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7

2018.05.09

이슈

의사면허는 ‘철밥통’

의료사고, 강력 범죄에도 면허 취소 안 돼…신해철 담당의도 면허 유지하다 추가 과실치사

  • 입력2018-05-08 15:54:2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shutterstock]

    [shutterstock]

    2014년 가수 신해철의 의료사고로 기소됐던 의사 강모(48) 씨가 올해 1월 2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2016년 1심에선 금고형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문제는 2014년부터 이번에 구속되기 전까지 그가 집도한 수술로 3명이 숨지고 1명이 상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목숨을 잃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의사면허 정지 혹은 취소 조치는 없었던 것. 강씨는 출소 후에도 다시 의사로 일할 수 있다. 

    또한 의료 행위와 관계없는 범죄를 저질러도 의사면허는 ‘철밥통’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법무사 같은 전문직은 물론, 교사 등 공무원은 금고 이상 처벌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되거나 직업을 잃는다. 하지만 의사는 어떤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징역 등 죗값만 치르면 다시 의사로 일할 수 있다

    반복된 의료사고도 의사 자격을 뺏을 순 없다

    강씨는 법정 구속 전 전남 해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근무했다. 강씨는 지난해 10월 복통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A씨에게 복막염 진단을 내리고 3차례 수술을 했다. 그런데 강씨가 법정 구속된 뒤 다른 병원에서 출장을 온 의사가 A씨를 진찰하다 “환자 상태가 이상하다”며 대형병원으로 옮기길 권유했다. A씨는 광주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바로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유가족은 “대학병원 측에 따르면 환자의 장기가 터져 이미 변의 장내 흡착이 심했다”고 전했다. 

    강씨에게 수술을 받은 뒤 목숨을 잃은 환자는 또 있다. 2015년에는 그가 운영하던 ‘서울강외과의원’에서 ‘위소매절제술’(위축소술)을 받은 호주인 B씨가 사망했다. 신해철 씨 의료사고 이후 운영하던 병원을 접고 외국인 환자를 주로 받는 새 병원을 열었는데, 이곳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강씨는 병원 문을 닫은 뒤 월급제 의사로 일했고 해남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씨는 B씨 사건의 의료과실도 인정돼 올해 2월 금고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뿐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 진료한 환자 C씨에게 복부성형·지방흡입·유륜축소술을 했다 상해를 입혀 기소되기도 했다. 수차례 의료사고로 전남 해남까지 내려가 의사생활을 이어갔던 것. 

    여러 번의 의료사고와 금고형 선고에도 강씨가 계속 환자를 볼 수 있었던 건 의사면허가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2000년까지는 의사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금고 이상 처벌을 받으면 의사면허가 정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의료법 조항이 2000년 사라졌다. 의사들의 적극적인 진료를 막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형사 처분 후에도 의사면허가 유지된 사례는 비단 강씨만이 아니다. 2016년에는 서울 강남 한 병원의 내시경센터장으로 일하던 의사 양모(당시 58) 씨가 수면내시경 검사 중 환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법원은 양씨에게 준유사강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과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3년간 정보공개 등을 선고했다. 이 사건으로 양씨는 권고사직을 당했으나 의사면허는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면허 취소 요건은 △허위 진단서 작성 △업무상 비밀 누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 관리법) 위반 △진료비 부당 청구 △면허증 대여 △제약·의료기기 회사 리베이트 등으로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취득해 금고 이상 형을 받은 경우이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이외에 금치산자, 정신질환자,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도 의사면허 취소 대상이다. 의료법에는 의사면허 정지 조항도 있다. 1년 내 면허 자격을 정지시키는 것으로, 이 기간에 의료행위를 하거나 정지 처분을 3회 이상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태아 성 감별이나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도록 내버려둔 경우다. 

    이 같은 것만 제외하면 다른 어떤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의사면허의 효력은 유지된다. 과거에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56조에 의거해, 성범죄로 형이나 치료감호가 확정되면 10년간 의료 관련 시설에 취업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16년 3월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수면내시경 검사 중 환자를 성추행한 양씨도 형을 마친 후 다시 의료계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전문직은 전과 있으면 시험 응시도 힘들어

    고(故) 신해철 씨 장협착 수술을 집도한 의사 강 모씨가 2014년 11월 9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들어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일보]

    고(故) 신해철 씨 장협착 수술을 집도한 의사 강 모씨가 2014년 11월 9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들어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일보]

    강력 범죄에도 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되지 않는 전문직은 의사뿐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관세사도 관련법에 따라 금고 이상 형사 처벌을 받으면 면허가 정지 혹은 취소된다. 변호사는 면허 정지·취소 전 대한변호사협회의 심의를 거친다. 법무사, 세무사도 마찬가지. 공인노무사도 실형을 선고받은 뒤 형을 마쳐도 이후 3년간 자격시험 응시가 불가능하다. 교사, 경찰 등 공무원도 국가공무원법상 금고 이상 처벌을 받으면 직업을 잃는다. 

