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1

2018.06.06

경제

한국에도 적대적 M&A 방어조치 들여올까

경영권 승계 집착하면 벌처펀드 먹잇감 된다

  • 입력2018-06-05 13: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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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이 추진한 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사업 분할합병은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사진은 현대차그룹 본사. [동아DB]

    현대차그룹이 추진한 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사업 분할합병은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사진은 현대차그룹 본사. [동아DB]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도가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 등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삼성물산 주식가치가 과소평가됐다며 합병 반대를 주장하고 나섰던 대표적 헤지펀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합병 당시 자사주 처분 금지 가처분신청 등을 제기하며 합병 절차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엘리엇은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합병 찬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물산 합병 반대와 삼성전자 지주회사 분리 요구에 이어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까지 엘리엇의 입김으로 무산되자 해외 헤지펀드 등으로부터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차등의결권, 포이즌필(poison pill), 황금주 제도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내 대기업에 대한 외국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버린자산운용이 SK텔레콤의 최대주주인 SK㈜ 지분 14.99%를 취득하며 경영권을 위협했던 것. 그뿐 아니라 같은 해 외국계 펀드들이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1% 이상을 취득했을 때도 국내 대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가 외국투기자본의 적대적 M&A 표적이 될 수 있음을 환기케 했다. 대표적으로 2006년 칼 아이컨 연합이 KT&G 지분 6.59%를 취득하며 적대적 M&A를 공언한 사례가 꼽힌다. 실제로 적대적 M&A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이 과정에 막대한 국부 유출 논란이 빚어졌다. 이 때문에 외국투기자본이 국내 대기업 지배구조를 간섭하는 현상에 대해 재계는 경기를 일으킨다. 일부 야당 의원도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대기업 입장을 거들고 있다.

    대주주는 차별 대우를 원한다?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 [동아DB]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 [동아DB]

    치로 거론되는 제도는 세 가지 정도다. 대표적인 것이 차등의결권 제도다. 이 제도는 주식 종류에 따라 의결권 수를 달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일반 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주당 1개의 투표권을 부여한 반면, 특정 주식에 대해서는 주당 여러 개의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 의결권이 많은 복수의결권 주식을 확보하면 적은 수의 주식으로도 적대적 M&A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만약 주당 투표권 10개를 부여한다면 전체 주식의 10분의 1만으로도 전체 주식의 90%를 보유한 효과가 있어 적대적 M&A를 방지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면 네 가지 이점이 있다고 밝혔다. 첫째, 경영권에 대한 관심보다 재무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투자자의 경우 투자하기 적합한 금융상품이 될 수 있다. 둘째, 지배주주도 경영권 상실의 불안감이 줄어 적극적인 기업공개로 자금 조달에 나설 수 있어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제도로 활용이 가능하다. 셋째,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방어하려고 과다한 자본을 투자해 경영자원을 소진하거나 불합리한 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해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넷째, 지배구조가 피라미드 형태나 순환출자 형태로 복잡해지는 것을 막아 상대적으로 투명한 지배구조가 가능하다. 



    그러나 차등의결권 주식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적은 비용으로 높은 의결권을 행사하게 돼 지배주주가 소수 주주나 회사의 희생을 통해 사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고, 적대적 M&A가 어려워져 경영권이 고착화될 개연성도 있다는 것이 주요 반대 논리다. 이 같은 이유로 이 제도를 일찍이 도입했던 유럽연합(EU) 국가 등에서는 현재 폐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차등의결권 제도와 함께 경영권 방어장치로 거론되는 포이즌필의 경우 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때 대주주가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값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적대적 M&A 시도자의 지분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즉 M&A 시도가 곧 독약을 삼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뜻에서 ‘포이즌필’이라고 부른다. 재계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이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9년 법무부 주최 상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당시 황인학 전경련 본부장은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인정하는 포이즌필의 도입은 우리 기업의 역차별적 족쇄를 풀고 동등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지, 현 경영진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주주가 순환출자구조 등을 통해 여러 기업을 거느리는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 특성상 포이즌필 도입은 대주주의 경영권 고착화를 불러 결과적으로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국회는 포이즌필 도입 관련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엄격한 사전, 사후심사 장치를 두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이사회의 독립성 및 기관투자가의 경영감시 기능이 미약한 상황이어서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를 과도하게 도입하게 되면 주주의 이익 극대화보다 비효율적인 소유, 지배구조의 고착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도 도입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금주는 주식 보유 수 및 비율에 관계없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합병 등 특정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거부권을 가진 주식을 가리킨다. 영국에서는 브리티시텔레콤(현 BT그룹)의 민영화와 브리티시 에어로 스페이스(현 BAE시스템스) 민영화 때 황금주를 인정했다. 하지만 최근 EU 사법재판소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상황이 아니면 황금주는 위법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황금주를 허용하는 사례는 점차 줄고 있다.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장치의 무분별한 도입은 대주주 일가를 제외한 다수 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며 제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자유로운 시장경쟁원리에 반하는 경영권 방어장치는 특정 대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도 “차등의결권 제도는 주로 비상장기업, 그중에서도 창업주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는데, 상장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에게 허용해달라는 재계의 요구는 무리한 처사”라면서 “포이즌필의 경우 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때 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고, 황금주 제도는 비상장기업을 전제로 발행이 허용되는 등 제약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재벌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 있고 현행 상법이나 정관에도 충분한 경영권 방어장치가 있는데도 차등의결권 제도 등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시대에 역행하는 제도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밝혔다.

