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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NO 버터, NO 설탕, NO 오븐으로 완성하는 달콤한 디저트

뻣뻣한 생식은 잊어라, ‘로푸드팜’의 새로운 생식 세계

NO 버터, NO 설탕, NO 오븐으로 완성하는 달콤한 디저트

로푸드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들. [사진 제공·로푸드팜]

로푸드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들. [사진 제공·로푸드팜]

사회 초년병 시절, 처음 맡은 일은 요리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요리책 한 권을 출간하려면 시장 조사와 기획, 저자와 스태프 구성, 원고 정리와 촬영, 디자인과 교정을 거쳐 인쇄와 판매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 임무는 원고 정리와 촬영, 디자인까지 된 교정지를 인쇄가 가능한 상태가 될 때까지 매만지는 일이었다. 책 제작 과정 중 비교적 수월한 단계다. 나머지 어렵고 복잡한 일은 노련하고 똑똑한 편집자의 몫이었다. 

스타일이 다른 세 명의 요리 전문가와 일주일 내내 샐러드 요리만 70여 가지를 촬영했는데 맛의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현장에서 만든 요리는 촬영이 끝난 뒤 함께 맛보거나 촬영 중 간식으로 주섬주섬 먹곤 했다. 나를 제외하면 대부분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푸드스타일리스트와 사진가였지만 생소하고 풍성한 맛에 함께 즐거워했다. 

그때 처음 팽이버섯과 표고버섯을 날것으로 먹었는데 뽀드득거리는 식감과 쫄깃쫄깃 씹는 맛에 반했다. 데치거나 삶아 먹던 시금치와 청경채도 싱싱한 것 그대로 먹으면 얼마나 아삭하고 즙이 많은 채소인지 알게 됐다. 샐러리, 오이, 파프리카를 무, 호박, 가지처럼 고들고들하게 말리면 색다른 면모가 드러난다는 것도 배웠다. 당연한 듯 반복했던 습관적인 조리법에 애꿎은 배신감이 들 정도로 파격적인 경험이었다. 

지금은 동영상이 발달하다 보니 눈과 소리로 접하는 요리 콘텐츠에 익숙해져 웬만해선 놀라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혀로 느끼는 것은 여전히 새롭다. 얼마 전 도무지 무슨 맛일지 예측이 어려운 음식을 접했다. 바로 ‘생식’이다. 

생식은 재료 그대로의 맛일 터인데 예측이 어려울까 싶겠지만, 요즘 등장하는 생식 요리는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아내기가 어렵다. 날것의 거칠거칠함을 매끈하게 다듬고 맛은 자연스러운데 생김은 무척 세련됐다. 




로푸드 식재료로 만든 그래놀라(위)와 영양, 효소를 살려 만드는 다양한 로푸드 수제청. [사진 제공·로푸드팜]

로푸드 식재료로 만든 그래놀라(위)와 영양, 효소를 살려 만드는 다양한 로푸드 수제청. [사진 제공·로푸드팜]

여기서 소개하는 생식은 뭐든지 날것으로 먹는 생식과는 몇 가지 면에서 다르다. 쌀, 밀 같은 곡류는 피하고 채소, 과일, 견과류 위주의 채식을 하며, 식재료는 최대 섭씨 48도 이하에서 조리하고, 올리브유나 포도씨유 같은 식물성 기름도 되도록 피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채식 중에서도 생소한 그룹에 속한다. 이런 식단을 흔히 알고 있는 생식과 구별해 ‘로푸드(raw food)’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점은 로푸드를 즐기는 사람이 대부분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육류와 동물성 단백질, 유제품을 즐기는 일반인이 더 많다. 이들은 로푸드 식단을 통해 불균형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을 다듬는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내용물만 봐서는 맛있기 어려운 식단이다. 하지만 로푸드가 맛있다는 인상을 심어준 곳이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역 근처의 ‘로푸드팜’이다. 문을 연 지 올해로 8년째를 맞은 로푸드팜은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기기 좋은 로푸드 음식을 꾸준히 선보이고 가르치고 있다. 주 메뉴는 주스, 스무디, 그리고 풍성한 디저트다. 주스는 채소와 과일을 착즙해 만든다. 한동안 대유행했던 착즙주스는 맛이 진하며 몸에 흡수가 빠르다. 주스 한 컵을 만들려면 꽤 많은 양의 채소와 과일이 필요한데, 이것을 날것으로 먹기엔 버겁지만 주스로 만들면 맛과 영양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될 수 있다. 스무디는 재료를 통째로 곱게 갈아 만든다. 물을 많이 넣지 않고 식재료의 수분을 이용하기 때문에 걸쭉한 편이다. 재료에 따라 토핑을 얹어 떠먹을 수 있는 정도다. 

주스와 스무디는 재료의 조합이 중요하다. 쌉싸래하거나 매운맛이 나는 케일과 겨자, 시원한 맛이 좋고 수분이 많은 시금치와 양상추, 수분이 적은 양배추와 브로콜리, 달고 특유의 감칠맛이 매력적인 파프리카와 토마토, 당근처럼 단단한 뿌리채소, 향이 강한 미나리와 쑥 같은 채소를 조화롭게 사용해야 한다. 과일 역시 맛과 수분 함량, 질감, 건조 상태에 따라 구분해 사용한다. 

