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5

2018.07.04

커버스토리

손흥민이 8년째 눈물 흘리는 이유

축구계의 오락가락 월드컵 준비에 선수, 감독만 죽어난다

  • 입력2018-07-03 09: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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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끈 신태용 감독. [동아DB]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끈 신태용 감독. [동아DB]

    사실 좀 부끄러웠다.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축구 전체가 포화를 맞았다. 6월 15일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전부터 그랬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러시아와 맞붙었다. 이날 사우디는 다섯 골이나 얻어맞으며 개최국의 기를 살려줬다. 러시아월드컵 직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70위였다. 

    축구인들은 혹평을 쏟아냈다. 영국의 전설적 축구선수이자 현재 BBC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는 게리 리네커가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아시아지역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팀들은 끔찍한 수준임이 틀림없다.” 사우디가 이 모양인데 다른 나라들은 어떻겠느냐는 것. 반박할 수 없었다. 본선행이 간당간당했던 한국을 저격한 건 아닐까 싶어 뜨끔했다. 직전 대회인 2014 브라질월드컵만 봐도 아시아지역 팀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개막전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선전했다. 이란이 모로코를 꺾었다. 상대가 비교적 약체였다고는 하지만, 아시아 국가가 거둔 첫 승리라 의미가 적잖았다. 호주는 우승 후보 프랑스를 괴롭혔다. 패하긴 했어도 탄탄한 수비가 인상 깊었다. 일본은 콜롬비아에 승리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상대 선수 퇴장에 따른 수적 우세 속에서 자신들만의 축구를 구현했다. 냉정하고 차분한 운영으로 승점 3점을 따냈다. 이어 이란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연달아 흔들었고, 사우디도 이집트를 꺾고 첫 승을 신고했다.

    마치 월드컵 본선에 처음 진출한 것처럼

    한국은 이들과 달랐다. 스웨덴전을 망친 게 꽤 크게 다가왔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삐걱댔으니 올 것이 왔구나 싶기도 했다. 월드컵 무대는 아무나 밟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가 60년 만에 유럽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칠레는 남미지역 예선 최종전 패배로 뒤집기를 당했다. 스웨덴전에서 보여준 한국 축구 수준이라면 본선 초대권을 놓친 이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멕시코전 분투에 이은 독일전 승리는 더없이 짜릿했다. 다만 이 기쁨이 얼마나 갈지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다. 

    브라질월드컵과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전까지는 묘하게 겹친다. 그때도 지금도 손흥민은 서글프게 울었다. 축구선수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신감을 꼽던 패기 넘치는 청년이다. 맨체스터 시티, 유벤투스 등 굵직한 팀의 골문을 연 뒤 포효하던 선수다. 그런데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한없이 작아졌다. 북받치는 목소리로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분명히 뭔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한국 축구계의 월드컵 준비가 4년 전과 달라진 점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여기서 짚고 갈 건 한국이 월드컵을 한두 번 나간 국가가 아니란 점. 모로코나 이집트처럼 20여 년 만에 본선행 티켓을 따낸 국가와는 다르다. 시행착오를 겪어도 용서가 되는 시간은 지났다는 의미다. 지난해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축하 서신을 보내왔다. ‘한국의 이번 월드컵 진출은 1986년 이후 태극전사들의 9회 연속 월드컵 출전이자 아시아 최초의 10회 출전’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낄 만했다. 그런데 막상 대회 준비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 경험하는 세계에 들어선 듯 어수룩해 보였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로드맵이 있었을 텐데 매번 이리저리 휘둘렸다.

    이번 대회 중 유독 뼈저리게 다가온 박지성 SBS 축구해설위원의 말이 있다. 멕시코전에서 1-2로 패배한 직후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던 그는 “(한국 축구가) 4년 전 브라질월드컵과 비교해 얼마나 발전했느냐 봤을 때, 솔직히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직시했다. “모든 축구인이 반성해야 할 문제다” “보여주기 식 차이를 만들지 마라” 등의 메시지를 던지면서 근본적 문제를 꼬집었다.

    한 치 앞만 보는 축구협회

    멕시코전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격려에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손흥민. [동아DB]

    멕시코전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격려에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손흥민. [동아DB]

    한국은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란 인물을 소모했다. 허정무 전 감독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쾌거를 이뤘다. 이후 조광래, 최강희 전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잠깐 들었다 놨다. 본무대 1년을 앞두고 부랴부랴 감독직을 맡은 홍명보 전 감독은 처참히 깨졌다. 브라질에서 승리 없이 돌아온 날의 뒷이야기는 더 비참하다. 홍 전 감독은 인파를 피하고자 인천국제공항 화물칸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한국 축구의 행보는 이후에도 비슷했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도중에 떠났다. 신태용 감독이 1년도 안 되는 기간 분투했다. 독일전 승리에 의미를 부여할 만해도, 이 정도로는 과정의 치부를 가리기엔 부족하다. 만에 하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신 감독마저 잃었을지 모른다. 

    경기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만들어간다. 영웅으로 추대되기도, 역적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정책과 문화 등은 또 다른 이들이 꾸려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는 오락가락했다. 2010년대 들어서만도 대표팀 감독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이를 둘러싼 인사 물갈이도 반복됐다. 정쟁도, 암투도 있었다. 그 결과물은 세계 조류와 간극을 좁히기는커녕 아시아마저 확실히 호령하지 못하는 축구를 만들었다. 

    브라질에서 고꾸라진 대한축구협회는 4년 전 슈틸리케 감독을 앉혔다. 선임 당시 물음표가 없었던 건 아니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우승,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연승 행진 등 업적을 냈다. 다만 최종예선 들어 저조한 경기력으로 이상 징후를 보였다. 이에 대한 내부 노선의 방향이나 결단의 타이밍 등은 적절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한국 대표팀 재부임설도 큰 논란이 된 사안이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신 감독을 믿고 가려던 당시 대응과 대처는 아쉬웠다. 결정권을 쥔 수뇌부가 적극적으로 방향을 잡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일관성과 연속성 차원에서 장기적 그림을 그리고 원칙을 지켜나가지 못하면 외풍에 또 휘둘린다.
     
    신 감독의 바람이던 ‘통쾌한 반란’이 없었으면 싶기도 했다.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기는 해도, 차라리 바닥까지 찍은 뒤 재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매 맞고 달라지는 데 급급한 축구는 그만 보고 싶다. 급히 각성해 나아지는 축구, 발등에 불 떨어졌을 때야 달라지는 축구로는 매번 눈앞 가림밖에 못 한다. 

    물론 대한축구협회 안에서 감지된 새로운 바람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 경질 이후 몇 달간 잡음을 일으켰던 ‘기술위원회’에 칼을 댔다. ‘기술발전위원회’와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로 세분화한 뒤 각각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배치했다. 업무를 특화해 장기적인 판을 짤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멕시코전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하며 울음을 터뜨린 손흥민 바로 뒤에선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이 이 모습을 먹먹하게 바라봤다. 러시아 현지에서 한국 축구의 한계와 가능성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온 이들이 변화의 신호탄을 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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