    실제로 대형 회계법인인 딜로이트안진의 전·현직 임원들이 대우조선해양 부실감사로 회계사 자격을 박탈당한 사건이 있었다. 2009년에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불법으로 형사사건 121건을 소개받은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변호사 자격을 잃었다. 

    4월 27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권미혁 의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사 형사범죄와 면허규제 문제점 및 개선방향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박호균 히포크라 대표변호사는 “의사가 사체를 유기하거나 살인죄를 범해도 의사면허를 취소할 법률이 없다. 의료인 자격 규제에 법적 공백이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의사 출신 법조인으로 고(故) 신해철 씨 유족 측 변호를 맡은 바 있다. 

    2012년 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수면유도제를 과다 투여해 사람을 죽게 하고 사체까지 유기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의사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의사면허도 취소됐다. 면허 취소 사유는 과실치사나 사체 유기가 아니었다. 의료법상 의사면허 취소 요건 가운데 하나인 마약류 관리법 위반에 해당됐던 것. 하지만 징역을 치른 후 이 의사는 다시 의료계에 복귀했다. 의료법 제65조에 의거해 의사면허가 취소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면허를 받을 수 있기 때문. 의사면허 등록 규정 위반으로 인한 취소는 1년, 자격 정지 중 의료행위를 하거나 3회 이상 자격 정지로 취소된 경우는 2년, 일회용 의료용품 재사용이나 허위 진료비 청구, 마약류 관리법 위반은 3년만 지나면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이 가능하다. 

    물론 보건복지부 심의를 거쳐 재교부 절차를 밟게 되지만 십중팔구는 의사면허를 회복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 17건 중 16건이 승인됐다. 지난해엔 그나마 1건이 승인되지 않았지만 2007~2016년 10년간 94건의 재교부 신청이 모두 승인된 바 있다. 

    지난해 7월 경남 거제시 한 병원의 의사 D(58) 씨는 단골환자 E씨(당시 41·여)에게 프로포폴을 투여했으나 수액실에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D씨는 E씨의 사체를 승용차에 싣고 다음 날 새벽 35km 떨어진 통영시 외곽의 한 선착장 근처 바닷가에 버렸다. D씨는 자살로 꾸미려고 선착장 근처에 E씨가 복용하던 수면제 약통을 놓아두기도 했다. 또 의원 내 폐쇄회로(CC)TV 영상과 약물 관리 대장도 삭제했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이나 의사면허 재교부 심의 절차라면 D씨도 징역을 산 뒤 의료계에 복귀할 수 있다.

    범죄 저질러도 의사면허 건드리면 안 돼!

    [shutterstock]

    [shutterstock]

    대한의사협회 측은 의사면허 취소 여부를 운운하기 전 의사 권익부터 보장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변호사가 패소하면 면허를 정지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는 의료를 중단하거나 피할 수 없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중증 환자가 와도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업무상 과실로 의료인의 면허 취소까지 일어난다면 방어 진료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면허 취소 전에 진료 거부권부터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도 형사 처분을 받은 의사가 계속 진료를 할 수 있을까. 일본의 경우 벌금형 이상 형사 처분을 받으면 형의 경중에 따라 의사면허가 정지 혹은 취소된다. 독일은 의사가 피고인이 되면 일단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의료 업무를 볼 수 없다. 만약 직무 수행과 관련해 위법한 범행이 있다면 1~5년 이하 직업 수행을 정지하거나 심각한 경우 영구히 직업 수행이 금지된다. 

    미국은 주마다 다른 법을 따르지만 대부분 ‘도덕적으로 훌륭한 성격(good moral character)’을 의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규정한다. 이에 의료행위와 관련된 범죄는 물론이고 의료행위와 무관한 형사사건 유죄 판결도 면허 취득 제한 사유가 되며, 이미 면허가 있는 의사는 면허 취소 및 정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