채소와 과일에 견과류, 천연 시럽이나 꿀을 곁들여 맛과 영양을 더 풍성하게 한다. 이때 견과류와 씨앗도 고온에서 볶은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물에 불려 부드러운 것이나 발아시킨 것을 넣는다. 


로푸드피자, 비트크림수프, 비건베이킹(왼쪽부터). 로푸드 요리는 자연의 색과 맛이 살아 있다. [사진 제공·로푸드팜]

로푸드피자, 비트크림수프, 비건베이킹(왼쪽부터). 로푸드 요리는 자연의 색과 맛이 살아 있다. [사진 제공·로푸드팜]

디저트는 언제나 반갑지만 부담스럽다. 살살 녹는 달콤함과 풍요로운 맛에 입이 즐거운 반면, 높은 열량이 몸에 괜찮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로푸드 디저트는 몸에 대한 죄책감을 덜 느끼게 한다. 가장 열띤 호응을 얻는 것이 브라우니다. ‘로푸드팜’이 개발한 ‘로푸드 브라우니’는 이니스프리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판매하고 있다. 브라우니에 들어가는 재료는 간단하다. 호두와 캐슈너트처럼 알이 굵은 견과류, 곶감이나 대추야자 같은 마른 과일, 천연 카카오가루, 단맛을 내는 천연 시럽, 약간의 소금을 섞어 곱게 간다. 워낙 수분이 없는 재료들을 갈아야 하므로 입자가 고와지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취향에 맞게 촉촉함을 선사하는 아몬드밀크를 넣거나 향을 내기 위해 바닐라에센스를 추가할 수 있다. 이렇게 곱게 간 재료를 뭉쳐 냉동실에서 굳히면 브라우니가 완성된다. 


말차너트밀크와 이니스프리 카페에서 판매 중인 ‘로푸드팜’의 브라우니. 브라우니만큼 인기 있는 로푸드 디저트인 비건마카롱.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진한 풍미의 로푸드 초콜릿 볼(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제공·로푸드팜· 김민경· 로푸드팜]

말차너트밀크와 이니스프리 카페에서 판매 중인 ‘로푸드팜’의 브라우니. 브라우니만큼 인기 있는 로푸드 디저트인 비건마카롱.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진한 풍미의 로푸드 초콜릿 볼(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제공·로푸드팜· 김민경· 로푸드팜]

브라우니에서 눈치챌 수 있듯 불린 견과류와 과일을 곱게 갈면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낼 수 있다. 여기에 여러 가지 가루와 씨앗을 섞어 단단하게 반죽해 건조시키면 쿠키가 된다. 우유나 버터가 내는 풍미는 너트밀크가 대신한다. 착즙하고 남은 채소와 과일의 건더기를 활용하기도 한다. 특히 당근 펄프는 유용하다. 당근 케이크를 만드는 기초 재료가 되며, 건조기에 말려 시럽을 입히면 그래놀라가 된다. 

파스타 대신 호박을 이용한 라자냐, 국수 대신 오이로 만든 비빔면, 밥 대신 양배추와 콜리플라워를 곁들인 카레처럼 로푸드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처음에는 건강한 식단을 위해 ‘로푸드팜’의 문을 두드린 이가 상당수였지만 요즘에는 새로운 조리법에 대한 호기심에 찾는 사람도 많다. 로푸드 외에도 채식 베이킹, 디톡스 주스, 스무디, 과일청 강좌도 지속적으로 열린다. ‘로푸드팜’에 사람이 늘 북적이는 이유는 레시피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푸드팜’은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식단을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예를 들면 음양오행 강좌를 열고, 24절기에 대해 공부하며, 환경을 생각하는 셀러를 위해 교육관을 벼룩시장터로 내주기도 한다.


로푸드팜(rawfoodfarm)
NO 버터, NO 설탕, NO 오븐으로 완성하는 달콤한 디저트
로푸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피부 질환을 심하게 앓았다.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약을 계속 먹다 보니 다른 장기에 악영향을 줘 늘 몸이 좋지 않았다. 병이 한창 깊어질 때 지인들로부터 로푸드를 권유받았다. 미국에 있을 때라 한국에서보다 다양한 로푸드를 접할 수 있었고 건강이 나아지는 것을 느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로푸드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피부 질환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그때부터 레시피와 조리법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로푸드를 먹으면 좋을까. 

“로푸드는 건강을 개선할 수 있는 식단이 맞다. 하지만 생식인 로푸드만 먹으면 장기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을 수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일반적인 식사를 즐기는 사람이 재미와 건강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메뉴로 선택하는 것이다. 디저트나 주말에 한두 끼를 로푸드로 바꾸면 즐겁고 맛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로푸드 디저트는 수분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냉동실에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빨리 해동된다. 넉넉하게 만들어두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곧 여름인데 주스와 스무디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것이다.” 

로푸드팜 서울 마포구 토정로3길 10 2층






주간동아 2019.05.17 1189호 (p78~80)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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