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6

2019.02.15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매년 2월 11일 홍대 앞에선 잔치가 벌어진다

2019년 경록절 콘서트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9-02-15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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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록 [사진 제공 · 캡틴락컴퍼니]

    한경록 [사진 제공 · 캡틴락컴퍼니]

    나이를 먹어갈수록 희미해져가는 기억력을 보존해주는 건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이다. 지난해, 그리고 지지난해 이맘때 내가 뭐하고 있었는지를 환기케 해준다. 매년 이즈음에는 항상 같은 단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여러 밴드의 공연 사진이 뜬다. 바로 경록절,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의 생일잔치다. 그저 왁자지껄한 파티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아니, 사실 경록절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이벤트다. 

    일단 규모면에서 말이 되지 않는다. 언론 노출이 크게 되는 것도 아니고 소셜미디어를 후끈하게 달구는 것도 아닌데 협찬의 스케일이 여간한 게 아니다. 악기사 여러 곳과 주류업체 여러 곳의 이름이 포스터에 들어간다. 의류업체, 잡지도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일개 음악인의 생일잔치다. 아니 아니, 생각해보면 개인의 생일잔치에 공식적으로 협찬이 붙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않나. 

    그냥 술만 죽어라고 마시다 끝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밴드가 올라가 공연하고 특별 손님으로 한 시대를 빛낸 음악인의 무대도 펼쳐진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이런 생일잔치를 할 수 있는 위인이 또 누가 있을까. 홍대 앞, 아니 한국을 통틀어 한경록밖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경록절도

    사회를 본 싱어송라이터 김한성(왼쪽)과 가수 호란. [사진 제공 · 캡틴락컴퍼니]

    사회를 본 싱어송라이터 김한성(왼쪽)과 가수 호란. [사진 제공 · 캡틴락컴퍼니]

    단언까지 하는 이유는 매년 경록절에 온 사람들 가운데 이런 규모와 내용을 신기해하는 이가 있고, 그들끼리 설왕설래하다 늘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명성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결론. 

    경록절은 로마와 같다.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작은 홍대 앞 인디 신이 한창 좋았을 때 여느 파티와 다르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군복무를 마친 한경록이 2월 11일 자신의 생일 때 주변 뮤지션들을 불러모아 주로 활동하던 클럽 DGBD에서 판을 벌인 게 시작이었다. 



    다만 여느 파티와 작은 차이가 있었다. 클럽이라는 특성상 무대가 있었고, 그가 인디 신에서도 소문난 마당발이라는 점이었다. 또한 모여든 모든 사람에게 술을 쏠 수 있는 담대함을 지녔으며, 그날부터 2박 3일이고 3박 4일이고 마실 수 있는 체력과 근성이 있었다는 것 또한 작디작은 차이였다.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능히 영화 한 편을 찍을 수 있던 곳이 홍대 앞이었고, 그중에서도 크라잉넛이 차지하는 분량은 ‘나 혼자 산다’로 치자면 능히 박나래 급은 되고도 남는다. 

    어쨌든 한경록은 매년 2월 11일 큰판을 벌였고,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는 커졌다. 2009년에는 약 15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라이브 클럽 타를 ‘폭파’시켰다. 이듬해에는 스탠딩으로 200명은 채울 수 있는 제인스 그루브라는 술집도 ‘폭파’시켰다. 준비된 술은 늘 동났고, 음악인들은 술값 대신 무대에 올라 즉석에서 공연했다. 이 무렵부터 한경록의 생일을 누군가 ‘경록절’이라 명명했다. ‘크리스마스, 핼러윈과 더불어 홍대 앞 3대 명절’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바야흐로 빌드업의 시기였다. 

