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1

2018.06.06

와인 for you

부르고뉴 와인의 교과서

프랑스 부르고뉴 와이너리 ‘도멘 루’

  • 입력2018-06-05 13: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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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도멘 루를 이끌고 있는 4대손과 5대손. 도멘 루의 부르고뉴 샤르도네, 피노 누아르 와인(왼쪽부터). [사진 제공 · 에노테카코리아㈜]

    현재 도멘 루를 이끌고 있는 4대손과 5대손. 도멘 루의 부르고뉴 샤르도네, 피노 누아르 와인(왼쪽부터). [사진 제공 · 에노테카코리아㈜]

    최근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이라는 영화가 잔잔한 울림을 안겨줬다.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물려받은 삼남매가 와인을 함께 만들며 갈등을 극복하고 인생과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줄거리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와이너리가 있다. 부르고뉴에서 5대째 와인을 만드는 도멘 루(Domaine Roux)다. 

    도멘 루는 1855년 포도밭 1만㎡로 시작했다. 가난한 농가였던 루 가족의 생활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1943년 3대손인 마르셀이 와이너리를 책임지면서부터다. 전쟁 중이던 당시엔 황폐화된 포도밭이 많았다. 마르셀은 융자를 받아 포도밭을 매입했고 와인 생산을 확대했다. 그는 평생 열심히 일하며 밭을 25만㎡까지 늘렸다. 

    마르셀의 세 아들이 도멘 루를 물려받은 것은 1970년대다.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와이너리를 더욱 성장시켰고, 2012년부터는 5대손인 세바스티앙과 매튜 형제가 합류해 와이너리를 함께 이끌고 있다. 도멘 루는 현재 부르고뉴 10대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로 총 70만㎡의 밭을 보유하고 있다. 

    성실하게 일하며 밭을 조금씩 사 모아서인지 도멘 루의 포도밭 사랑은 남다르다.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쟁기질도 트랙터가 아닌 말을 이용한다. 테루아르(terroir·포도재배 환경)의 맛을 잘 살린 와인을 만들고자 마을과 밭별로 포도 수확도 따로 한다. 밭이 작아 아무리 수확량이 적어도 다른 밭의 포도와 섞어 발효시키지 않고, 최대한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급으로 와인을 만든다. 와인을 숙성시킬 때도 오크 사용을 최소화해 와인의 개성을 강조한다. 

    도멘 루의 와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부르고뉴 피노 누아르(Pinot Noir)와 샤르도네(Chardonnay)다. 엔트리급 와인이라 유명 마을이나 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 와인들은 5만 원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샤르도네는 보디감이 묵직하고 레몬, 파인애플, 야생화, 미네랄 등 여러 가지 향미의 어울림이 고급스럽다. 피노 누아르는 진한 과일향이 마치 잘 익은 검붉은 베리들이 뒤섞인 듯하고, 질감이 탄탄하며 매끄럽다. 



    마을 단위 와인으로는 샹볼뮤지니(Ch ambolle-Musigny)의 레 프헤미에르(Les Fremieres)가 매력적이다. 샹볼뮤지니는 부르고뉴에서 제일 우아한 와인을 생산한다고 평가받는 마을이다. 도멘 루가 이곳의 피노 누아르로 만든 레 프헤미에르를 맛보면 화사한 베리향과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조화 및 균형의 절정을 이룬다. 

    생토뱅(St-Aubin) 마을의 1등급 밭 레 코르통(Les Corton)에서 수확한 샤르도네로 만든 와인도 훌륭하다. 한 모금 머금으면 풍부한 과일향이 꽃, 밀랍, 꿀, 계피 등 다양한 향과 함께 입안을 가득 채우고, 와인을 마신 뒤에는 달콤한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섬세함, 우아함, 복합미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와인이다. 레 코르통은 17만 원, 레 프헤미에르는 25만 원이다. 

    도멘 루의 와인들은 부르고뉴 와인의 교과서 같다. 와인마다 마을과 밭의 개성이 정직하게 담겨 있어서다. 우리나라에는 도멘 루 와인 11종이 수입되며 전국 에노테카숍, 와인 전문숍, 레스토랑, 백화점 등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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