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혼死를 두려워하라!

정부와 사회는 노인 고독사에 대비해야

  • 입력2018-08-21 11: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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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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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북의 한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서 연구하는 A교수는 매주 목요일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연구원)이 의뢰하는 부검에 응한다. 연구원 소속 법의학자만으로는 전국에서 쏟아지는 부검 요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법의학자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폭염 탓인지 거리에서 쓰러져 사망한 노인의 시신이 부쩍 늘었다. 거리에서 사망해 실려 오는 시신은 무조건 부검을 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A교수의 눈에 밟힌 시신은 따로 있었다. 죽고 2주 정도가 지나서야 발견된 한 노인의 시신이었다. 

    강북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살던 이 노인의 시신은 악취를 견디지 못한 이웃의 신고로 발견됐다. 시신만 봐도 발견 현장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은 이미 구더기로 득실댔고, 얼굴 형체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눌려 있었다. 요즘 같은 날씨면 한두 시간도 안 돼 파리가 달려들어 시신에 알을 까니 당연한 일이다.

    고양이와 개가 시신을 먹는다

    하지만 이 노인의 얼굴 형체가 짓이겨진 데는 알에서 나온 구더기 탓만은 아니었다. 눈과 입술 등 상대적으로 연한 부분은 모조리 찢기고 날카로운 이빨 자국이 있었다. “아!” 항상 보던 장면이지만 A교수는 다시 한 번 신음했다. 노인이 애지중지 키우던 고양이가 시신의 연한 부위부터 먹어치운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최근에 만난 서울 소재 한 대학교 법의학교실 교수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를 살짝 비튼 것이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 대목에서 엉뚱하게 고양이를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고양이는 반려동물 가운데 여전히 야생성이 넘치는 동물이니까 말이다. 

    사실 챙겨주던 주인이 집에서 홀로 죽으면 반려동물은 배를 곯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마음만은 초원이나 숲에 있는 고양이는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채 주인의 시신을 탐식한다. 처음에는 먹기 좋은 눈이나 입술 등 연한 부위를 먹어치우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다른 부위까지 눈독을 들인다. 



    개는 어떨까. 고양이와 비교하면 야생성이 떨어지는 개는 주인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훨씬 더 충격을 받는다. 당황해하고 때로는 슬퍼한다. 하지만 개도 생존 본능은 어쩌지 못한다. 주인의 시신을 먹는 것에 대해 고양이보다 더 죄책감을 느끼고 심지어 주저하지만,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법의학자의 증언이다. “저는 개가 먹어치운 시신을 부검한 적도 있습니다.” 

    도시 괴담을 하나 덧붙이려고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가 혼자 죽어가고 있다. 더 늦기 전 ‘혼밥’이나 ‘혼술’ 따위에 대한 말초적인 관심보다 더 중요한 ‘혼사(死)’, 즉 고독사를 놓고 한국 사회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홀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연간 몇 명이나 될까. 놀랍게도 국내에는 정확한 고독사 통계가 없다. ‘무연고 사망자’ 통계로 고독사 현황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13년 1280명에 불과하던 무연고 사망자가 2017년 2010명으로 늘었다.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2013년 464명에서 2017년 835명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1인 가구’ 증가도 중요한 변수다.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2016년 기준 전체 가구의 약 3분의 1(27.9%)가량이 혼자 사는 1인 가구다. 많은 사람이 ‘1인 가구’ 하면 고시원을 전전하는 20대 청춘 남녀나 모든 것이 갖춰진 오피스텔에서 살아가는 30대의 세련된 직장 남녀를 떠올린다. 천만의 말씀이다. 전체 1인 가구의 약 5분의 1(17.8%)이 70대 이상이었다. 

    더구나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으로 갈수록 1인 가구에서 고령자의 비중이 높아진다. 앞으로 인구 구성에서 고령 인구가 늘어나고 지방이 점점 고령화될수록 혼자 사는 노인의 비중은 더 증가할 것이다. 그 결과로 고독사 역시 계속해 늘어날 것이 뻔하다.

    고독사,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

    고독사로 세상을 뜬 노인의 빈집을 청소하는 업체 직원. [동아DB]

    고독사로 세상을 뜬 노인의 빈집을 청소하는 업체 직원. [동아DB]

    일단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고독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첨단과학기술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혼자 사는 노인의 집 출입문에 동작감지센서를 달아놓고 모니터링하는 방법이 있다. 8~12시간 이상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하면 동주민센터 담당자에게 자동으로 알람이 가 노인의 안부를 확인하도록 강제한다.

    부산시는 타지에 사는 자식이 홀로 사는 부모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해오면 담당자가 직접 찾아가 안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를 올해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일본은 지역의 이웃, 신문이나 택배 배달업자 등이 혼자 사는 노인을 관찰하고 보호하는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비상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고독사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1인 가구 노인이 많은 프랑스 사례가 돋보이는 이유다. 프랑스는 혼자 사는 노인을 정기 방문하거나 사회관계를 증진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국가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고독사 대응 가운데 혼자 사는 노인과 주거가 불안정한 대학생의 동거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이 인상적이다. 고독사를 막는 방안으로 일종의 대안가족(공동체)의 탄생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노인과 대학생의 소통 가능성까지 높일 수 있으니 얼마나 기막힌 방안인가. 

    물론 안다. 생면부지에 자칫하면 잔소리꾼이 되기 십상인 노인이나, 버릇없고 사사건건 눈에 거슬리는 대학생보다 귀여운 개, 고양이가 가족으로는 더 좋다. 하지만 아파서 쓰러졌을 때는 개나 고양이보다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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