    경록절이 단순히 뮤지션들과 홍대 앞 ‘인싸’들의 잔치를 넘어서기 시작한 건 2011년, 홍대 앞 극동방송국 근처 약 160석 규모의 좌석을 갖춘 치킨 집으로 개최지를 옮긴 이후부터였다. 크라잉넛,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 1990년대이후 홍대 앞에 몸담았던 이들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록 뮤지션들까지 경록절을 맞아 연주했다. 인디 뮤지션뿐 아니라 김창완, 강산에, 김수철 같은 ‘형님’들도 참석하고 노래했다. 이 밴드, 저 밴드 멤버들이 섞여 즉석에서 잼도 펼쳤다. 

    별도의 무대도 없었고, 크라잉넛 합주실에서 가져온 장비는 공연용이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게 뭐? 오히려 더욱 에너지가 넘쳤다.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한경록이 쏘는 맥주의 cc는 갈수록 늘어났다. 몇만 단위에서 십만 단위가 됐다. 

    오케이, 이 정도면 더는 생일파티가 아니다. 잔치다. ‘이야기’가 된다.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도 이 진기하고 엔도르핀 넘치는 밤을 즐기고자 치킨 집으로 몰려들곤 했다. 그날 살아남은 자들이 며칠 동안 술을 마시다 지쳐 쓰러졌다는 이야기가 후일담처럼 돌곤 했다. 홍대 앞을 활동 무대로 삼는 사람들, 놀러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록절은 연초의 메인 이슈로 자리 잡았다.

    공화국은 제국이 됐다, 2015년에

    현진영, 별보라,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정우 (왼쪽부터) [사진 제공 · 캡틴락컴퍼니]

    현진영, 별보라,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정우 (왼쪽부터) [사진 제공 · 캡틴락컴퍼니]

    로마가 공화국을 거쳐 제국이 됐듯, 경록절이 완성된 건 2015년이다. 치킨 집은 2013년을 끝으로 폐업했다. 2014년에는 라이브 클럽인 에반스 라운지에서 한 해의 행사를 치렀다. 그리고 2015년, 홍대 앞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무브홀이 경록절 개최지가 됐다. 

    판이 커지면서 장난삼아 거론되던 ‘경록절 추진위원회’가 실제로 결성돼 본격적인 이벤트로 확장됐다. 한경록은 지인들에게 초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걸 넘어 아예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지했다. 행사 포스터가 만들어졌고 협찬이 붙기 시작했으며 언론 보도도 탔다. 돈이나 명성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그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신기한 날이 완성된 것이다. 

    설 연휴 주간이 끝난 월요일(2월 11일)에 열린 올해의 경록절 역시 같은 흐름으로 진행됐다. 크라잉넛을 시작으로 킹스턴 루디스카,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 그의 오랜 친구들이 공연을 펼쳤다. 몇 군데의 크래프트 비어 업체에서 협찬한 맥주가 한쪽에서 계속 공급됐다. 위스키와 고량주, 막걸리까지 있었다. 

    7시 30분에 시작됐지만 이미 시작과 동시에 만석.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무대에 오른 건 현진영이었다. 2017년 최백호, 2018년 남궁연에 이은 특별 게스트였다. 2곡의 잔잔한 노래에 이어 마지막 곡으로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불렀을 때 객석은 1990년대 록카페가 됐다. 그 노래가 발표된 1992년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친구도 많았겠지만 크라잉넛이 데뷔한 1996년 즈음 태어난 친구들도 그 자리에 꽤 많았을 거다. 세대를 초월하는 이벤트가 됐다는 말이다. 

    현진영이 내려간 후에는 재한일본인들이 주가 된 프로젝트를 비롯해, 힙합과 어쿠스틱 등 여러 장르의 음악가들이 무대를 거쳐 갔다. 고조된 분위기가 한풀 꺾일 무렵인 자정 즈음에는 이미 모든 술이 동나고 없었다. 한산한 월요일 밤거리, 꿈인 듯 불탔던 무브홀을 빠져 나와 걸으며 생각했다. ‘홍대 앞 3대 명절’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언젠가 혹시라도 경록절이 열리지 않는 날이 온다면, 더는 홍대 앞에 새해는 오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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