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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비에서 눈 돌리면 코 베어 간다

120억 공사를 200억에 낙찰 주고 리베이트 받는 등 부정 의혹 잇따라

관리비에서 눈 돌리면 코 베어 간다

“잘하겠거니 하고 믿고 있으면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서울 한 아파트의 전 입주자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상당수 아파트가 관리비를 부풀려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2년 배우 김부선(56) 씨의 난방비 비리 폭로로 아파트 관리비 문제가 불거졌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관리비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난방비 등 이용요금 외에도 관리비가 필요 이상 걷힌 사례가 허다하다.

아파트 관리비는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조사한 결과 최근 5년간 아파트 관리비는 물가상승률의 4배가량 올랐다. 올해 상반기 기준 공동주택 관리비 물가지수는 108.68로 2012년 이사분기(87.40)에 비해 24.3%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에 불과했다. ‘주간동아’는 전국 30여 개 아파트의 관리비 부정 사용 의혹 사례를 분석해 관리비가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확인해봤다.


누군가는 공짜로 쓰고 있다

‘주간동아’가 수집한 아파트 관리비 제보 자료들.[동아DB, 지호영 기자]

‘주간동아’가 수집한 아파트 관리비 제보 자료들.[동아DB, 지호영 기자]

굳이 난방비가 아니더라도 일부 입주민이 관리비를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사례가 있다. 관리비는 크게 공용관리비, 개별사용료,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나뉜다. 공용관리비는 청소, 경비, 아파트 관리실 등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소독, 아파트 내 전구 교체 등 입주자 편의를 돕고자 사용하는 돈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정기적인 아파트 유지·보수 공사를 위해 모아두는 금액이다. 매달 일정 금액을 걷어 모으는 방식이다. 개별사용료는 난방비, 가스요금,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으로 각 가구가 사용한 만큼 부과된다. 

가구별 사용량이 각종 검침기에 정확히 남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개별사용료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앙난방 시스템 등 전 가구의 개별사용료를 모아서 내는 일부 아파트는 개별사용료 산정 과정에 관리사무소 등이 개입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 김부선 씨가 사는 아파트에서 난방비 비리 의혹이 불거진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최근 부산 서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1년간 관리비와 전기요금을 내지 않고 이를 입주민들에게 떠넘긴 입주자대표가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부산 서부경찰서는 11월 26일 업무상 배임혐의 등으로 해당 아파트의 전 입주자대표 김모(65)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1996년 4월부터 올해 7월까지 89가구가 사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로 재직하면서 관리사무소의 묵인 아래 월 18만 원가량의 관리비와 전기요금을 내지 않았다. 김씨가 그간 내지 않은 관리비와 전기요금은 총 4600여만 원. 이 금액은 입주민들이 떠안고 있었다. 일부 주민이 전기 사용명세와 전기요금 부과명세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김씨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그의 혐의가 드러나게 된 것. 

21년간 김씨가 아파트 관리비를 내지 않고도 들키지 않은 이유는 관리사무소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서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 업체 교체 등 인사 권한을 갖고 있어 관리비를 부과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자주 바뀐 데다 관리사무소 측이 일종의 관례라고 여겨 김씨의 비리를 고발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아파트 업계에 따르면 일부 입주자대표가 권한을 남용해 개별사용료를 내지 않는 것을 막고자 최근 지은 아파트는 대부분 개별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관리사무소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말 중앙난방 시스템이 노후화돼 교체를 앞둔 서울 성북구 A아파트는 난방방식 선택 투표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 투표에서 입주자의 80%가 중앙난방을 선택했다. 왜 최근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그건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의 공고문 때문이었다. 공고문에 따르면 중앙난방 시스템 구축에 드는 공사비는 약 190억 원, 개별난방 시스템은 약 153억 원이었다. 그렇지만 가구별 부담금은 오히려 중앙난방이 적다고 적혀 있었다. 즉, 중앙난방의 경우 가구별 부담금이 평균 20만 원인데 개별난방은 평형에 따라 120만~800만 원 선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가구별 부담금은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내는 공사비에 다 포함된 것이라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데도 마치 각 가구가 추가로 내야 하는 비용처럼 착각을 유도한 것이다.
 
해당 아파트 관계자는 낙찰 업체와 입주자대표 간 리베이트 의혹을 제기했다. 입찰 전 입주자대표가 배관업체들을 각각 만나 200억 원 이상 공사비를 보장할 테니 10%가량 리베이트를 요구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공사비로 120억 원을 제시한 업체는 탈락했고 206억 원을 제시한 업체가 낙찰됐다. 이후 설계 변경으로 공사비가 줄었음에도 관리비에 가구당 7만 원씩 추가 공사비를 청구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에 일부 입주민이 경찰에 고소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것저것 붙은 공사비

자격이 없는 하청업체가 아파트 도색을 맡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뉴스1]

자격이 없는 하청업체가 아파트 도색을 맡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뉴스1]

주차장 조명시설 교체도 아파트 수리·보수 공사비 과다계상의 주요 사례로 꼽힌다. 2012년 인천 연수구 B아파트에서는 주차장 조명을 LED(발광다이오드)로 교체하기로 하고 업체를 선정했다. 그러나 입주민 공청회도 없이 공사 입찰절차가 진행됐다. 당시 한 공사업체가 ESCO사업을 활용하면 굳이 장기수선충당금을 쓰지 않고도 외상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ESCO사업은 고효율 에너지 설비를 설치하고 싶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설치가 어려울 때 설비회사가 국가의 자금지원을 받아 설치비를 부담하는 제도. 이 비용은 추후 설비 이용자들이 갚아야 한다. 업체는 이 설치비용을 매달 절약된 전기요금으로 지불할 수 있으니 사실상 입주민들의 추가 부담은 없다는 논리를 폈다. 

