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8

2017.03.08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사각형의 두 얼굴

안전한 울타리이자 속박의 틀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입력2017-03-07 17:04:3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도서관만큼 사각형이 많은 곳도 없다. 가끔 찾는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은 건물 모양부터 사각형이다. 사각형 기둥 사이의 문을 열고 들어가 사각형 출입증을 발급받은 후 사각형 사물함에 가방을 보관한다. 내부용 사각형 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사각형들이 등장한다. 열람실 책상과 의자, 줄줄이 늘어선 책장들도 사각형, 그 안의 수많은 책은 말할 것도 없다. 일반 도서만 400만여 권에 달하고 전자도서까지 합하면 540만 권이 넘는 방대한 양의 사각형들이 있다. 사각형은 마음을 담기에도 편리하다. 책은 저자의 관점에서 해석한 세상 이야기를 한 자, 한 줄 군더더기 없이 채워 담는 네모난 그릇과 같다. 저자의 생각과 생각을 쌓아 형성한 논리체계도 하나의 사각형인 것이다.



    ‘철창’의 또 다른 말, 사각형

    책 ‘도형, 그림의 심리학’은 사각형이 보호, 안전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사각형이 가지는 정적인 성격은 외부 침범으로부터 내용물을 보호하는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90도로 방향 전환하는 각진 형태가 바닥을 지지해 흔들림 없는 모양이다. 내부에서 편히 자리 잡고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정사각형을 연결한 정육면체 또한 같은 의미로 쓰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카이사르의 유명한 말을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는 것처럼, 사각형은 내적·외적·입체적으로도 굳건한 모양이다. 역사적으로 사각형은 신성한 공간을 정의할 때 활용돼왔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같은 신비로운 사원도 사각형을 바탕으로 지어졌고, 피라미드 또한 사각형의 바닥에서 올라간다. 사각형은 개개인에게 자신만의 신성한 영역을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쓰인다. ‘여기서 저기까지가 나만의 공간이다!’라는 정의는 내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외부와 분리된 공간을 소유한다는 만족과 그 안에서 보호받는 안전함을 원하는 것이다. 나와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외부에 침범당하지 않으려는 울타리와 같다.

    사각형 넓이가 지나치게 작으면 부정적 의미로 변한다. 안전하게 보호하는 의미가 제한하는 의미로 바뀌어 생각과 행동을 가두고 자유로운 삶을 속박하는 철창이 된다. 암울한 이미지의 작은 사각형을 오히려 코믹하게 활용한 광고가 있다.



    자동판매기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한 번쯤 상상해본 적이 있다면 이 광고가 더 재미있을 것이다. 독일 직업정보 사이트 잡스인타운(www.jobsintown.de)은 옥외광고 시리즈에서 가두는 성질의 사각형을 극단적으로 강조해 기계 앞면이나 옆면에 사진을 부착했다. 기계 종류와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그 안에서 실제로 일하는 듯한 사람들의 사진이다. 담배 자동판매기 안에서 눈치 보며 담배 만드는 남자, 커피 자동판매기 안에서 커피 내리는 여자, 좁은 주크박스 안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남자의 표정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소유와 탈출의 이중적 의미

    세탁기 안에서 물을 뒤집어쓰고 손빨래하는 여성은 또 어떤가. 엉망진창이 된 도구들 사이에서 아이스크림 만드는 여자 등 일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좁은 사각형 안에 갇혀 있다. 그들 앞에 붙은 카피는 이렇다. ‘Life’s too short for the wrong job(나쁜 직업을 위해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하루의 3분의 1을 몸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사각형에서 일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답답하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 얼른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지 않은가.

    도서관으로 돌아가보자. 책상 앞에 앉은 사람들의 무표정한 시선은 노트북컴퓨터와 책 사이만 오간다. 어쩌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는 민망한 상황에 처하면 얼른 고개를 숙인다. 식당 풍경도 비슷하다. 직원들이 대화하며 식사하는 동안 방문객은 요즘 유행한다는 ‘혼밥’을 강제로 즐긴다. 네모난 식권을 네모난 통에 넣고, 네모난 식판에 밥을 담아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자신만의 세계를 선 그은 채 밥을 먹는다.

    그들에겐 사각형이 하나 더 있다. 식판 옆에 놓인 네모난 휴대전화가 그것이다. 식판 한 번, 휴대전화 한 번 오가는 시선은 열람실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열람실과 조금 다른 풍경도 있다. 식판을 식탁 위에 놓은 후 인증샷을 찍고 모바일 메신저를 하는 사람들 모습이다. ‘나,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어!’ 비록 지금 보이지 않는 혼자의 사각형 공간에서 공부하고 밥 먹고 있지만 누군가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싶다는 표현이다. 자신만의 사각형을 갖고 싶은 욕망과 벗어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인증샷 한번 찍어본다. 네모난 생각의 틀도 사라지려나.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