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5

2018.07.04

국제

아베 총리의 정치적 명운 쥔 김정은

북·일 정상회담 위해 일본 외교력 총동원

  • 입력2018-07-03 09: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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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동아일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동아일보]

    일본 정부가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자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대북 강경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실시해오던 주민대피훈련을 전격 중단한 것을 들 수 있다. 6월 21일 일본 정부는 도치기현과 가가와현 등 9개 현에서 연내 진행하려던 주민대피훈련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3월 아키타현을 시작으로 전국 26개 지역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상정해 모두 29회에 걸쳐 주민대피훈련을 실시해왔다. 훈련 내용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자위대 등이 연계해 전국순간경보시스템(J얼러트)의 훈련 경보를 발령하고 주민을 공공시설로 대피시키는 것이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주민대피훈련 중단 이유를 “북·미 정상회담 등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일본 안전 보장상의 긴박한 상황이 누그러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북한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트럼프, “北 경제지원은 일본과 협의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 중앙 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 중앙 통신]

    일본 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경로로 북한에 정상회담을 제의해왔다. 시미즈 후미오 일본 외무성 아시아·태평양국 참사관은 6월 14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동북아 안보를 논의하는 국제회의 ‘울란바토르 대화’에서 북한 대표를 별도로 만나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한다는 일본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를 통해 같은 내용을 북한 측에 보냈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기타하라 마모루 후쿠오카현 북일우호협회 회장을 비롯한 친북 정치인을 통해서도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타진했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북한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전달했고, 당시 김 위원장이 아베 총리와 만날 뜻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면 경제제재가 풀리겠지만, 본격적인 경제지원을 받고 싶으면 일본과 협의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아베 총리가 지원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에 긍정적 의사를 보이고 “납북자 문제는 이미 끝난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이런 회담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듣고 크게 고무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듯하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6월 16일 요미우리TV와 인터뷰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김 위원장의 큰 결단이 필요하다”며 “정상회담을 통해 상호 불신이라는 껍데기를 깨고 한 걸음 전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6월 19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는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을 실현한 지도력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칭찬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이런 발언은 북·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김 위원장에게 ‘립 서비스’까지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북한에 제시할 ‘당근’으로 3단계 경제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과 핵폐기 비용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첫 단계를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일본 정부도 이미 북한이 IAEA의 핵사찰을 받을 경우 인력과 기자재 조달에 필요한 초기 비용 3억 엔(약 30억5000만 원)을 부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 번째 단계는 국제기구를 통해 쌀이나 의료품 등을 제공하는 인도적 지원이다. 북한과 일본은 2014년 일본인 납치 문제 재조사와 대북제재 완화 내용을 담은 ‘스톡홀름 합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합의에는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시행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북한이 납치 문제에 성의를 보인다면 기꺼이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의미다. 세 번째 단계는 국교 정상화 이후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때 합의한 평양선언에는 국교정상화 이후 무상자금과 국제기구 등을 통한 차관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베 총리는 북한이 경제개발을 하더라도 자금이 필요할 테니 이런 제의를 수용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외무성에 북한 전담부서 신설

    6월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가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일본 총리실 웹사이트]

    6월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가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일본 총리실 웹사이트]

    일본 정부의 러브콜에 북한 정부는 어느 정도 속내를 내비쳤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6월 22일 ‘성실한 과거 청산에 일본의 미래가 있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일본이 과거 죄악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고 무조건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죄악’과 ‘국가적 책임’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금전적 배상을 말한다. 김 위원장이 아베 총리에게 노골적으로 청구서를 내민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과거 식민지배를 했던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 상당 금액을 배상했다. 우리나라도 1965년 경제협력기금 명목으로 무상 3억 달러, 재정 차관 2억 달러를 받았다. 

    북한은 그동안 일본과 수교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배상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1990년 당시 김일성 주석은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를 만났을 때 100억 달러를 제시했다. 2002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 때 배상금을 언급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은 그동안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200억~300억 달러를 요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북한과 협상 및 관계 개선에 대비해 7월 초 외무성에 북한 문제를 전담하는 ‘북동아시아2과’를 신설한다. 한국 담당은 북동아시아1과가 된다. 북동아시아2과에는 외무성에서 북한과 물밑 협상 및 정보 수집을 해온 한반도 전문가들이 합류한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8월 1~4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할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별도 회담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9월 11~1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될 동방경제포럼 또는 9월 하순 뉴욕 유엔총회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에서 가까워 김 위원장의 부담이 적을 뿐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면도 세워줄 수 있다. 아베 총리로서도 러·일 관계에 좋은 영향을 기대할 수 있다. 뉴욕 유엔총회의 경우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정상 국가의 지도자라는 점을 과시함과 동시에 북·일 정상회담 이후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도 만날 수 있다. 

    아무튼 아베 총리로선 9월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는 입장이다. 아베 총리의 의도는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고 사학 스캔들 등 국내 정치 위기도 돌파해 3연임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일본이 내민 손을 선뜻 잡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런 태도에 애간장이 타고 있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명운이 김 위원장의 손에 달린 형국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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