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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에서만 여포가 되는 LG 트윈스

안방 승률 0.718인데, 원정 승률 0.390으로 큰 차이

잠실에서만 여포가 되는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안방 구장으로 함께 쓰고 있는 서울 잠실야구장. [동아DB]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안방 구장으로 함께 쓰고 있는 서울 잠실야구장. [동아DB]

이 정도면 서울 잠실야구장은 이제 ‘잠실 던전’이라 불러도 무리가 아닙니다. 던전(dungeon)은 원래 ‘지하 감옥’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다 대규모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이 유행하면서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소굴’이라는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여기서 발전해 ‘(악의 무리가 사는) 난공불락 요새’라는 뜻으로도 통하게 됐습니다.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는 안방 팀 승률이 유독 높은 구장에 이 표현을 씁니다. ‘오라클 던전’이 대표적 사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올해를 포함해 최근 4년 동안 세 차례 미국프로농구(NBA) 정상을 차지한 팀입니다. 이 팀이 안방으로 쓰는 구장 이름은 원래 ‘오라클 아레나’지만 골든스테이트가 2014~2015시즌 안방에서 39승2패(승률 0.951)를 기록하면서 오라클 던전으로 변한 겁니다.


잠실과 바깥 사이

그렇다면 2018 한국 프로야구에서 잠실야구장도 마찬가지라는 얘기겠죠? 이 구장을 안방으로 쓰는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를 제외한 나머지 8개 팀은 7월 2일 현재 잠실야구장에서 18승1무53패(승률 0.254)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날 현재 최하위 NC 다이노스도 승률 0.346(28승53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실야구장 ‘공동명의자’ 두 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은 이 구장에서 꼴찌보다도 1할 가까이 떨어지는 성적을 보이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두산은 별로 특이할 게 없습니다. 잠실 안방 경기에서 27승10패(승률 0.730), 방문 경기에서 26승16패(승률 0.619)로 홈, 원정 경기 승률이 모두 1위입니다. 요컨대 두산은 장소 상관없이 많이 이기는 팀입니다. 

LG는 사정이 다릅니다. 잠실 안방 경기에서는 28승1무11패(승률 0.718)로 두산에 이어 2위지만 방문 경기에서는 16승25패(승률 0.390)로 9위입니다. 최하위 NC 딱 한 팀만 11승24패(승률 0.314)로 LG보다 방문 경기 승률이 낮을 뿐입니다. 

LG가 잠실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잠실야구장은 기본적으로 ‘투수 천국, 타자 지옥’인 곳입니다. 잠실야구장은 외야 가운데 담장까지 거리가 125m에 이르는 등 광활한 외야를 자랑합니다. 다른 구장에서라면 홈런일 타구가 평범한 외야 플라이로 둔갑하기 때문에 타격 성적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방문 팀 타자들은 이 넓디넓은 잠실야구장에 압도당합니다. 두산과 LG를 제외한 나머지 8개 팀 타자들은 잠실에서 OPS(출루율+장타력) 0.681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공격수보다 수비수 이미지가 강한 공필성(51·현 두산 코치)의 통산 OPS가 0.681입니다. 

반면 두산(0.819)과 LG(0.805)는 잠실에서도 잘 칩니다. 두산은 그래도 시즌 전체 평균(0.854)보다 기록이 떨어지지만 LG(0.804)는 사실상 차이가 없는 성적입니다. 그 중심에 역시 김현수(30)가 있습니다. 김현수는 올해 잠실에서 OPS 1.094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53)가 롯데 자이언츠에서 기록한 통산 OPS가 1.023입니다. 적어도 올해 김현수는 잠실에서는 호세 부럽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셈입니다.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더 빛나는 LG 트윈스 김현수. [동아DB]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더 빛나는 LG 트윈스 김현수. [동아DB]

김현수는 데뷔 때부터 ‘잠실형 타자’에 가까웠습니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1군 무대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2007년 이후 누적 기록을 보면 김현수는 잠실에서 OPS 0.914로 다른 구장(0.903)보다 기록이 좋습니다. 김현수는 기본적으로 ‘거포’가 아니라 ‘중·장거리포’에 가깝기 때문에 잠실의 광활한 외야가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외야 구석구석으로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날려 2루타를 기록할 수 있으니까요. 

