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8

2017.10.04

골프

“이렇게 많은 관중은 처음”

제네시스챔피언십 김승혁 우승… 선수, 갤러리를 위한 초특급 서비스 제공

  • 김종석 동아일보 차장 kjs0123@donga.com

    입력2017-10-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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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던롭피닉스토너먼트를 취재 갔을 때 일이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해마다 열리는 이 대회의 출전 선수 83명 가운데 20명이 한국(계) 선수였다. 코스 어디서든 한국말을 쉽게 들을 수 있어 여기가 부산이나 광주가 아닌가 헷갈릴 정도였다.

    당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투어는 ‘헬조선’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만큼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와 달리 KPGA투어는 찬밥 신세였다. 2006년 17개였던 KPGA투어 대회 수는 2015년 KLPGA투어의 절반도 안 되는 12개에 그쳤다. 생계까지 위협받던 한국 남자 프로골프 선수들은 해외로 발길을 돌렸고 일본 진출이 러시를 이뤘다. 일본에서 만난 한 한국 선수는 “혼자 호텔에서 생활하며 동전 세탁기에 빨래를 돌릴 때 참 서럽다. 국내에도 대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러 9월 24일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대표 이준희)에서 끝난 KPGA투어 제네시스챔피언십에는 출전 선수 120명 가운데 외국 투어에서 뛰는 해외파 선수가 20명도 넘었다. 총상금이 역대 국내 최대 규모인 15억 원에 이르고 우승 상금도 3억 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 앞서 열린 올 시즌 KPGA투어에서 상금랭킹 상위 5명이 10.6개 대회에서 획득한 평균 상금이 3600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게다가 우승자에게는 5500만 원 상당의 G70 승용차 한 대를 부상으로 줬다. 다음 달 제주에서 개최되는 국내 최초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투어 정규대회 더CJ컵@나인브릿지와 내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열리는 제네시스오픈 출전 자격까지 주어졌다.

    모처럼 선 큰 장에서 ‘잭팟’ 주인공은 한일 양국을 오가며 투어생활을 하고 있는 김승혁(31)이었다. 그는 나흘 연속 선두를 질주한 끝에 최종 합계 18언더파로 정상에 올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부터 직접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KPGA투어 사상 최초로 시즌 상금 6억 원을 돌파하는 새 이정표도 세웠다.





    6월 KPGA투어 데상트코리아·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당시 김승혁은 “9월에 태어날 딸의 태명을 승리로 지었는데 정말 승리를 가져다줬다”며 기뻐했다.

    그사이 그는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느라 주춤거렸다. 하지만 이번 대회 때부터 다시 가족과 지내며 상승세를 탔다. 마지막 날 1만8000명 넘는 팬이 골프장을 찾아 18번 홀 그린 주변을 에워싸고 김승혁의 우승을 축하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KPGA투어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정의철 홍보팀장은 “이런 관중 수는 처음 봤다. 역대 최고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남자 골프의 양대 산맥인 최경주(47)와 양용은(45)도 8년 만에 국내 대회에 동반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 둘은 2003년 SK텔레콤오픈 마지막 날 이후 처음 같은 조로 플레이까지 했다.

    ‘달걀 두 개를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있듯, 최경주와 양용은은 전성기 시절 같은 대회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양용은이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아시아 최초로 메이저 챔피언이 된 뒤 최경주와 다소 서먹해진 관계가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회 주최 측 처지에선 두 선수를 모두 부를 경우 초청료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회에서 두 선수는 비록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컷 탈락했지만 대회 흥행을 거들었다. 팬 서비스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후배들을 향한 뼈 있는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최경주는 “요즘 후배들이 선배에게 인사를 잘 안 하더라. 첫인상이 중요한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양용은은 “제주에서 농사일 하는 아버지를 거들다 20세가 다 돼 시작한 골프로 전 세계를 누빌 수 있었다. 후배들도 꿈을 갖고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했다.

    초특급 대회답게 차별화된 이벤트도 많았다. 대회 주최 측은 국내 필드의 ‘여고남저’ 현상을 의식한 듯 선수들을 위해 작심하고 사기 진작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라는 의미에서 골프장에서 차로 5분 거리에 공식 호텔을 지정해 무료로 제공했다. 조식 장소는 호텔과 골프장 등 두 군데로 이원화해 선수들이 스케줄에 맞춰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드라이빙 레인지에는 연습장 전용 공이 아닌, 실제 경기에 사용하는 공을 비치했다. 선수들이 편하게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는 ‘플레이어스 디너’ 행사를 열기도 했다. 선수의 가족들을 위한 패밀리 라운지와 돌봄 서비스도 제공했다.



    김승혁은 “숙소에 선물까지 넣어준 걸 보고 감동받았다. 모든 선수가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주최사에 감사드린다”고 고마워했다. 최경주는 “제네시스챔피언십이 물꼬를 텄으니 다른 대회들도 이 대회를 앞지르거나 최소한 따라잡으려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밝혔다.

    9월 18일에는 최경주, 최진호(33) 등 스타들이 초등학교 골프 유망주 24명에게 드라이버, 쇼트게임 등을 가르치는 ‘제네시스 주니어 스킬스 챌린지’에 참가해 뜻깊은 재능기부에 나섰다.

    대회 기간 갤러리를 위해 전국 주요 맛집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미쉐린 푸드존’도 운영했다. 어린이 골프 체험과 키즈 시네마 등 놀거리와 G70 한 대를 비롯한 갤러리 경품도 풍성했다. 1~4라운드에 매일 취재진에게 대회 관련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 브리핑은 PGA투어에서나 볼 수 있는 서비스였다.

    대회 장소인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는 2년 전 프레지던츠컵을 개최한 명문 코스다. 3월부터 이 대회를 준비한 결과 최상의 페어웨이와 그린 상태로 출전 선수들로부터 호평을 들었다.

    제네시스는 발생, 기원(起源) 등의 의미를 지녔다. 제네시스챔피언십은 출전 선수와 갤러리들의 밝은 표정 속에서 KPGA투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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