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2

2017.08.23

사회

“지금 죽이러 갑니다” 살해협박도 돈 된다

1인 방송인, 조회 수 위해 일탈 서슴지 않아… 피해 방송인도 사흘 동안 8000만 원 벌어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8-21 15: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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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원금) 20만 원 모이면 바로 찾아가 죽이고, 10만 원 모이면 자고 일어나 갈게요.”

    범죄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지만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8월 10일 1인 방송인 김모(21) 씨가 유튜브(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실시간 방송을 켜고 시청자 4000여 명에게 한 말이다. 개인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는 1인 방송인(방송자키(BJ) 혹은 스트리머)의 일탈이 살해협박에까지 이른 것.



    도대체 왜 살해협박까지

    이들은 ‘구독자’ 수 증가가 곧 수입 증대로 이어지기에 구독자를 모으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 때문에 일부 BJ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자극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행동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도 BJ의 일탈은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탈 정도가 심각하거나 누리꾼 다수에게 혐오감을 줄 경우 사법기관의 처벌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팔로어 6만여 명을 거느린 인기 BJ 김씨는 8월 10일 새벽 생방송에서 여성 BJ ‘갓건배’를 집으로 찾아가 죽이겠다고 했다. 갓건배는 여성혐오를 미러링(되갚아준다는 뜻)하는 남성혐오 발언으로 업계에서 화제를 모은 인물.

    당시 방송에서 김씨는 “(갓건배의 집으로 추정되는) 주소 3개를 (제보)받았다. 부천 원미구, 서울 성북구, 그리고 나머지는 말할 수 없다. (갓건배) 집으로 찾아갈 테니 기다려라”고 발언했다.

    새벽에 진행된 이 방송은 최대 7000명의 시청자를 모았다. 이 방송 내용이 온라인상에서 퍼지기 시작하자 실제 살해를 걱정한 일부 시청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이날 새벽 1시 30분부터 서울 성동경찰서로 총 3차례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추적 끝에 경기 모처에서 김씨를 찾아냈다.

    경찰은 인근 파출소로 김씨를 임의동행해 아침까지 조사했고 경범죄 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조항을 적용해 범칙금 5만 원 처분을 내렸다. 해당 파출소는 경찰서 형사과로 사건을 넘기기에는 사안이 경미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갓건배는 블리자드의 인기 온라인 1인칭 슈팅게임(FPS) 오버워치를 주 콘텐츠로 하는 1인 방송인이다. 하지만 갓건배는 단순히 게임방송에만 그치지 않고 게임 유저 사이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미러링하겠다며 게임 중 남성혐오 발언을 해왔다. 그는 원래 남성혐오 문구를 닉네임으로 사용했다. 블리자드는 이와 관련한 신고를 자주 받자 강제로 그의 닉네임을 ‘건전한 배틀태그’로 바꿨다. 그러자 이를 갓건배로 줄여 방송 닉네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방송 초기에는 미러링이라는 콘셉트대로 시비를 거는 상대에게만 맞대응하는 식이었지만, 점점 수위가 올라가 최근에는 방송 내내 혐오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6월 16일 유튜브에 업로드한 방송에선 ‘성병이나 에이즈의 원인은 성소수자’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입길에 올랐다. 이에 앞서 1인 방송 플랫폼 ‘트위치’는 3월 갓건배의 방송이 혐오 콘텐츠라는 이유로 영구 계정정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최근 방송 중 했던 “남자가 키가 작으면 저게 남자인가 싶다. 어디 뭐 아픈 애인가 싶다. 옛날 6·25전쟁 때 다리가 잘린 건가 싶다”는 발언이다. 이에 6·25전쟁 희생자를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일부 BJ가 자신의 방송에서 갓건배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일부 BJ들은 8월 과거 갓건배가 방송 도중 남자 중학생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 증 성희롱적 발언을 했다며 증거 영상을 올렸다.


    이유야 어떻든 도 넘은 1인 방송

    살해협박 방송을 한 김씨도 갓건배와 대립각을 세우던 BJ 가운데 한 명이었다. 8월 2일부터 김씨는 방송화면 상단에 후원금 30만 원을 채우면 갓건배를 찾아간다는 메시지를 띄우는 등 꾸준히 갓건배를 언급했다. 이에 갓건배는 김씨를 포함해 자신을 비방하는 BJ들의 얼굴 그리기 대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못생기게 그리면 점수를 더 주는 식이었다. 이에 김씨는 해당 방송을 진행한다면 직접 갓건배를 찾아가겠다며 살해협박을 시작했다. 7일 갓건배가 얼굴 그리기 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하자 김씨는 일베저장소를 뒤져 갓건배로 추정되는 여성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10일 살해협박 방송을 한 것이다. 이후 갓건배 측 발표에 따르면 공개된 여성의 신상은 갓건배와 관계가 없는 사람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갓건배 측에서는 트위터와 유튜브에 자신의 신상 관련 글을 남긴 누리꾼의 자료를 모으고 있다.

