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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연세대 미래교육원 - 최고위 후계자 과정

“가업 이렇게 물려받아라”

중견기업 2 · 3세 위한 원 포인트 레슨… “가업 승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 조성 필요”

“가업 이렇게 물려받아라”

“2000년대 후반 ‘키코 사태’로 회사가 순식간에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걸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이후 다시 회사를 일으키기까지 아버지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도 잘 알고요. 그래서 제게 기업 경영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던, 위험천만하고 아찔하게 느껴지는 도전입니다.”

연세대 미래교육원 ‘최고위 후계자 과정’에서 만난 한 ‘2세’ 경영인이 털어놓은 얘기다.
“우리 회사처럼 규모가 작은 기업의 대표는 주된 업무가 영업이에요. 고객과 직접 만날 일 없는 B2B(business to business) 업종이라 CEO(최고경영자)라고 폼 잡을 일도 없고요. 누구를 만나든 먼저 고개 숙이는 것부터 배웠죠.”

같은 곳에서 만난 또 다른 2세 경영인이 한 말이다.
연세대 미래교육원은 지난해부터 가업(家業)을 승계하는 2·3세를 대상으로 한 최고위 후계자 과정을 운영 중이다. 기업 창업자나 전문경영인이 주로 참여하는 일반 최고위 과정과 달리 모집 대상을 ‘후계자’로 제한한 게 특징이다.


초보경영자를 위한 ‘원 포인트 레슨’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 교수.[지호영 기자]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 교수.[지호영 기자]

이 과정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대부분 부모가 일군 부(富)에 기대어 많은 것을 쉽게 누리는, 이른바 ‘금수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커리큘럼도 ‘부잣집 자제’들의 인적 네트워크 강화에 주안점을 둔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러나 실제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2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에 걸쳐 있는 2 · 3세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컸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잘 대처하는, 능력 있는 경영자가 되려는 의욕도 넘쳤다. 

매주 월요일 이들에게 제공되는 수업 내용도 다채로웠다. 연세대 철학, 경제학, 경영학 등 여러 학과 교수들과 김태원 구글코리아 상무, 강희석 베인앤컴퍼니 부사장,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등 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교수진은 인문학에서부터 마케팅, 리더십까지 다양한 분야를 강의했다. 11월 27일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진행한 ‘4차 산업과 융합, 인문학에서 열쇠를 찾다’ 강의에서는 수강생들이 3명씩 짝을 지어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바꿀 미래 모습’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연세 미래 최고위 후계자 과정 책임교수인 신현한(52)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학생들의 높은 수업 참여도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우리 학생 중 널리 알려진 기업가(家)의 자제는 거의 없다. 수강생 대부분은 부모가 맨손으로 일군 연매출 수십억~수백억 원대 중소·중견기업을 어떻게 하면 한 단계 더 발전시킬까 고민하는 젊은 리더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서로 고민을 나누고 해법을 찾아가며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다. 상당수 학생의 강의 출석률이 100%에 육박할 정도”라고 소개했다. 

경북 구미에 본사가 있는 외식업체 교동F&B의 이성혁(27) 대표도 즐겁게 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 한 명이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공기업에 취업해 직장인으로 일하던 그는 2015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회사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그가 경영에 뛰어든 후 매장 수가 급속히 늘면서 회사 규모가 부쩍 커졌지만, 경영에 대해 배운 게 없다 보니 시행착오도 적잖았다고 한다. 그는 “좋은 경영자가 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이 과정을 알게 됐다. 월요일마다 거의 한 번도 빠짐없이 구미에서 올라올 만큼 이 과정에 푹 빠져 있다”고 밝혔다. 

이성혁 대표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리더십 강의다. 윤 회장은 그를 비롯한 2 · 3세 경영인들 앞에서 ‘명심보감’의 한 구절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天不生無祿之人 地不長無名之草)’를 소개했다. ‘하늘은 녹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수업을 듣다 문득 회사의 50대 본부장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고 털어놓았다. 


