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5

2017.09.13

인터뷰 | 사진 스튜디오 ‘시현하다’ 김시현 대표

“소비되는 사진보다 소장되는 사진을 찍고 싶다”

증명사진에 독특한 배경색으로 개성 담아…인스타그램 팔로어만 11만 명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9-12 10:53:5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난해 중반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독특한 증명사진이 퍼지기 시작했다. 얼굴 식별 용도로 쓰이는 증명사진에는 흰색이나 파란색 바탕에 무표정한 얼굴이 담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증명사진에는 매번 다른 배경색이 사용됐다. 단순히 배경색만 바꿨을 뿐인데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초상사진으로 변했다.  

    새로운 증명사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현재 11만 명 넘는 사람이 해당 사진 스튜디오의 인스타그램을 팔로하고 있다. 특별한 증명사진을 찍는 데는 인당 10만 원이 든다. 적잖은 비용이지만 매달 촬영 예약은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마감된다. “이달에는 30초 걸렸네요.” 증명사진에 개성을 담는다는 김시현(24·사진) ‘시현하다’ 대표의 말이다. 그를 9월 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사진관 운영

    언제부터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나.
    “학창 시절부터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일을 좋아했다. 초중고 12년간 전학을 7번 다닐 정도로 이사가 잦았다. 대부분 경상도에 살았고 지리산 자락이나 베트남에서 학교를 다닌 적도 있다. 매번 새 환경에 적응해야 했는데, 이때 도움이 된 것이 사진이었다. 친구들 사진을 찍고 보정해줬다. 친구들이 자기 사진에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껴 내 사진관을 열겠다는 꿈을 가졌다.”

    디지털 카메라 등의 발달로 사진관이 사양길을 걷고 있는데 사진관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증명사진 때문에라도 동네에 사진관 하나씩은 필요하다. 내 사진관이 동네에서 1등 할 자신이 있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보통 전공자라면 일반 사진관이 아니라 사진 스튜디오를 여는 것이 목표 아닌가.
    “그래서 처음에는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교 시절 마음에 드는 주민등록증용 증명사진을 얻으려고 동네 사진관 5곳을 돌았다. 동네 사진관은 사진을 아름답게 찍는 능력보다 결과물을 보기 좋게 보정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사진관에 취업해 기술을 배워 최대한 빨리 사진관을 차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대학에 진학했다.
    “부모님이 배움에는 때가 있다며 반대했다. 당시 어머니가 ‘일단 대학에 가라. 대학 교육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때 그만두면 된다. 대학에 갈 성적이 안 되니까 안 간다고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해 재수해서 중앙대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진 않나.
    “대학에 진학하니 훌륭한 사진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사진의 의미나 색채를 고민하고, 패션 화보 촬영 등 현장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지금의 증명사진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졸업작품전 출품용으로 증명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사진관을 차리는 게 목표여서 증명사진을 이용해 졸업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증명사진 한 장은 작품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증명사진을 광고 같은 상업사진으로 볼 수도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개성이 살아 있는 증명사진을 찍어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표본으로 의미 있는 1000명을 목표로 증명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850명을 찍었다.”  



    원래의 매력 잘 담는 것이 내 소임

    스튜디오 한쪽에는 지금까지 찍은 증명사진 일부가 전시돼 있었다. 청록색, 올리브색, 어두운 분홍색 등 다양한 배경색이 돋보였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인상도 가지각색이었다. 모두 무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이었지만 입을 살짝 벌린 사진과 굳게 다문 사진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익살스럽게 찡그린 얼굴의 사진도 있었다.

    배경색을 다르게 쓰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인물을 제외하고 증명사진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것이 배경이다. 증명사진은 35×45mm 작은 틀 속에서 눈썹이 보여야 하고, 귀가 드러나야 하며, 정면 모습만 가능하다. 또 흰색 배경 혹은 무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이에 착안해 무늬가 없는 단색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라면 어떤 색이든 증명사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인들을 섭외해 인상에 잘 어울리는 색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배경색이 다른 증명사진도 신분증에 사용할 수 있다’며 ‘시현하다’에서 찍은 사진으로 신분증을 발급받은 얘기를 SNS에서 봤다.
    “증명사진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 초기에는 친구들에게 증명사진을 찍어준 뒤 신분증을 발급받아달라 부탁하고 이 신분증을 SNS에 올렸다. 요즘은 증명사진을 찍어간 분들이 신분증을 발급받았다며 알아서 사진을 올린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배경색으로 개성을 표현한다지만 자신에게 어떤 색이 어울리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외모와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나에게 어울리는 색, 좋아하는 색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배경색을 고르라고 하면 어려워한다. 요즘에는 상담하면서 좋아하는 색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어울리는 배경색을 택하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배경색 외에도 사진 속 표정이 다들 미묘하게 다르다.
    “웃는 모습이든 살짝 입을 벌린 모습이든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순간을 포착해 증명사진으로 남기려 하고 있다. 증명사진 관련 규정 중 표정에 관한 내용은 없다. 웃거나 약간 찡그린 (증명)사진으로도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개성을 살리려고 메이크업이나 소품도 사용하나
    “쓰지 않는다. 사진 찍으러 온 사람이 가진 고유의 분위기를 끌어내는 것까지가 내 소임이다. 그래서 사진관에 온 모습 그대로를 담으려 노력한다.”