입주자대표와 관리사무소는 이 같은 이유로 주민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를 건너뛰었다. 대다수 입주민이 제대로 된 정보 없이 공사에 찬성하는 투표를 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 뒤 전기요금 절약분 외에 매달 400만 원 가까이를 가구별로 나눠 내야 했다. 

올해 인천 청라지구 한 아파트에서는 관리소장이 엘리베이터 부품 교체 비용을 과다계상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로프 관련 사고가 생기자 관리소장이 사고 위험이 있다며 540만~ 550만 원 견적서를 입주자대표회의에 보고했다. 

입주자대표들은 입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최대한 빨리 업체 선정에 돌입하려 했다. 하지만 한 입주자대표가 견적서에서 허점을 포착했다. 필요 이상으로 부품 가격이 비싸게 산정돼 있었던 것. 단위에 수량을 곱한 값이 잘못 입력돼 있는 등 명백한 서류상 오류도 있었다. 결국 다른 업체를 알아봤고 300여만 원으로 엘리베이터 로프를 교체할 수 있었다. 

입주민들이 수리·보수 공사에 밝지 않다는 사실을 이용해 공사비를 부풀리는 사건은 이외에도 많다. 2015년 경기 안산시의 2000가구 아파트에서는 도장 공사비용 과다계상 의혹이 제기됐다. 아파트가 도장 공사비용으로 지급한 금액은 약 11억 원. 비슷한 규모의 다른 아파트가 5억 원가량이 들었음을 감안하면 2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해당 업체가 직접 도장에 나서지도 않았다. 아파트 도장 공사 입찰을 받은 C업체는 또 하청을 주는 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원청업체가 1차 하청업체에 지급한 금액은 5억 원가량. 결국 공사는 재하청을 거쳐 3차 하청업체가 3억 원을 받고 진행했다. 해당 아파트 입주자는 “도장 마감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페인트가 떨어지고 부풀어 오르는 등 부실공사의 전형이었다”고 밝혔다.


“대표 됐으니 나도 한몫 챙겨볼까”

승강기 부품 가격이나 유지비를 부풀리는 사례도 많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shutterstock]

승강기 부품 가격이나 유지비를 부풀리는 사례도 많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shutterstock]

10월 경찰이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입주자대표와 관리소장 등이 보수 공사 입찰과정에서 특정 업체가 선정되도록 의견을 모아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 2014년부터 C업체는 도장 공사를 따내고자 입주자대표들에게 접근했고 현금과 선물 등 금품을 지급해 공사 낙찰을 약속받았다.
이후 C업체는 도장 공사 입찰과정에서 들러리 업체를 끌어들여 구색을 맞춘 뒤 이들 가운데 최저가를 적어내는 식으로 ‘입찰담합’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입찰담합 혐의가 입증될 경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66조에 의거해 처벌받게 된다. 

2014년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에서도 똑같은 사건이 있었다. 한 업체가 15억9000만 원에 도장 공사를 입찰받았지만 무면허 도색업자에게 하청, 재하청을 줘 일은 하지 않고 돈만 챙겼다. 입주민들이 부실공사 문제점을 지적하자 역시 일부 입주자대표를 금품 등으로 매수해 공사 잔금까지 받아갔다.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아파트 도장 전문업체 14곳과 이들이 공사한 100여 개 아파트를 상대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는 것 외에도 일부 입주자대표는 관리비명세 일부를 조작해 주머니를 채우기도 한다. 2015년 서울 성북구 D아파트는 입주자대표들이 받는 회의 출석 수당 등의 운영비를 규정보다 많이 받아왔다는 사실이 서울시 감사 결과 적발됐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운영규정에 명시된 상한 금액은 월 173만여 원이었지만 적게는 100만 원, 많게는 2배가량을 추가로 지출한 것. 

입주자대표회의 의결 없이 관리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성동구 한 아파트의 관리비 회계를 확인한 결과 전 입주자대표가 불우이웃돕기, 명절 떡값 등으로 500만 원가량을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의결 없이 돈을 썼고 용처조차 불분명해 구청은 해당 금액을 환수하라고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아직 환수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피해 아파트의 한 주민은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는 관리비를 개인적으로 챙기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같다. 입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대로 된 대표를 선출하고 감시하는 것이지만 다들 생업으로 바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판국이라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입력 2017-12-05 11:02:27

  • 박세준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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