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1

2018.06.06

국제

폭파 장면만 봤을 뿐 갱도 폐쇄 확인 불가능

北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제2 영변 냉각탑 폭파 쇼 재연’ 비판

  • 입력2018-06-05 13: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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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4일 5개국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폭파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5월 24일 5개국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폭파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전 세계에서 언론의 자유가 가장 최악인 국가다. 북한은 비정부기구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18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조사 대상국 180개국 가운데 180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180위였다. 북한은 RSF가 2002년부터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매년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RSF는 북한 정권이 언론을 철저히 통제해 주민들을 무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주민은 외국 언론이 제공한 보도를 보거나 읽으면 체포돼 노동교화소로 끌려간다. 특히 북한에선 외국 언론이 자유롭게 취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외국 언론이 북한을 방문하는 이유는 ‘금단(禁斷)의 지역’에 대한 취재 경쟁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이런 외국 언론의 속성을 이용해 주요 행사 때마다 그들을 초청하고 체제 선전에 적극 활용해왔다. 실제로 북한 정권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외국 언론에 공개하며, 자신들의 의도에 어긋나는 어떤 행동이나 질문도 허용하지 않는다. 

    북한이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탄을 이용해 폐기했다. 폭파는 2번 갱도(북쪽)와 관측소를 시작으로 4번 갱도(서쪽)와 단야장(금속을 불에 달궈 벼리는 곳), 생활건물 등 5개 건물, 3번 갱도(남쪽)와 관측소, 2개 동 군건물 순으로 진행됐다. 강경호 북한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핵실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고자 핵실험장을 완전히 폐기했다”며 “방사성물질 유출은 전혀 없고 주위 생태환경도 아주 깨끗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강 부소장은 “남쪽 갱도는 핵실험을 단행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됐던 곳”이라며 “서쪽 갱도는 매우 큰 핵실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놨던 곳”이라고 밝혔다. 강 부소장의 이런 발언은 미래 핵 개발 능력을 포기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실험장, 사명 끝마쳤다”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는 4월 20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핵무기의 병기화가 완결된 만큼 그 어떤 핵실험과 중·장거리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필요 없게 됐으며, 핵실험장도 사명을 끝마쳤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핵실험장 폐기 방침을 재차 확인하면서 “일부에서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 시설보다 큰 갱도 2개가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생색을 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고자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들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약속을 깨고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한국 등 5개국 20여 명의 언론인만 초청했다. 

    핵실험장 폐기를 취재하러 간 언론인들도 과거처럼 북한이 공개한 것만 볼 수 있었다. 현장 상황을 취재한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전문가들이 없어 북한의 주장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CBS뉴스 소속 벤 트레이시 기자는 “북한의 목적은 핵실험장을 폐기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그 장소를 다시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면 전문가가 필요한데 우리는 언론인”이라고 밝혔다. 영국 스카이뉴스 톰 체셔 기자는 “갱도 입구가 폭발물 전선들로 칭칭 매어 있었다”며 “상당히 연극적(theatrically)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CNN 방송 윌 리플리 기자는 “우리가 본 것은 거대한 폭발이었을 뿐 갱도 내부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북한은 영구히 못 쓴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걸 검증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미국 AP통신 래프 워버 기자는 “북한은 TV 방송사 위주의 외국 언론들을 초청해 ‘폐기’ 이미지를 보이려 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RT 이고르 즈다노프 기자는 “외부 전문가 없이 어떻게 100% 투명성을 확인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미국 등 국제 핵 전문가는 대부분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가 비핵화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조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핵 폐기 전문가인 셰릴 로퍼 전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는 ‘쇼’ 성격이 큰 것 같다”며 “북한이 핵실험장의 갱도를 마음대로 처리하기 전 전문가들로 하여금 조사하게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 역시 “북한은 폭파부터 할 것이 아니라 핵실험 장비, 갱도를 만드는 방법, 핵무기 제조 방법, 핵실험 역량을 공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니얼 러셀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도 “김정은이 핵무력을 완성해 더는 실험이 필요 없다고 밝힌 만큼 핵실험장 폐기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핵실험장 폐기 행사는 정치적 행위일 뿐”이라며 “북한이 핵실험장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가들이 샘플을 채취해 관련 설비와 장비를 조사한 뒤 핵실험장 폐기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방정보국(DIA)과 국립지리정보국(NGA)은 북한이 핵실험장을 폐기해도 수주 또는 수개월 내 복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계전 핵실험 능력 보유 가능성

    북한이 핵실험장을 자발적으로 폐기한 것은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는 것보다 ‘임계전(臨界前) 핵실험(subcritical nuclear test)’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임계전 핵실험은 플루토늄이 핵분열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초고온·초고압을 가해 물질들의 거동 정보와 무기화 정보를 획득하는 실험이다. 폭발 핵실험을 하지 않아도 컴퓨터를 통해 핵폭발 자체를 정확히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북한은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임계전 핵실험과 지하 핵실험, 핵무기의 소형화와 경량화, 초대형 핵무기 및 운반수단 개발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핵무기 개발을 실현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임계전 핵실험 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은 핵실험장을 폐기해도 폭발 핵실험 없이 핵무기를 개량하고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이 핵물질을 은닉할 경우 임계전 핵실험을 통해 단기간 내 몰래 핵을 재건할 수 있다. 임계전 핵실험은 섬광이 발생하지 않아 위성으로 관측할 수 없으며, 지진파도 미약해 감지가 어렵다. 지하에서 실시하면 방사능 감시 장치로 관찰할 수도 없다. 

    북한은 2008년 6월 27일 6자 회담 참가국 언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변 5MW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했다. 당시 냉각탑은 불능화 조치로 이미 내열제와 증발장치 등 주요 장치가 제거된 ‘껍데기’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북한은 냉각탑 없이도 5MW 원자로를 재가동해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북한은 미래 핵 개발의 잠재력을 없앤다면서 핵실험장을 폭파했지만 임계전 핵실험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면 핵실험장이 필요 없다. 파키스탄과 인도도 임계전 핵실험 능력을 갖고 있어 더는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제2의 영변 냉각탑 폭파 쇼’를 재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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