    촬영 후 보정도 거의 안 하나
    “보정은 필요하다.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은 많이 다르다. 눈으로 볼 때는 그 사람의 표정이나 매력이 반영돼 작은 흠이 드러나지 않지만 사진에는 자비가 없다. 모공이나 잡티가 그대로 다 보인다. 피부를 매끈하게 하거나 안면 비대칭을 잡아주는 정도의 보정을 하고 있다. 사진 당사자와 함께 보정 작업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만족해한다. 필요 이상의 보정을 요구하면 인상을 해칠 수 있다며 말리는 편이다.”



    작품이 생업 돼 꿈에 한 발짝 더

    졸업작품을 위해 시작한 증명사진이지만 이제 생업이 돼가는 것 같다.
    “처음 작업을 할 때는 돈을 받지 않았다. 내 작업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양해를 구하고 찍었다. 지금도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제 졸업작품의 일환이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전시회를 열 때 대중에게 사진이 공개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공짜로 증명사진을 찍어주다 보니 예약해놓고 촬영을 하러 오지 않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당시만 해도 스튜디오가 없어서 촬영 때마다 스튜디오를 유료로 빌렸다. 금전적 부담이 커지면서 스튜디오 렌털 비용을 충당하자는 심정으로 10만 원을 받게 됐다.”

    돈을 받고 촬영하면서 오히려 더 알려진 것 같다.
    “그렇다. 오히려 돈을 받자 촬영 때 사람들이 더 준비하고 온다. 비싼 돈과 시간을 들인 만큼 의상이나 화장에 신경 쓰고 온다. 관심이 많아지니 상담도 편해지고 결과물도 좋아졌다. 다른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스튜디오도 마련하게 됐다.”

    인스타그램 등 SNS가 ‘시현하다’를 알리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작업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왔다. SNS를 홍보의 장으로 생각한 건 아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이를 공유하면서 작업물이 널리 퍼졌다. SNS에 일상을 사진으로 공유하는 문화 덕을 톡톡히 봤다.”

    ‘시현하다’의 성공을 보고 비슷한 사진을 찍는 업체도 대거 등장했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나에게 증명사진은 돈을 버는 수단이라기보다 작업의 일환이다. 이 때문에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하루 최대 10명만 촬영한다. 내 작업이 인기를 끌자 사진관 20여 곳에서 비슷한 증명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따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 아이디어가 흔해져 작업 자체의 가치가 사라질까 봐 걱정된다.”

    법적 대응을 생각해본 적은 없나
    “변호사에게 법률 상담을 받아봤다. 어떤 업체는 내가 인스타그램에 글 쓰는 방식까지 따라 하면서 자신이 처음 다양한 배경색의 증명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주장해 대응해야겠다 싶었다. 상담 결과 아이디어나 슬로건, 영업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경우 부정경쟁방지법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법적으로 다툴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유가 있나.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 누리꾼이 내 SNS에 단 댓글을 봤다. ‘원조면 사진의 질을 높여 승부할 생각을 해야지 유사 업체가 등장했다고 칭얼거리는 것은 프로답지 못하다’는 내용이었다. 기분은 조금 나빴지만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더 좋은 사진을 찍는 데 집중하고 있다. ‘컬러 증명사진’을 한다는 업체가 여전히 많지만 그래도 시간과 돈을 들여 내 스튜디오를 찾아주는 사람이 느는 것을 보면 내 노력이 보상받고 있는 것 같다.”



    얼굴 사진 제일 잘 찍는 사진관

    어떻게 보면 주당 500만 원씩 버는 성공한 청년 창업가다.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사진관 한다고 주위에 말하고 다니기는 했어도 정확한 청사진은 없었다. 가족도 신기해한다. 빨리, 편하게 찍는 일반적 증명사진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느리지만 남과 다른 사진을 찍는 방식에 매력을 느낀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사진관을 여는 꿈은 이미 달성한 것 아닌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건물 1층에 쇼윈도가 있는 사진관을 열고 싶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권리금만 5000만 원이 넘더라. 이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버는 족족 저축하고 있다.”

    증명사진 외 요즘 열중하는 작업 분야가 있다면.
    “증명사진을 가족사진으로 확장하고 싶다. 가족이 함께 찍는 게 아니라 따로 사진을 찍고 이를 모아 가족사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가족의 개념이 혈연에서 개인 간 공동체로 바뀌고 있는 만큼 가족사진에도 새 형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작업하고 있는데 부모들의 반응이 좋다. 사진관에서 본인이 주인공인 독사진을 찍은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무척 즐거워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최종 목표가 있다면.
    “초상사진에 정통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남녀노소 어떤 손님이 찾아와도 만족할 만한 사진을 찍고 싶다. 앞으로도 초상사진과 관련된 공부나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