%, 12개월에는 9%로 크게 낮아진다. 미국 아기의 모유 수유 경험률은 79%이고 생후 6개월에는 49%, 12개월에는 27%이다. 한국은 아기의 88%가 모유 수유를 경험하고 생후 6개월에는 61%, 12개월에는 46%로 낮아진다. 다만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국가 아기들의 모유 수유 경험률은 각각 95%, 98%로 매우 높다(Victora, Cesar and Bahl et al., 2016). 

    정답은 없겠지만 여건이 허락된다면 “첫 2주간의 고생은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단, 모유를 먹은 아기가 더 건강하다거나, 엄마와 애착 수준이 더 높다거나, 신체·지능 발달에 더 좋다거나 하는, 흔히 거론되는 모유 수유의 장점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엄마의 주관적 만족과 편리함이라는 이기적 이유에서다. 첫아이는 모유로 키우고 둘째아이는 모유와 분유로 혼합 수유를 하고 있는 마흔 살의 한 여성은 “분유를 먹일 때 우유병 각도 등을 조절하느라 오히려 아기를 바라보며 더 정성을 쏟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유 수유가 엄마와 아기에게 서로 익숙한 일이 되면 세상에 모유 수유만큼 편한 것이 없다. 우유병을 소독할 필요도, 자다 일어나 분유를 타기 위해 불을 켜고 물 온도를 맞출 필요도, 심지어 아기가 좀 더 크고 나면 자리에서 일어날 필요조차 없이 언제든 바로 수유할 수 있다. 외출할 때도 가방 속 짐의 부피가 현저히 줄어들고, 분유가 상했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밤중에 열이 나거나 아플 때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면 신비롭게도 상태가 나아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기도 했다.

    사전 준비, 24시간 아기 관찰할 필요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유니세프한국위원회]

    그렇다면 초기 모유 수유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어려움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먼저 출산 전 모유 수유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하라고 권한다. 즉 출산하기 전 모유 수유에 대해 교육 받고, 관련 서적을 읽어보며, 출산할 병원이나 입소할 산후조리원에 모유 수유 전문가가 있는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유두의 위치, 모양 등 가슴 상태에 대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인터넷에서도 유용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우유병을 절대로 물리지 말라’거나 ‘설탕물이나 분유 등 모유 이외의 다른 보충식은 절대 해선 안 된다’ 등 일부 유명한(?) 조언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좀 더 중요한 것은 출산 후 아기와 최대한 함께 있으면서 아기의 상태를 살피고 아기에게 익숙해지는 일이다. 아기가 배고플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파악한 다음, 약간의 징후가 보이면 그때 천천히 수유를 시도하는 것이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이것이 좀 힘들 수 있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가 배고파 울면 ‘수유콜’을 통해 엄마를 부르는데, 엄마가 달려가 아기를 건네받을 무렵에는 아기가 마음이 매우 급한 상태가 돼 있어 빠는 노력이 필요한 엄마 젖보다 빨리 먹을 수 있는 우유병을 찾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유 수유를 하고자 한다면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거나, 산후조리원 중에서도 아기와 함께 지낼 수 있는 모자동실을 운영하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 경우 산후조리원이 휴식을 위한 ‘천국’이 아닌, 초보 엄마를 위한 ‘육아캠프’가 되겠지만, 어차피 2주 후에 닥칠 실전 육아와 모유 수유의 편리함을 생각한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또한 모유 수유를 위해서는 산모의 건강 관리 및 규칙적인 식사도 매우 중요하다. 

    모유 수유에 관해서는 여러 연구가 있다. 아기가 모유를 먹지 않는다고 덜 건강한 것도 아니고, 엄마와 가족의 정성이 덜한 것도 아니며, 애틋함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유를 먹이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여러 사정으로 모유를 먹이지 못했다고 엄마가 아기에게 죄책감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서 느끼는 행복은 인생의 아주 짧은 순간에 오직 엄마에게만 허락된 것이기에 모유 수유를 원하는 엄마들이 준비 부족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없길 바란다. 또한 천국처럼 안락해 보이는 산후조리원 안에서 모유 수유라는 ‘전투’가 수시로 벌어지고 있음을 가족이 알아주고 지지해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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