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8

2017.07.26

한창호의 시네+아트

방황하는 이들에 대한 뜨거운 응원

앤드리아 아널드 감독의 ‘아메리칸 허니’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7-07-25 15: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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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감독 앤드리아 아널드의 영화엔 늘 자전적 요소가 조금씩 들어 있다. 그의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는 주제는 ‘버려진 소녀들에 대한 사랑’일 테다. 이런 태도는 아널드에게 명성을 안겨준 두 번째 장편 ‘피쉬 탱크’(2009)를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길거리에서 홀로 자라는 소녀들, 삶의 난관을 스스로 뚫으려는 그들의 몸부림은 관객의 감정을 뜨겁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엔 언젠가부터 여성 관객의 특별한 응원이 뒤따른다.

    네 번째 장편인 ‘아메리칸 허니’는 아널드의 첫 미국 영화다. 18세 소녀 스타(사샤 레인 분)는 두 어린이(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다)를 데리고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다.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때 마트 주차장에서 자기 같은 10대들이 미니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본다. 그들의 ‘위험할 정도’로 자유로운 태도, 귀를 울리는 힙합 위주의 젊은 음악은 단숨에 스타의 관심을 잡아끈다. 10대들의 리더인 제이크(샤이아 러버프 분)는 자신들을 방문판매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합류를 제안한다. 자기 몸을 더듬는 ‘아빠’라는 남자, 아이들을 자신에게 내팽개친 채 살아가는 ‘엄마’(정확한 관계는 알 수 없다)와 함께 살던 스타는 도망치듯 집을 나와 제이크 일행에 합류한다.

    아널드의 성장기 환경은 스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부모는 10대였고, 그들이 곧 헤어지는 바람에 아널드가 어린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했다. 어릴 때부터 뭔가를 쓰며 시간을 보내던 아널드는 고교를 자퇴한 뒤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연기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늘 뭔가를 썼다.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45세 때 뒤늦게 감독에 도전했다. 그런 도전의 삶이 아널드 영화의 미덕이고, 이는 ‘아메리칸 허니’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아널드가 영국에서 만든 전작 ‘피쉬 탱크’와 달리 이 영화에선 버려진 10대 소녀의 삶이 개인 차원을 훌쩍 넘어 사회적 문제로 확대돼 있다. ‘아메리칸 허니’에서 10대들이 집과 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나와 거리를 떠도는 것은 이제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청소년은 사실상 어른에게 착취되는 방문판매 같은 열악한 노동에 내몰려 있다. 반면 ‘돈과 시간밖에 없다’고 말하는 백인 노인들은 스타의 젊음을 이용할 구실을 찾는다. 계층별 · 세대별 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세계 최고 국가’ 미국에서 말이다.

    아널드의 영화가 관객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이런 일을 감상적으로 그리지 않아서다. 보기에 따라서는 10대들이 구렁에 빠진 듯한데, ‘아메리칸 허니’가 강조하는 것은 그런 위기에 맞선 이들의 생명력이다. 마치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 속 질주하는 청춘의 열정을 스크린에 옮긴 것 같다. 대륙을 횡단하며 한순간도 지루할 수 없다는 듯 청춘을 불태우고 있어서다. ‘아메리칸 허니’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이들에 대한 뜨거운 응원이다. 제69회 칸영화제(2016) 심사위원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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