    시행 중인 경영권 방어장치들

    적대적 M&A 방어조치 도입에 반대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동아DB]

    적대적 M&A 방어조치 도입에 반대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동아DB]

    우리나라에는 이미 다양한 경영권 방어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분공시제도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147조는 상장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대량 보유할 경우 주식의 보유와 변동 내용을 5일 이내 공시토록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공시의무를 위반한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물론, 금융위원회가 6개월 이내 기간을 정해 그 위반한 지분의 처분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상장기업 주식 보유 목적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면 주식을 보유한 날 이후 5일 동안 주식을 추가로 취득하거나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해놓았다. 이른바 적대적 M&A 세력이 곧바로 경영권을 위협하지 못하게 5일의 냉각기간을 둔 것이다. 

    이 같은 제도들은 해외 헤지펀드 등 제삼자가 국내 상장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게 됐을 때 단순투자인지, 경영 참여인지 그 목적을 공시토록 함으로써 경영진이 이를 미리 파악해 경영 참여 목적의 적대적 M&A를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지분 보유나 최근 현대차그룹 지분 보유가 적대적 M&A를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엘리엇의 지분 보유는 대주주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특정 회사 주주권이 침해된다는 점을 부각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 이득을 취하려는 전형적인 투기자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 대기업이 타깃이 됐다는 이유로 해외 펀드를 ‘투기세력’으로 공격하는 것은 글로벌 투자 자체를 봉쇄하는 행위로 글로벌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등 해외에서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가 글로벌 대기업 지분을 확보한 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지배구조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방식은 보편적인 투자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즉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제동을 건 엘리엇의 행태가 국내 대기업만을 타깃으로 한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재계 한 인사도 “모듈과 AS부품사업 등 모비스의 캐시카우 사업 부문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것에 대해 시장은 현대글로비스의 몸집을 키워 정의선 부회장 중심의 경영권 승계가 원활해지도록 하려는 목적이라고 해석했다”며 “모비스의 경쟁력 강화보다 대주주 경영권 승계를 위해 알짜 사업부를 넘겨주려는 데 대해 모비스 주주들이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모비스 주식을 보유한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은 모비스 분할이 기업가치 제고보다 정몽구-정의선 대주주 부자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을 이유로 합병 반대 의견을 냈다. 국민연금의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모비스 입장에서 합병 시너지 효과가 명확지 않아 주주가치 또는 회사가치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하며 반대를 권고했다.

    적대적 M&A 하려면 공개적으로 하라

    2015년 7월 17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치훈 당시 사장이 한 주주를 지목하며 발언권을 주고 있다. [동아DB]

    2015년 7월 17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치훈 당시 사장이 한 주주를 지목하며 발언권을 주고 있다. [동아DB]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은 적대적 M&A를 위해 특정 회사의 주식을 사려는 경우 주식 매입 희망자가 사전에 매입 기간과 매입 주식 수, 매입 가격 등을 일반에 공개하고 증권시장 밖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주식을 매수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공개매수제도다. 이 제도 덕분에 경영진은 공개매수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일찌감치 적대적 M&A에 대응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육박하는 기업이 적잖지만 적대적 M&A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이유는 경영권 참여를 위한 주식 보유의 경우 이처럼 사전에 적대적 M&A 의도를 공개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장회사의 경우에도 우리 상법은 한 회사가 비상장사의 발행 주식 총수의 10%를 초과해 취득할 때는 해당 회사에 즉시 통보토록 규정하고 있다. 비상장회사 역시 적대적 M&A에 대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신주 발행과 자사주 취득 역시 경영권 방어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적대적 M&A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들이다. 신주 발행은 유통주식 물량을 늘리고 우호적 제삼자의 지분을 높여 적대적 M&A 추진 세력의 지분 비율을 낮춰 M&A를 어렵게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자사주 취득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 수를 감소시켜 우호 지분의 의결권행사 지분율을 높이는 동시에 적대적 매수자의 주식 매집을 어렵게 한다. 

    우리사주조합제도와 의결권대리행사를 통해 우호 지분을 확보해 적대적 M&A에 대응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처럼 자본시장법과 상법, 증권거래법 등 현행법에는 국내 기업들이 적대적 M&A에 맞설 수 있는 다양한 방패를 마련해두고 있다.

    경영권 방어장치 관련법 잔혹사
    발의됐으나 통과된 적은 없다

    경영권 방어제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2006년 칼 아이컨이 KT&G를 겨냥해 공개매수를 시도한 이후부터다. 2006년 9월 당시 한나라당 소속 유승민 의원(현 바른미래당) 등은 차등의결권주 도입을 뼈대로 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듬해인 2007년 1월에는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 등이 차등의결권 제도와 포이즌필, 황금주 등을 도입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두 법안은 2008년 5월 29일 17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는 정부가 신주인수선택권을 도입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18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2015년 8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정갑윤 의원 등이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을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2016년 5월 19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20대 국회 들어 정 의원은 2016년 11월 19대 국회 때 폐기된 법안을 재발의해 현재 국회에 법안이 계류 중이다. 올해 5월 15일에는 자유한국당 윤상직 의원 등이 차등의결권, 신주인수선택권 등 경영권 방어장치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한 관계자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관련한 입법은 적대적 M&A에 대한 역기능을 부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부 세력에 의한 기업 경영 감시를 강화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결과적으로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M&A 순기능을 옹호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역대 국회에서 발의 이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던 경영권 방어장치 관련 법안들은 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운명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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