김현수는 올 시즌 현재 2루타 31개로 이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김현수가 현 페이스로 2루타를 때리면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2루타 55개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러면 김현수는 2016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최형우(35·KIA 타이거즈)가 기록한 46개를 뛰어넘어 리그 최다 2루타 기록을 새로 쓸 수 있습니다. 

채은성(28)도 비슷한 사례. 역시 ‘라인 드라이브형 타자’로 분류할 수 있는 채은성은 0.919인 시즌 평균 OPS를 잠실에서는 1.033으로 끌어올립니다. 채은성이 안방 경기 득점권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면 이 기록은 1.178로 더 올라갑니다. 채은성은 “주자가 있을 때 집중이 더 잘 되는 게 사실이다. 올해는 자신감이 늘었는지 ‘나한테 찬스가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습니다. 

투수 관점에서 보면 잠실야구장은 평균자책점이 내려가는 구장입니다. 올 시즌 현재까지 잠실야구장에서 투수들이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4.41점. 다른 구장에서 남긴 5.10보다 0.69 낮습니다. 

LG는 이보다 변화폭이 더 큽니다. LG는 안방에서 팀 평균자책점 3.37(1위)로 방문 경기 때 5.77(9위)보다 2.4 낮은 기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리그 평균보다 3.5배 정도 평균자책점을 더 끌어내리는 셈입니다.


능력과 행운 사이

그 이유는 ‘위기에서 강했기 때문’입니다. LG는 안방 경기에서 주자가 득점권(2루 이상)에 나가 있을 때 상대 타자를 타율 0.223으로 막았습니다. 리그에서 제일 낮은 기록입니다. 홈런을 허용한 것도 5번으로 리그 최저입니다. 확실히 LG 투수진은 잠실에서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방문 경기 때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납니다. 자기 팀 안방 경기 때 득점권 상황에서 LG 투수를 상대한 타자는 OPS 0.891을 기록했습니다. 이번에는 거꾸로 리그에서 가장 높은 기록입니다. 지난해 김하성(23·넥센 히어로즈)의 OPS가 0.889였다는 걸 고려하면 이번에는 LG 투수진이 완전히 ‘털린’ 셈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는 이렇게 그때그때 차이가 크게 나는 기록은 ‘능력’으로 보지 않습니다. 안방 경기 때는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방문 경기 때는 그렇지 않다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LG는 잠실로 방문 경기를 떠나는 팀이기도 합니다. 두산이 안방 팀으로 LG를 맞이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기에서 LG 투수진은 득점 기회에 타석에 들어선 두산 타자들에게 OPS 0.944를 허용했습니다. 참고로 이대호(36·롯데)의 통산 OPS가 0.931입니다. 그러니까 LG 투수진이 꼭 잠실이라서 강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확실한 건 LG 투수진이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안방 경기 때는 위기 상황을 잘 틀어막았다는 것. 세이버메트릭스는 이럴 때 진짜 확실한 이유를 찾아내기 전까지 보통 ‘운이 좋았다’고 결론 내립니다. 지금까지 LG 투수진은 안방 구장을 던전으로 만들 만큼 운이 아주 좋았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방문 구장에서는 운이 나빴던 겁니다. 

행운이건 불운이건 운이 쌓이면 실력이 된다는 건 분야를 막론하고 진리에 가깝습니다. 과연 어느 쪽이 변할까요. 안방에서도 허점을 노출하게 될까요, 아니면 방문 경기 때도 행운이 찾아올까요. 올해 최종 순위표에서 LG가 어디에 위치할지는 이 질문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간동아 2018.07.11 1146호 (p56~57)

  •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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