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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은근한 열기와 은은한 연기로 맛과 향을 입히다

바비큐 방식으로 훈제육포 만드는 ‘말미’

은근한 열기와 은은한 연기로 맛과 향을 입히다

[사진 제공·말미]

[사진 제공·말미]

바비큐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음식이다.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BBQ’라는단어는 캠핑, 자연, 장작, 친목 도모 같은 기분 좋은 장면을연상케 한다. 반면 조리 방법으로 보자면 일상적으로 해먹기는 쉽지 않다. 

불이 아닌 열과 연기를 활용하는 바비큐 방식으로 식재료를 익히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대신 부드럽고 풍미가 좋은 맛을 보게 된다. 나무를 태워 그 열로 조리하기 때문에 한껏 피어나는 연기와 냄새를 감당할 충분한 공간이필요하다. 물론 전기 방식으로 일정하게 온도를 맞추고, 훈연향이 나는 나무 칩을 넣어 편리하게 바비큐 효과를 내는방법도 있다.


강원도 말미골, 숨은 바비큐 전문점

말미’ 풍경. (왼쪽) ‘말미’의 특별한 바비큐 통. [사진 제공·말미]

말미’ 풍경. (왼쪽) ‘말미’의 특별한 바비큐 통. [사진 제공·말미]

강원도 강릉 말미골에 가면 ‘말미’라는 이름의 바비큐 전문점이 있다. 말 꼬리를 닮은 지형에서 딴 마을 이름, 겨를 혹은 틈이라는 여유 시간을 뜻하는 ‘말미’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가게 이름에 썼다. ‘말미’ 주인장 황준성 셰프는 자연의 풍미가 천천히, 고스란히 깃드는 조리 방식이 좋아 바비큐를 택했다. 그는 바비큐를 실컷 요리할 수 있는 너른 마당과 뻥 뚫린 하늘, 천천히 음식을 즐길 시간이 주어지는 곳을 찾아 강릉으로 왔다. 

살짝 언덕배기에 위치한 ‘말미’의 마당 맨 안쪽에는 마치 19세기 증기기관차처럼 생긴 크고 긴 바비큐 통이 있다. 이런저런 구조의 바비큐 통을 손수 만들어 사용하던 황 셰프가 고안했고, 금속 철제를 잘 다루는 전문가팀 ‘램스턴(Lamsturn)’의 솜씨를 거쳐 완성된 것이다. 국내에서 이 정도 규모와 디자인의 바비큐 통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바비큐 통은 크게 두 가지 구조로 나눌 수 있다. 나무를 태우는 곳, 즉 파이어 박스(fire box)와 연통이 양끝에 있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한쪽 끝에 위치한 파이어 박스에서 나무를 태워 생긴 열과 연기가 음식이 익는 공간을 지나 반대쪽 연통으로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또 다른 구조는 파이어 박스와 연통이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열과 연기가 반대쪽 끝까지 갔다 되돌아와 연통으로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이를 ‘리버스 플로어(reverse floor)’라고 한다. 



두 가지 방식의 차이점은 연기가 되돌아오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리버스 플로어는 파이어 박스에서 나온 열과 연기가 지나가는 길에 뚜껑이 얹혀 있다. 길 끝에는 음식이 있는 곳으로 열과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게 구멍을 뚫어놓았다. 파이어 박스에서 나온 최초의 강렬한 열과 연기는 음식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고 적은 영향을 미치며 뚜껑 아래로 지나간다. 반대쪽에 다다른 열과 연기는 구멍을 통해 음식에 직접 닿으며 연통을 통해 빠져나간다. 

파이어 박스 가까이에 놓아둔 음식에는 과한 열이, 멀리 둔 음식에는 식어가는 열이 닿는 일반 방식에 비하면 리버스 플로어 방식은 음식에 닿는 열기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장점이 있다. 연기도 마찬가지로 순환 과정과 시간을 거치며 향이 부드러워진다. 물론 재료에 따라 파이어 박스에서 나온 강한 열과 연기가 직접적으로 필요한 바비큐 요리도 있다. 

황 셰프가 리버스 플로어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육포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육포는 대부분 양념한 다음 건조시켜 완성되지만, ‘말미’는 훈연으로 훈제육포를 만든다. 건조를 마치고 잠깐 훈연향을 쐬주는 것이 아니라 생고기를 훈연해 말리며 조리하는 것이다. 얇은 고기가 맛있게 훈제되려면 부드럽게 천천히 오래 훈연해야 한다. ‘말미’의 얇은 육포는 짜거나 단맛이 거의 없다. 심심한 간, 고기 본연의 감칠맛, 은은하게 밴 훈연향, 결대로 찢어 먹는 쫄깃한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시중에서 흔히 파는 자극적인 맛, 이상할 정도로 부드러운 식감과 색감, 찐득한 질감을 가진 육포와 단박에 비교된다. 전통 방식으로 정성 들여 만든 고급 육포에 견줄 만큼 개성이 뚜렷하고 맛이 좋다.


