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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란과 사우디, 대리전 접고 정면충돌하나

24명 희생된 ‘아흐바즈 총격 사건’ 일파만파

이란과 사우디, 대리전 접고 정면충돌하나

9월 22일 이란 아흐바즈에서 군사 퍼레이드 도중 발생한 총격 사건에 놀란 이란 군인들이 피신하고 있다. [AP=뉴시스]

9월 22일 이란 아흐바즈에서 군사 퍼레이드 도중 발생한 총격 사건에 놀란 이란 군인들이 피신하고 있다. [AP=뉴시스]

추석 연휴가 시작된 9월 22일(현지시각) 이란 주요 유전지대이자 이라크 국경지대인 후제스탄주(州)의 주도 아흐바즈는 갑작스러운 총격 사건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88) 개시일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 도중 괴한 5명(4명은 현장에서 사살, 1명은 병원 치료 중 사망)이 총을 난사했다. 행사에 참여한 군인과 민간인 24명이 숨졌고, 50명 이상이 다쳤다. 

사건 발생 뒤 이란 내 아랍계 분리주의 조직인 알아흐바지예와 이슬람교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각각 자신들이 배후라고 주장했다. 후제스탄주에는 이란에선 소수파인 아랍계 200여만 명이 살고 있다. IS는 수니파와 경쟁관계인 시아파의 맹주 이란을 적대시해왔다. 또 이란의 군사대응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본거지’인 거점 도시들을 잃었고 세력도 크게 약화됐다. 

10월 1일 이란은 시리아 동남부 아부카말 지역으로 미사일 6발을 발사하는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성명을 통해 “시리아의 타크피리(수니파 극단주의를 일컫고 IS도 의미함) 무장조직과 알아흐바지예를 모두 겨냥했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배후설 솔솔

이란과 사우디, 대리전 접고 정면충돌하나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는 자원, 영토, 종교, 인종을 둘러싸고 갈등 중인 집단(나라) 사이에 테러 혹은 공격 행위가 자주 발생한다. ‘아흐바즈 총격 사건’ 역시 표면적으로는 특별한 점이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의 파장이 심상치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중동 외교가에서 흘러나온다. 명확한 증거가 없고 당사자들도 부인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등 중동의 패권을 놓고 이란과 갈등을 빚어온 국가가 배후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이번 범죄는 미국 꼭두각시인 주변 국가의 음모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불안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이 지역의 작은 용병 국가는 모두 미국이 뒤를 봐주고 있다. 이번 범죄를 저지르도록 선동하고,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준 건 미국이다.”(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아흐바즈 총격 사건 뒤 이란 최고권력자들은 곧바로 ‘미국의 영향 아래 있는 주변 국가’를 배후로 지목했다. 주요 외신과 중동 전문가들은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인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이란은 시리아를 향해 발사한 미사일 동체에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사우디에 죽음을’이라고 쓴 문구를 공개하기도 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정부 관계자들이 음모론을 좋아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왜 그들이 외부 세력을 (유력한 배후로) 의심하는지 잘 알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사우디를 상대적으로 더 의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랍 맹주임을 자임하는 사우디가 알아흐바지예를 이용해 공격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측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파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사우디와 이란은 2015년 3월부터 예멘 내전을 통해 사실상의 대리전(사우디는 정부군 지원, 이란은 시아파 계열의 후티 반군 지원)을 펼치긴 했으나 직접 대결은 서로 피해왔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UAE 핵심 관계자들의 이란에 대한 발언에서도 대(對)이란 공격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눈에 띈다. 사우디의 실세로 불리며 대이란 강경 정책을 강조해온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MbS)는 지난해 사우디 MBC와 인터뷰에서 “이란과 싸움이 사우디 안에서 벌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란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게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총격 사건 뒤 UAE 최고권력자로 MbS와 막역한 사이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제(MbZ)의 최측근 압둘칼리크 압둘라 박사(정치학)가 트위터에 올린 글도 화제가 됐다. 압둘라 박사는 “(아흐바즈 총격 사건은) 군대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테러 공격이 아니다. 전쟁을 이란 안으로 깊숙이 옮겨간다는 건 발표된 옵션이며, 다음 단계에서 더욱 자주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랍권의 ‘이란 흔들기’ vs 이란의 ‘국민 단합용’

차도르를 두른 이란 여성들도 황급히 화단 뒤로 몸을 숨겼다. [AFP=뉴스]

차도르를 두른 이란 여성들도 황급히 화단 뒤로 몸을 숨겼다. [AFP=뉴스]

중동 외교가 관계자는 “정확한 배후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란 입장에서는 일단 사우디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분명하다”며 “5월 미국이 이란과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한 뒤 이란에 대해 초강경 대응을 펼치는 것도 이란의 라이벌이자 친미국가인 사우디가 과감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주장처럼 아흐바즈 총격 사건의 배후에 다른 중동 국가들이 있다면 향후 이란에서는 더욱 많은 총격이나 테러 등 유혈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제재가 계속되면서 경제난이 심해지고 있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소수파인 아랍계와 쿠르드족의 반정부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란 정부는 이런 ‘외부의 공격’을 현 정권 중심으로 국민 단합을 종용하는 카드로 쓸 개연성이 크다. 나르지스 바조흘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는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를 통해 “그동안 이란 국민의 불만이 심각했지만 군사 퍼레이드에서 공격이 벌어진 뒤 다시 민족주의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며 “토요일의 공격(아흐바즈 총격 사건)이 이란 정권에 황금 같은 기회를 선사했다”고 말했다. 

사우디, UAE, 이스라엘 등은 미국과 함께 핵 관련 이슈뿐 아니라, 이란의 지역 영향력 확대 움직임에도 제동을 걸려고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타르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의 마르완 카발란 정책분석파트 디렉터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핵 개발 이슈에 초점을 맞췄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중동지역 내 영향력 행사를 문제시하고 있다”며 “중동 내 반(反)이란 진영에서는 이 문제를 향후 이란과 협상에서 핵심 의제로 내세우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8.10.05 1158호 (p48~49)

  • | 도하  =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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