11월 27일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연세 미래 최고위 후계자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홍중식 기자]

11월 27일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연세 미래 최고위 후계자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홍중식 기자]

연세대 캠퍼스.[동아DB]

연세대 캠퍼스.[동아DB]

“외식업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전문가예요.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 그 무렵 저와 여러 문제로 갈등을 빚었죠. 생각해보니 제가 제 뜻만 옳다고 여기고 어떻게든 그것을 관철하려다 보니 다른 조직원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것 같더라고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본부장님께 ‘제 마음에 날이 서 있어 조직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보지 못하고 서두르기만 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면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하며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게 출발점이 돼 대화 나눌 일이 많아졌고, 이제는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됐어요. 회사 일의 많은 부분을 그분에게 믿고 맡기니, 저는 새로운 분야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돼 좋습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지금 우리 기업계에는 이성혁 대표 같은 2·3세가 적잖다. 체계적인 경영 수업을 받은 적이 없고 자신이 가업을 잇게 되리라는 생각조차 없던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승계의 ‘숙명’과 맞닥뜨린 이들이다. 

남성정장 제조업체 ㈜우양통상의 이현수(37) 부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2남1녀 중 막내인 이 부사장은 외아들인 이성혁 대표보다 더욱더 자신이 ‘가업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여겼다. 1990년 아버지가 창업한 기업이 2001년 베트남에 진출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걸 보면서도 자신이 그 회사에 몸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2007년 아버지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면서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아버지가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막내아들에게 ‘회사에 들어와 일을 배우라’고 권한 것이다. 이 부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했고, 베트남 공장 등을 거치며 회사생활 전반을 경험했다. 이제 아버지 건강이 많이 회복됐지만 이 부사장은 우양통상의 해외시장 개척을 담당하며 계속 업무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는 “현재 우리 회사 생산량의 약 70%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세계 곳곳으로 출장을 다녀야 하지만 월요일 수업만큼은 되도록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공항에서 바로 학교로 달려올 때도 많다. 그만큼 이 시간은 내게 의미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수업 가운데 하나는 이홍 광운대 교수가 담당한 세종대왕 리더십 강의였다고 한다. 이홍 교수는 태종과 세종의 관계를 설명하며 “세종은 당시 창업자에게 회사를 물려받은 2세 경영인과 같은 지위에 있었다. 그는 1세의 카리스마를 답습하는 데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자신만의 리더십을 세웠고, 그것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소개했다고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1세의 존재, 그와 함께 가업을 일군 창업 동지들이 여전히 발언권을 가진 채 건재한 환경,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형제관계 등 세종이 처해 있던 여건을 오늘의 2세 경영인을 둘러싼 역학관계와 연결해 설명하는 이홍 교수의 수업은 이 부사장 동기들 사이에서 큰 화제였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 창업 1세들은 리더십과 자기주장이 매우 강한, 이른바 ‘알파 메일’인 경우가 많다. 이들과 ‘부자관계’에만 머물 때는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사장-종업원 관계’까지 맺으면 많은 2세가 어디에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할 심적 어려움을 겪는다. 본 과정에서는 그런 고민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시원하게 긁어주는 강의를 제공하니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고 소개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상당수 창업 1세는 자녀에게 양가적 감정을 갖는다. 언젠가 기업을 물려받게 될 딸, 아들이 자신보다 뛰어나길 원하지만, 동시에 지금 당장 자신을 능가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2세가 회사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걸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 성과를 바탕으로 자기 자리를 노리지는 않을지 늘 걱정하는 것이다. 2세의 회사생활을 격려하면서도 견제하는 1세의 존재는 상당수 2세에게 디딤돌이자 걸림돌이 된다. 여기에 형제관계까지 얽히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후계자만 공유할 수 있는 끈끈한 네트워크

신현한 연세대 교수가 최고위 후계자 과정 제자인 추상혁 부장, 이석주 이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왼쪽부터).[지호영 기자]

신현한 연세대 교수가 최고위 후계자 과정 제자인 추상혁 부장, 이석주 이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왼쪽부터).[지호영 기자]

