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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주인공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달걀, 파베르제의 달걀(Faberge′ Eggs)

럭셔리 브랜드로 재탄생한 차르 황실의 보물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달걀, 파베르제의 달걀(Faberge′ Eggs)

[파베르제 홈페이지, shutterstock]

[파베르제 홈페이지, shutterstock]

뱅상 카셀 “이봐요, 미스터 오션. 다음 주 수요일까지 어떻게 9700만 달러를 마련할 건가요. 지금도 빈털터리잖소. 내 도전을 받아들이고 당신이 이기게 되면 내가 그 빚을 모두 갚아주겠소.” 

조지 클루니 “그럼 뭘 훔치면 되죠?” 

뱅상 카셀 “그 유명한 ‘파베르제 코로네이션 달걀’.” 



영화 ‘오션스 트웰브’에서 조지 클루니(대니 오션 역) 일당이 박물관에 전시된 파베르제의 달걀을 손에 넣고자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장면. [영화 ‘오션스 트웰브’ 화면 캡처]

영화 ‘오션스 트웰브’에서 조지 클루니(대니 오션 역) 일당이 박물관에 전시된 파베르제의 달걀을 손에 넣고자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장면. [영화 ‘오션스 트웰브’ 화면 캡처]

범죄영화 장르 가운데 무언가를 강탈 또는 절도하는 행위와 그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를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고 한다. 케이퍼 무비의 대표 시리즈인 ‘오션스 트웰브’의 한 장면이다. 세계 최고 도둑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두 남자, 조지 클루니(대니 오션 역)와 뱅상 카셀(프랑수아 툴루 역). 훔치려는 물건은 세계 최고라는 명성에 걸맞은 ‘파베르제의 달걀’이었다. 

조지 클루니 “달걀은 어디 있죠?” 



뱅상 카셀 “달걀은 오늘 아침 파리를 떠나 로마로 가는 중이고, 보통 한두 개의 복제품과 함께 삼엄한 경비가 붙죠. 가끔은 아무도 모르게 복제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달걀이 월요일부터 전시되기 시작하면 당신에겐 48시간 동안 훔칠 기회가 있소.”


유럽 장식미술의 최고 거장

영화 ‘오션스 트웰브’에서 
박물관에 전시된 파베르제의 달걀을 둘러보는 캐서린 제타존스(이사벨 라히리 역). [영화 ‘오션스 트웰브’ 화면 캡처]

영화 ‘오션스 트웰브’에서 박물관에 전시된 파베르제의 달걀을 둘러보는 캐서린 제타존스(이사벨 라히리 역). [영화 ‘오션스 트웰브’ 화면 캡처]

파베르제(Faberge′)는 일반인에겐 낯선 이름일 수 있다. 파베르제는 명품 주얼리 브랜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까르띠에(Cartier), 미국을 대표하는 티파니(Tiffany),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불가리(Bvlgari)처럼 파베르제는 러시아를 대표한다. ‘파베르제의 달걀’은 러시아 차르 황실의 보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파베르제 박물관을 다녀온 관광객이라면 그 박물관에 전시된 달걀을 떠올릴지 모른다. 혹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념품 가게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조품 달걀을 기억할 것이다. 그 모조품 달걀의 원조가 바로 ‘오션스 트웰브’에 등장하는, 파베르제가 직접 만든 달걀이다. 달걀의 세계로 한 발짝 더 들어가본다. 


피터 칼 파베르제의 생전 모습. [파베르제 공식 홈페이지]

피터 칼 파베르제의 생전 모습. [파베르제 공식 홈페이지]

피터 칼 파베르제는 유럽 장식미술의 최고 거장으로, 제정러시아 때 활약한 보석디자이너이자 세공인이다. 그는 184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석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에서 교육받고 금세공을 익힌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아버지 공방에서 보석 세공 기술을 배웠다. 1870년 아버지의 가업을 이으면서 본격적으로 금과 보석 장식품을 만들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정러시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금·은·비취·청금석·공작석 등 다양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보석을 주로 다뤘다. 전통적인 디자인을 거부하고 파격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작품들을 만드는 데 전념했는데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부활절 달걀이다. 알 공예는 이전부터 유럽에서 발달해왔는데, 파베르제의 손을 거치면서 절정을 이뤘다. 

파베르제 달걀이 매력적인 것은 단순한 달걀 모양에 그치지 않고 그 내부에 시계 또는 기계식으로 움직이는 장식품을 넣거나 외관에 스토리를 담은 장식을 가미했다는 데 있다. 큰 알이 작은 알을 품고 또 작은 알이 다른 장식품을 품는 디자인을 통해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미술의 극치를 보여줬다. 또 다른 세상을 품은 달걀을 만들어내면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이다. 


파베르제가 만든 첫 번째 ‘암탉 달걀’(왼쪽)과. 진주 달걀. [파베르제 홈페이지]

파베르제가 만든 첫 번째 ‘암탉 달걀’(왼쪽)과. 진주 달걀. [파베르제 홈페이지]

최초의 부활절 달걀은 1885년 알렉산드르 3세가 황후 마리야 표도로브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파베르제에게 의뢰해 만든 ‘암탉 달걀(Hen Egg)’이었다. 1885년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3세는 사랑하는 아내인 표도로브나와의 결혼 20주년을 기념해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차르는 파베르제에게 달걀 장식품을 주문했다. 파베르제는 달걀 장식 속에 금으로 세공한 닭이 들어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선물을 받은 황후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알렉산드르 3세의 뒤를 이은 니콜라이 2세는 1895년부터 매년 부활절에 어머니인 태후 표도로브나를 위한 달걀과 아내를 위한 달걀 등 두 개를 주문해 선물했다. 이렇게 달걀 장식품은 매년 부활절 때마다 만들어져 황실 가족과 귀족에게 선물로 전해졌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매년 파베르제의 부활절 달걀을 선물하는 전통을 이어갔다. 파베르제의 달걀은 그렇게 총 50개가 탄생했다. 달걀 제작이 중단된 건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 때문이었다. 더욱이 3년 뒤인 1920년에는 파베르제가 망명지인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이제 파베르제가 직접 ‘파베르제의 달걀’을 만드는 건 불가능해졌다.


