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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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중관계 봄날은 갔다, 和而不同(화이부동) 관계로 재설정”

제2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시진핑 주석에게 한반도는?’ 주제 강연

  • 윤융근 화정평화재단  ·  21세기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7-08-28 15: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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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중국은 북한을 버렸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한반도 위기감이 높아지는 지금 또 한 번 북한을 버릴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전문가인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 · 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8월 22일 개최한 제2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시진핑 주석에게 한반도는?’ 주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 명예교수는 이날 “한중관계의 봄날은 갔다”며 “과거의 구동존이(求同存異·공동의 이익을 찾되 차이 나는 부분은 인정한다)가 아닌 화이부동(和而不同·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의(義)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으로 양국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서 명예교수의 강연 내용이다.



    중국 몽(夢) 실현 아직 시기상조

    지난 25년간 한중관계는 그야말로 황금기였다. 양국은 모든 부분에서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한마디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밀월관계였다. 그러나 지난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양국관계는 급전직하해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오늘날 양국의 공감대가 약화된 것은 개혁·개방의 성공으로 중국이 강대국이 되면서 미·중 관계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 간 대립이 훨씬 빨리,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고, 2008년을 경계로 아시아에서 패권 경쟁이 노골화되고 있다. 여기에 북한 변수도 크게 작용했다. 북한 핵·미사일은 중국에게도 큰 고민이다. 중국과 북한은 특수관계이기 때문에 북한을 옹호하거나 핵 포기를 압박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지금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차이나 3.0’ 시대다. 중화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강대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중국 몽(夢)’을 외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외교·안보와 군사 분야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문제는 중국이 어떤 강대국이고 어떻게 강대국이 되려고 하느냐다. 시 주석은 ‘중국 몽’을 얘기하면서 ‘책임 강대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적 가치가 구현되고 세계 질서가 안정화되는 그런 강대국 노릇을 중국이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가형 강대국’이다. 사실 ‘넘버2’인 중국 경제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중국이 ‘중진국 함정’을 넘으려면 한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지금 중국이 위대한 꿈을 꾸고 강대국 놀이를 마음대로 하기에는 불안한 구석이 많다. 중국은 자유주의 질서와 시장경제를 가장 앞장서서 옹호하는 나라, 영토 주권과 관련해 거칠고 오만한 나라,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려하지 않으면서 제 이익만 챙기는 나라 등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시 주석의 발언을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에게 상당히 위험스러운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지난번 트럼프와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6·25전쟁에 대해 공공연히 ‘정의로운 전쟁, 자랑스러운 전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리적 측면에서 한국과 관계를 중시하지만, 전략적 차원에서 북한과 관계도 결코 무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은 3가지 전제요소가 있다. 첫째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둘째는 한반도 비핵화, 셋째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핵심적 요소는 북한 체제의 안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 안정과 한반도 비핵화가 충돌하고 있다. 북핵 변수가 모든 나라를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미국의 실패이자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실패, 한국의 대북정책 실패다. 즉 한미중의 북한 정책에 대한 실패를 노출한 셈이다. 그래서 지금 와서 대북정책 실패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게 너희가 제재를 제대로 안 해서라 하고, 중국은 원래 미국 너희 책임이라고 말한다.



    한국 핵무장 로드맵 마련해야

    중국에겐 선택지 3개가 있다. 첫째는 북한을 포기하는 것이다. 북한이 망해도 핵을 포기시키겠다고 북한에 알려주는 것이다. 중국 학계에서도 이런 주장을 하는데,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1992년 한중수교 때 중국은 이미 북한을 한 번 버렸다. 지금 이 단계에서 또 한 번 북한을 버릴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비핵화 포기론이다. 이는 중국이 부담해야 할 대가가 상당하기 때문에 각오해야 한다. 즉 중국이 북한 정권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면, 한미일관계의 파탄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다. 쌍중단, 즉 미사일과 핵실험을 중단하고 군사훈련도 중단해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공식적 의견이다. 문제는 이걸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다. 중국의 중립적 태도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중국이 진짜 강대국으로서 제구실을 하려면 ‘한반도 비핵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확실하게 북한을 압박하고, 나도 이만큼 하겠다고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도 로드맵이 분명해야 한다. 먼저 사드 이상의 방어요격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도 북한과 중국이 긍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전술핵 재배치도 옵션으로 마련하고, 마지막에 핵무장 옵션을 열어둬야 한다. 우리가 당장 이런 것들을 하겠다는 게 아니지만, 우리 나름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화와 협상을 만들어야 한다. 

    한중관계는 노랫말처럼 ‘봄날은 갔다.’ 지난 25년간 밀월관계는 잊어야 한다. 그렇다고 파탄 난 것은 아니다. 지리적 인접성과 역사적 동질성, 경제적 보완성 등은 여전하다. 한중관계는 각종 문제로 삐걱거려도 가장 좋을 때의 50~60%는 유지될 것이다. 또한 정치·외교의 전략적 공감대 회복에 따라 70%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면, 그 당시 키워드가 ‘구동존이’였다. 체제, 이념이 다르지만 서로 이익이 되는 것을 극대화하자는 뜻이다. 현 한반도 상황을 보면 구동존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화이부동’이 필요하다. 지금 시 주석의 머릿속은 우리처럼 굉장히 복잡할 테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부딪치고 있지만, 대규모 충돌로 치닫지 않고 갈등과 협력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가 아닌 ‘복덕방 외교’를 해야 한다. 부자 사이에서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여 ‘윈윈(win-win) 게임’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 이게 한국 외교의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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