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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남북화해가 만들 한반도 에너지 혁명

러시아 천연가스가 북 거쳐 남으로 오면 ‘빅뱅’

남북화해가 만들 한반도 에너지 혁명

남북한 에너지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러시아 천연가스를 훨씬 싼값에 쓸 수 있다. [shutterstock]

남북한 에너지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러시아 천연가스를 훨씬 싼값에 쓸 수 있다. [shutterstock]

이 정도면 돗자리라도 깔아야겠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경쟁할 때, 나는 여러 자리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서는 차라리 트럼프가 클린턴보다 나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워싱턴 정치논리 바깥의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클린턴보다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운신 폭이 더 넓을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심지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대북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한 인사와 이런 사담을 나눴다. “장사꾼 트럼프와 서구에서 리더십 교육을 받은 김정은이 빅딜을 할 수도 있어요!” 희망사항을 섞은, 책임지지 못할 말이었다. 그 후 전쟁 직전까지 갈 뻔한 한반도의 긴장 상황 속에서 이런 이야기는 점차 잊혔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북한에서 다른 신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 이야기도 들렸다. 그런 소식을 듣고 설 연휴 때는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참에 나르시시스트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서라도 한반도 긴장 완화의 쐐기를 박자.”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김정은 세 사람의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도 언급했다. 

역사학자인 오항녕 전주대 교수는 ‘호모히스토리쿠스’(개마고원)에서 ‘역사는 구조, 주체의 의지 그리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우연의 3박자가 맞물려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수십 년간 굳을 대로 굳은 구조(분단체제)의 낡은 타성이 주체의 의지와 몇 가지 우연한 사건이 겹쳐 허물어질 것 같으니까. 물론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남북한 철도보다 가스 수송관의 힘이 세다

역사적 대격변의 순간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면서, 이 자리에서는 남북한 긴장 완화가 한반도 에너지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한번 따져볼 생각이다. 혹시 “에너지가 없는 북한에 엄청나게 퍼줘야지!”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잠시 편견을 접어두기 바란다. 남북한 긴장 완화가 한반도 에너지 체계에 줄 충격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흔히 남북한 긴장 완화의 변화로 한반도 철도 연결을 꼽는 이가 많다. 부산이나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의 영국 런던이나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가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렌다. 하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철도가 아니라 끊겼던 남북한의 에너지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일이다. 

분단으로 대한민국은 사실 섬과 다를 바 없다. 에너지 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독일 같은 나라는 생산한 전기가 남으면 이웃 나라에 팔기도 하고, 전기가 부족하면 사오기도 한다. 러시아 천연가스는 동유럽을 지나 서유럽까지 흘러간다. 고립된 섬인 한국에서는 이런 일을 상상도 할 수 없다. 

남북한 긴장이 완화되면 바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시베리아에서 생산한 러시아 천연가스가 북한을 지나는 수송관을 타고 한국으로 들어오면 무슨 일이 생길까. 놀라지 말라! 러시아의 값싼 천연가스가 한국으로 들어오면 국내 전력 생산과 겨울 난방을 책임지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현재의 4분의 1로 떨어진다. 

LNG의 발전단가는 약 100원으로 원자력(약 68원)이나 석탄(약 74원)보다 30%가량 비싸다. 러시아 천연가스가 들어오면 발전단가가 이론적으로는 약 25원이 된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차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른 곳에서 수입한 천연가스와 러시아산을 섞어 쓴다 해도 발전단가는 최소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유럽이나 미국에서 핵발전소 또는 석탄화력발전소가 맥을 못 추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값싼 천연가스 때문이다. 전기를 훨씬 싸게 생산하고, 심지어 겨울 난방도 해결하는 천연가스가 있으니 굳이 문제가 많은 핵발전소 또는 미세먼지 같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북한이 천연가스 수송관을 지나가게 하겠느냐고? 북한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수송관이 지나가는 대가로 통과료를 챙길 쏠쏠히 수 있으니 말이다. 수송관 설치 대가로 북한의 낡은 에너지 시스템을 교체하는 데 남한 기업이 나설 수도 있다. 이 경우 남한 기업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이다.


남쪽은 풍력발전 산업, 북쪽은 풍력발전 단지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남한에서 풍력발전기를 만들어 북한에 대거 납품하는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뉴스1]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남한에서 풍력발전기를 만들어 북한에 대거 납품하는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뉴스1]

좀 더 큰 그림도 그릴 수 있다. 현재 북한은 송배전망이 엉망인 상태라 한국처럼 특정 지역의 대형 화력발전소나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전국 곳곳으로 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바로 지역에 맞춤한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 같은 재생에너지를 통해 소규모 전력을 생산, 공급할 수 있다. 

북한은 한국의 대관령 같은 풍력발전에 최적화된 산지가 많다. 한반도 남쪽에 풍력발전 단지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생산한 풍력발전기를 북쪽에 설치해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한국은 풍력발전 산업을 육성해 일자리 문제 등을 해결하고, 북한은 안정적인 에너지원(풍력발전 단지)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4 · 27 남북정상회담 이후 서해 NLL(북방한계선) 일대에 해상 풍력 단지(초록 바람 프로젝트) 조성을 검토 중이다. 그 바다가 과연 해상 풍력에 적당한 곳인지, 어장 파괴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진지하게 따져봐야겠지만, 남북한 긴장이 완화됐을 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을지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걱정도 있다. 자원 전문가 다수는 북한에 질 좋은 우라늄이 상당량 매장돼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북한이 그동안 핵발전소에 목을 맨 중요한 이유에는 핵무기 보유뿐 아니라 자국의 우라늄을 통해 에너지 독립을 이루려는 의도도 있었다. 앞으로 북한이 보유한 우라늄이 조사돼 실체가 드러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호주 같은 나라의 사례다. 호주는 세계 최대 우라늄 매장량을 자랑한다. 호주는 그 우라늄을 수출만 할 뿐 상업용 핵발전소가 없다. 평화가 마련해준 한국의 에너지 혁명은 가능할까. 또 그 혁명의 모습은 어떨까.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는 건 나뿐인가.




주간동아 2018.05.16 1138호 (p62~63)

  • |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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