홍두깨살에 살짝 간하고, 오래 훈연

황준성 셰프가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바비큐 통(왼쪽)과 바비큐를 만들 때 사용하는 땔감용 참나무와 사과나무. [사진 제공·김민경]

황준성 셰프가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바비큐 통(왼쪽)과 바비큐를 만들 때 사용하는 땔감용 참나무와 사과나무. [사진 제공·김민경]

‘말미’의 바비큐 요리. [사진 제공·말미]

‘말미’의 바비큐 요리. [사진 제공·말미]

‘말미’에서는 육포용 쇠고기로 호주산 목초육을 사용한다. 목초육은 곡물 대신 목초를 먹이며 방목해 키운 소로, 곡물을 먹고 자란 소에 비해 지방 함량이 낮다. 한우, 특히 품질 등급이 높은 쇠고기일수록 지방이 골고루 분포돼 이른바 마블링이 좋아 먹기에는 부드럽지만 육포를 만들기에는 알맞지 않다. 쇠고기에 기름이 많으면 육포가 산패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위는 여느 육포와 마찬가지로 기름기가 적은 홍두깨살을 사용한다. 홍두깨살은 지방이 없어 조직이 단단하고 질긴 편이지만 근섬유의 결이 일정해 장조림, 육개장처럼 고기를 결대로 찢어 먹는 요리에 알맞다. 고기를 가늘게 찢어도 특유의 씹는 맛이 쫄깃쫄깃 살아 있는 것도 장점이다. 우둔살도 육포용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기름기나 근막을 제거하며 얇게 손질하다 보면 형태가 균일하지 못하고, 고기가 조각조각 나는 경우가 많다. ‘말미’에서는 고깃덩어리의 형태와 결이 살아 있는 육포를 만들고자 홍두깨살만 사용한다. 

고기는 덩어리째 구해 지방과 힘줄을 꼼꼼히 도려낸 후 결대로 길쭉한 모양을 살려 썬다. 손질한 고기는 물에 담가 핏물을 충분히 뺸 뒤 물기를 잘 제거해 양념한다. 양념이라기보다 간을 살짝 입히는 정도다. ‘말미’의 육포는 두 가지 맛이 있는데 하나는 맛간장으로 심심하게 맛을 낸 것, 다른 하나는 매운 것이다. 


훈연을 마친 고기.

훈연을 마친 고기.

바비큐전문점 ‘말미’의 실내. [사진 제공·말미]

바비큐전문점 ‘말미’의 실내. [사진 제공·말미]

매운맛은 여러 재료를 혼합해 낸다. 카옌페퍼, 치포틀, 태양초, 파프리카 파우더를 섞어 사용한다. 카옌페퍼는 개운하면서 매콤하고, 치포틀은 뾰족뾰족 아주 맵다. 태양초는 깔끔하고 또렷하게 매운 첫맛을 선사하고, 파프리카 파우더는 매운맛들 사이에서 달착지근한 풍미로 균형을 잡는다. 단순한 간장 양념에 비해 이토록 복잡한 매운맛이 나는 이유는 훈연 과정에 있다. 열기와 향기의 시간인 훈연을 거치면서 여러 매운 재료가 익고 어우러지며 풍미 넘치는 매콤함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맛이 든 고기는 ‘말미’의 커다란 바비큐 통으로 옮겨 훈연한다. 바비큐용 땔감으로는 주로 참나무를 사용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훈연향이 진하게 피어나며, 온도가 높고 오래 타기에 유지가 잘 된다. 참나무에 사과나무나 포도나무를 조금씩 섞어 불을 피우는데 이는 과일 나무에서 나는 은은한 향을 더하기 위함이다. 바비큐는 보통 섭씨 110~130도에서 요리하지만 육포를 만들 때는 거센 불이 잦아들어 섭씨 70도 정도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전기로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바비큐 기계와 달리 ‘말미’의 바비큐 통은 사람이 내내 지켜 서서 온도를 확인해야 해 작업이 쉽지 않다. 바비큐 통에 고기를 가지런히 펼쳐놓고 2~3시간 훈연한다. 고기 두께나 상태에 따라 중간 중간 뒤집고 꺼내는 과정을 계속한다. 훈연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가볍게 건조한다. 자연 건조는 조건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건조기에서 말린다. 훈제육포는 훈연 과정에서 보존성이 좋아져 당연히 방부 처리 없이 포장된다. 


‘말미’의 두 가지 맛 육포.

‘말미’의 두 가지 맛 육포.

‘말미’ 육포는 만드는 데 사나흘 걸린다. 온라인으로 주문해 택배로 받는 편리한 방법도 있지만 한 번쯤은 전화로 주문한 후 강릉 ‘말미’에 들러 받아 오길 권한다. 멋진 바비큐 통과 여기에 불을 지피고 음식을 만드는 따뜻한 주인 부부, 넓은 마당과 하늘, 발랄한 강아지, 나른한 고양이가 행복한 그림처럼 우리를 반긴다.


은근한 열기와 은은한 연기로 맛과 향을 입히다

‘말미’ 주인 황준성 셰프
파크하얏트호텔, 오키친, 일본 홋카이도 윈저호텔에서 일하다 바비큐의 매력에 빠져 마음껏 연기를 피우고 음식을 나누고 싶어 강원 강릉으로 왔다. 테라로사 키친에서 일하며 강릉과 친해졌고 2014년 바비큐전문점 ‘말미’를 열었다. 현재 그는 ‘말미’의 상시영업을 잠시 쉬고 육포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바비큐 타임을 즐기고자 하는이들로부터 예약은 받고 있다.  






주간동아 2019.02.22 1177호 (p72~74)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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