연세 미래 최고위 후계자 과정을 맡은 교수 중에는 이런 갈등을 헤쳐 나와 이제는 기업 경영의 전면에 서게 된 2세 경영인도 있다고 한다. 그는 수업시간에 부모가 자신보다 동생을 더 많이 지원하는 바람에 겪게 된 수많은 갈등을 솔직히 털어놓은 뒤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겪으며 내가 얻은 건 ‘부모가 계시는 한 이 문제가 결코 끝나지 않겠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단숨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욕심을 내면 상황만 악화된다. 그냥 ‘내일도 날이다. 오늘을 버티자’고 생각하라. 때로는 회사 경영보다 가족관계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한 2세 경영인은 “그 수업을 들은 뒤 말 그대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날 동기들과 각자 자기 가족 문제를 털어놓으며 세상 누구 앞에서도 느끼지 못한 편안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또 다른 2세 경영인은 “아버지가 특정 지역에 매장을 내는 것과 관련해 내게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그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느냐가 경영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컸다. 학교 친구들에게 이런 어려움에 대해 말하면 ‘그게 무슨 고민거리냐. 이 ‘금수저’ 같으니’라고 얘기할 것 같아 답답했는데, 그때 최고위 후계자 과정 동기들이 든든한 힘이 됐다.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내 고민을 얘기했고, 몇몇 동기가 함께 현장 답사를 가줬다. 그들의 솔직한 의견도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런 일을 거치며 연세 미래 최고위 후계자 과정 동기생들 사이에는 여느 최고위 과정과는 비교하기 힘든 그들만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고 한다. 아직 기업 경영을 총괄하는 지위에 오르지 않은 이들의 만남인 만큼, 이해관계보다 ‘진심’을 우선할 수 있는 것도 이 과정의 장점으로 꼽힌다. 

연세대 미래교육원과 협조해 이 과정을 꾸리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마케팅협회의 황선희 본부장은 “연령대와 환경이 비슷한 청춘 남녀가 많이 모이다 보니 이 수업을 듣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이도 적잖다”고 귀띔했다. 1기 수강생 중 50%, 2기 중에는 34%가 여학생으로 남녀비율도 잘 맞는 편이라고 한다. 벌써 이들 사이에 여러 커플이 탄생했고, 한 커플은 12월 결혼식을 올린다. 황 본부장은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연세 미래 최고위 후계자 과정에 아이를 보내면 좋은 짝을 만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는 이를 노리고 자녀를 이 프로그램에 등록하게 하는 부모도 많아질 것 같다”며 웃었다.


가업 잇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의 인문학 수업 현장.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의 인문학 수업 현장.

신 교수에 따르면 중소기업 후계자를 위한 최고위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1960~80년대 20, 30대 나이에 창업한 1세 경영인들이 어느새 60, 70대가 돼 은퇴를 고민할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반면 가업 승계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 인식 탓에 일찍부터 후계자 수업을 시작한 자녀는 많지 않은 편이다. 화장품원료 공급 업체인 ㈜삼광켐의 이석주(38) 이사도 그런 사례다. 2남 중 장남인 그는 대학 졸업 뒤 삼성전자에 취업해 샐러리맨으로 승승장구했다. 아버지 또한 “중소기업 사장보다 삼성맨이 훨씬 낫다”며 대기업에 취업한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5년 전 그는 결국 아버지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마스크팩 등 화장품 제조업체로 유명한 씨엔에프 코스메틱팩토리의 추상혁(33) 해외마케팅 부장도 삼성SDS를 다니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이들이 짧은 시간에 리더십을 기르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의 경영 능력을 갖추면서 동시에 복잡한 승계 절차까지 마무리하려면 연세 미래 최고위 후계자 과정 같은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게 신 교수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연세대는 지속적으로 후계자 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성공한 2세 경영자의 사례로 보는 case study’ 같은 강의를 들으며 기업 경영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고 ‘상속, 증여와 글로벌 자산의 절세 전략’ 등도 익히게 된다. 신 교수는 “해외에서는 가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여기지 않는다. 창업자가 열정을 바쳐 키운 기업을 자녀가 물려받는 게 국가경제에도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세제 지원 등 가업 승계를 돕는 다양한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도 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2 · 3세 경영인들이 모여 진취적으로 미래를 모색하는 프로그램이 확산돼 가업 승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입력 2017-12-05 15:15:13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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