행방 묘연한 7개의 달걀

19세기 러시아 차르 황실의 보물인 파베르제의 달걀들.왼쪽부터 임페리얼 코로네이션 달걀, 계곡의 백합 달걀, 세인트 조지 달걀. 르네상스 달걀.[파베르제 홈페이지]

19세기 러시아 차르 황실의 보물인 파베르제의 달걀들.왼쪽부터 임페리얼 코로네이션 달걀, 계곡의 백합 달걀, 세인트 조지 달걀. 르네상스 달걀.[파베르제 홈페이지]

파베르제가 달걀을 만들던 시절 러시아 황실은 파베르제 공방에 ‘차르 인증서’를 내렸다. 파베르제 공방은 러시아 외에도 유럽 각국의 왕가와 귀족 가문에 공예품을 공급해 한때 700명 이상의 예술가와 기술자가 일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방으로 명성을 떨쳤다. 달걀 말고도 그곳에서 만들어낸 공예품이 10만 점 이상이라고 한다. 

파베르제가 만든 달걀 50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정확히 모른다’이다.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차르 황실을 무너뜨린 공산정권은 돈이 필요해지자 왕조가 가지고 있던 파베르제의 달걀을 공개 매각했다. 그럼에도 현재 50개 가운데 10개는 러시아 크렘린궁에 남아 있다. 그 외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3개를 소유하고 있고, 미국 출판 재벌인 포브스 가문도 한때 9개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9개를 갖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미국 뉴욕 미술품 경매업체 소더비는 2004년 2월 “포브스 가문이 최근 경영이 어려워지자 소유하고 있던 ‘파베르제의 달걀’을 경매에 부칠 예정이었지만 개인 거래를 통해 러시아 유명 기업인이자 영국과 러시아 합작 석유업체 TNK-BP의 부회장인 빅토르 벡셀베르크에게 매각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달걀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총 50개의 달걀 가운데 7개는 아예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존재가 확인된 것은 총 43개다. 파베르제의 달걀의 경매 낙찰가는 평균 250억 원에 달해 낙찰될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파베르제 임페리얼과 파베르제 로코코, 헤리티지, 사랑의 세 가지 컬러 컬렉션(왼쪽부터). [파베르제 홈페이지]

파베르제 임페리얼과 파베르제 로코코, 헤리티지, 사랑의 세 가지 컬러 컬렉션(왼쪽부터). [파베르제 홈페이지]

파베르제 공방은 2007년 주얼리 브랜드로 되살아나 지금은 최상의 주얼리 제품을 선보이는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다. 파베르제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달걀을 모티프로 한 목걸이, 팔찌, 참, 반지 등 다양한 주얼리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컬렉션으로 파베르제 임페리얼(Faberge′ Imperial), 파베르제 로코코(Faberge′ Rococo), 헤리티지(Heritage), 사랑의 세 가지 컬러(Three Colours of Love)가 있다. 컬렉션은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있는 파베르제 부티크, 런던의 해러즈(Harrods)백화점을 포함한 공식 리테일러와 온라인 부티크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국내에는 공식 판매처가 없다.


명품 브랜드와 협업 통해 존재감 부각

지난해 롤스로이스와 협업으로 탄생한 ‘환희의 여신, 파베르제의 달걀’. [파베르제 홈페이지]

지난해 롤스로이스와 협업으로 탄생한 ‘환희의 여신, 파베르제의 달걀’. [파베르제 홈페이지]

파베르제는 기존 명품 브랜드와는 다른 그들만의 방식으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의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파베르제 런던 매장에 전시된 ‘환희의 여신, 파베르제의 달걀(The Spirit of Ecstasy, Faberge′ Egg)’을 예로 들 수 있다.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 롤스로이스와 협업해 1911년부터 롤스로이스를 상징하는 뮤즈인 ‘환희의 여신’을 품은 파베르제의 달걀이 탄생한 것이다. 

달걀은 스탠드를 포함해 길이가 160mm이고 무게는 약 400g이었다. 스탠드는 백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보라색 에나멜을 이용해 칠했고, 로즈골드가 달걀 모양을 형성했다. 내부는 18캐럿 다이아몬드와 390캐럿 천연 자수정이 가득 메우고 있다. 스탠드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달걀 모양이 펼쳐지면서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크리스털 소재의 환희의 여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롤스로이스 디자이너 2명과 파베르제 디자이너 3명이 머리를 맞대고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토르스텐 뮐러외트뵈슈 롤스로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환희의 여신, 파베르제의 달걀’은 비스포크(bespoke·본래는 맞춤 정장을 뜻했으나 영역이 넓어져 고객의 개별 취향을 반영해 제작하는 물건이라는 의미로 쓰임)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됐다. 독특하고 진귀한 수집품을 찾는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한 이번 작품은 가장 매력적인 소장품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오션스 트웰브’에서 조지 클루니 일당은 박물관에 전시된 달걀을 손에 넣고자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들이 손에 넣은 것은 줄잡아 250억 원짜리이니 가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달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19.07.26 1199호 (p50~53)

  • 민은미 주얼리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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