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2

2018.01.17

황승경의 on the stage

“죽기 1분 전의 깨달음… 추억은 추억, 현재에 충실하자”

뮤지컬 | ‘광화문 연가’

  • 입력2018-01-16 13: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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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CJ E&M]

    [사진 제공·CJ E&M]

    1980년대 말, 작곡가 이영훈(1960~2008)의 주옥같은 노래를 녹음하고자 카세트테이프를 준비하고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가 나오기만을 무작정 기다렸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는 광화문을 하염없이 거닐었고, 그의 멜로디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감싸주었다. 이렇듯 광화문은 노래, 응원, 촛불, 직장, 서점 등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광화문에 얽힌 우리의 기억을 엮은 뮤지컬이 광화문(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이다. 대표적 주크박스 뮤지컬(인기가요를 이야기 형태로 엮어 재창작한 뮤지컬)인 ’광화문 연가’는 2011년 초연됐는데, 이번에는 ‘죽기 직전 인생을 되돌아보는 회상’이라는 설정과 가슴 저미는 이영훈의 음악만 빼고 모든 이야기 구조가 바뀌었다. 

    뮤지컬은 임종을 앞둔 주인공 ‘중년 명우’(안재욱 분)가 마지막 1분 동안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명우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첫사랑 ‘수아’에 대한 아련한 애상이 어쩌면 실체가 아니라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무 애달파서, 억울해서, 아쉬워서 후회하고 상상하며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에 환상을 덧칠한다. 수아에 관한 마음속 추억 공간은 아내 시영에게조차 허락하지 않던 명우였다. 극본을 쓴 고선웅은 과거에 얽매이던 명우를 통해 ‘추억은 아름답게 남겨두고 현재에 충실하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명우의 시간여행 안내자이자 극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월하’(차지연 · 정성화 분)는 인생의 진리에 도달하는 과거 여행으로 안내한다. ‘세련되고 우아한 광대’인 월하는 3000명의 관객을 시종일관 좌지우지한다. 그만큼 월하 역을 맡은 배우의 색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1980년대 운동권 선봉에 서서 반미(反美)를 외치던 ‘중곤’은 지금은 미국산 자동차 딜러가 돼 아내 수아와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눈다. 


    [사진 제공·CJ E&M]

    [사진 제공·CJ E&M]

    뮤지컬은 1980년대 격렬하고 우울한 시절을 그리지만, 이영훈 노래에 담긴 유연한 휴머니티를 담고 있다. 다만 아이돌그룹 인피니트의 성규가 맡은 ‘젊은 명우’와 ‘중년 명우’가 교차하고 충돌하는 연출선이 명확지 않아 다소 혼란스럽다. 그러나 두 명우의 호소력 짙은 가창력과 섬세하고 풍부한 연기력은 관객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관객 각자가 자신의 가슴 먹먹한 추억 속에서 감상하는 이영훈의 명곡 20여 곡은 또 하나의 따뜻한 추억이 돼 옆자리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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