    김씨의 기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패드립(패륜적 욕설+애드리브)으로 저연령층 구독자에게 인기를 끈 것으로 알려졌다. 2월에는 실시간 방송에서 장애인 비하 발언을 늘어놓아 트위치와 유튜브 계정이 영구정지되기도 했다. 이후 새로운 계정을 계속 만들며 활동을 이어왔지만 갓건배 살해협박 사건으로 해당 계정이 또다시 영구정지됐다.

    김씨가 살해협박 방송을 진행했음에도 처벌이 범칙금 5만 원에 그친 것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는 8월 1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여성 살해협박 남성, 범칙금 5만 원 부과한 경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조계에서는 김씨가 방송에서 “갓건배를 죽이겠다, 처치하겠다”고 언급한 행위는 ‘협박의 고지’에 해당해 협박 미수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협박을 한 사람의 행동과 말이 단순히 감정적 욕설이나 일시적 분노 표시에 불과하고 실제로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면 협박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많은 악성스토커가 10만 원 미만 범칙금 처분을 받는 것도 이와 유사한 이유에서다. 이번 사건 역시 시청자를 늘리려는 인터넷방송 진행자의 해프닝으로 비칠 수 있어 협박죄가 적용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협박하려고 했다는 것은 방송영상으로도 입증이 가능해 협박 미수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형법 제286조에 따르면 협박이 미수에 그치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관심 끌어 지갑 채우기에 열중

    사건 양상을 보면 남성혐오 콘텐츠로 방송하는 여성 BJ와 분쟁을 벌이던 김씨가 우발적으로 살해협박이라는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살해협박 사건의 이면에는 시청자의 관심이나 후원을 유도하는 등의 모습도 확인된다.

    본격적으로 분쟁이 시작되기 전인 7월 말 김씨의 1인 방송 채팅방에 일부 시청자가 후원금을 제시하며 갓건배를 테러(비난 등으로 방송을 방해하는 행위)해달라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분쟁 과정에서도 김씨는 계속 후원금을 요구하며 액수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발언을 이어갔다. 과거 김씨의 주요 방송 콘텐츠도 시청자의 장난 미션을 대신 수행하는 식이었다.

    살해협박 피해자인 갓건배도 이 기간 엄청난 금전적 이득을 봤다. 글로벌 미디어모니터 업체 ‘소셜 블레이드’에 따르면 김씨와 본격적으로 분쟁이 시작된 8월 7일부터 13일까지 엿새간 4만7000여 명이던 구독자가 7만 명으로 크게 늘었고 채널 조회 수도 1500만 건을 넘어섰다. 이에 예상 수익도 증가했다. 유튜브는 영상 재생 전후 또는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 수익의 55%를 채널 운영자에게 지급한다. 이 밖에 유튜브를 통해 방송하는 BJ들은 동영상 내내 떠 있는 배너광고 등에 대한 수익도 추가로 벌 수 있다.

    소셜 블레이드의 분석에 따르면 유튜브 갓건배 채널의 예상 수익은 8월 10일 3500만 원 이상, 11일 2000만 원 이상, 12일 1800만 원 이상으로 사흘간 약 7000만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예측된다. 방송 중 구독자들로부터 받은 후원금까지 합하면 8000만 원을 훨씬 넘겼을 것으로 보인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청자 증대를 노리는 일부 BJ의 일탈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1인 방송인이 방송활동을 통해 금전적 이익을 얻는 만큼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이 시청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개인 인터넷방송 콘텐츠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7항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사후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방심위의 인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규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초부터 지난해 6월까지 개인 인터넷방송에 사후 규제가 내려진 사례는 총 126건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개인 인터넷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가 자체적으로 문제 영상을 적발해 영구방송정지, 일시방송정지 등 처분을 내린 건수는 93만4014건으로 방심위의 사후 규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인터넷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플랫폼 관리의 문제다. 국내 시장에 비교적 뒤늦게 진입한 트위치가 안정적인 시청자 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차별 및 혐오 발언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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