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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네 대의 기타가 빚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장면

이정선·유지연 합동 콘서트 ‘동갑, 동감’+시인과 촌장

네 대의 기타가 빚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장면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 출판사]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 출판사]

네 대의 기타가 울렸다. 스물네 개의 줄이 떨렸다. 하나의 화음이 퍼졌다. 웬만한 공연에선 미동도 하지 않는 마음이 깊숙이 흔들렸다. 1월 26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정선과 유지연의 합동 콘서트 ‘동갑, 동감’의 한순간에서였다. 하덕규와 함춘호, 즉 시인과 촌장이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 이정선, 유지연과 함께 넷이 이정선의 명곡 ‘섬소년’을 연주할 때였다. 

“저희가 선배님에게 이 노래를 꼭 하자고 졸랐어요.” 하덕규가 소개말 후 노래의 처음을 장식했다. 이어 함춘호가 부르고 이정선의 굵직한 목소리가 나머지를 이끌었다. 네 대의 어쿠스틱 기타와 스물네 개의 줄이 빚어내는 소리는 찬란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포크와 블루스를 중심으로 한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이정선은 ‘가수’라는 직업 하나로 분류하기엔 그 존재감이 너무 크다. 20세기 후반에 성장기를 거친 인물이라면 누구나 그가 부르거나 만든 노래를 듣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김광석 버전으로 잘 알려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이광조 목소리로 더 친숙한 ‘오늘 같은 밤’, 조하문의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노래가 그렇다. 대중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뭉게구름’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음악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니까. 

그는 또한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한데, 통기타에 입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샀을 ‘이정선기타교실’이다. 이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는 짐작할 수 없으나 영어와 수학에 각각 ‘성문종합영어’ ‘수학의 정석’ 시리즈가 있다면 음악에는 ‘이정선기타교실’이 있었다.


1950년생 이정선과 유지연

유지련(왼쪽)과 이정선.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 출판사]

유지련(왼쪽)과 이정선.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 출판사]

이정선과 합동 공연을 한 유지연에 대해서는 살짝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1980년 데뷔 앨범을 냈고 그 후 석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CCM 제작자로 변신해 스스로 앨범을 내기도 했다. ‘사랑과 평화’라는 작은 히트곡도 있지만 가수로서 이름의 무게는 이정선에 비하면 가벼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지현의 진가는 ‘가수’가 아닌 ‘연주자’에서 드러난다. 1978년 정태춘 1집의 기타 세션으로 이름을 올린 이래 1980년대 굵직한 포크 음반에는 어김없이 그의 기타와 하모니카가 있었다. 신형원, 김범룡, 이선희, 임지훈, 한돌, 남궁옥분의 앨범에 그의 손끝과 호흡에서 나온 소리가 담겼다. 김창훈-김창익 두 형제가 군 입대로 자리를 비운 산울림의 앨범에서도 그가 기타를 쳤다.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찻잔’ 같은 노래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 큰 지분을 가진 두 명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섰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란히 책을 출간하는 기념행사다. 유지연이 첫 기타 책인 ‘어쿠스틱 기타 마스터피스’를 냈고 여기에 이정선이 추천사를 썼다. 이게 인연이 돼 이정선은 비틀스 노래 150곡을 채보한 ‘비틀스 전곡 악보집’을 내기로 했다. 출판사 안나푸르나는 이 두 기타 명인의 출판 기념회를 아예 공연으로 만들었다. 게스트로 하덕규를 불렀다. 하덕규는 이왕이면 함춘호와 같이하겠다고 했다. 하덕규와 함춘호, 즉 시인과 촌장이 19년 만에 무대에 오른 배경이다. 

공연의 제목이 ‘동갑, 동감’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이정선과 유지연은 1950년생이다. 하덕규와 함춘호는 각각 1958년, 1961년생이다. 1970년대에 데뷔한 세대와 1980년대에 데뷔한 세대의 무대. 지금에서야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70년대와 80년대의 간극은 의외로 크다. 

올해 칠순을 맞은 이정선의 무대는 허허실실이 떠올랐다. 자신의 노화를 주된 소재 삼아 만담을 풀어가던 그는 백내장에 걸린 이야기를 했다. 아직 수술할 때는 아닌데 시력이 왔다 갔다 해 안경을 맞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은 게 있는데, 대충 보는 것이란다. 음악도 그와 같아서 예전에는 정말 공들여 연주했지만 지금은 대충 대충 한다고 했다. 

한 번이라도 무대에 서본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관객에게 지탄받기 딱 좋다. 그러나 이정선의 말이 그저 농담처럼 들릴 수밖에 없던 까닭은 오직 그의 연주 때문이었다. 이렇다 할 연출도, 연기도 없었다. 무대에 입고 나온 옷은 산책길에서 볼 수 있는 그 또래 노인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무표정하게 튕기는 기타 줄의 울림은 정말이지 탄탄했다. 허허실실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뭘 해도 연주가 되는 느낌이랄까. 처음 접하는 유지연의 연주 또한 이정선과 충분히 자웅을 겨룰 만했다. 아니,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둘이 처음 합을 맞추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19년 만에 한 무대 선 시인과 촌장

1부가 끝나고 시인과 촌장이 무대에 올랐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19년 만에 둘이 서는 무대다. 목사이기도 한 하덕규가 공식적인 대중 무대에 오른 것도 꼭 그만큼이다. 가수에게는 큰 공백이다. 하덕규처럼 미성으로 노래하는 이에게는 더욱더.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시인과 촌장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다는 것, 딱 그만큼의 마음으로 갔다. 

첫 곡은 2집에 담긴 ‘풍경’이었다. 기타 전주가 끝나자마자 하덕규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는 데는 첫 소절도 너무 긴 시간이었다. 1980년대 미성이 마치 박제처럼 보존돼 있었다. 오직 그만이 들려줬던, 그 불안하고도 파르라니 떨리는 호흡이 밀봉됐다 공연장에 풀렸다. 

아름다운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가 3분 동안 흘렀다. 객석에서는 진심으로 가득한 큰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이 순간을 보려고 이 자리에 왔다는, 아우성 같았다. 노래는 이어졌다. ‘가시나무’, 그리고 ‘사랑 일기’. 자신들의 짧은 무대를 주인공처럼 만든 시인과 촌장은 이정선, 유지연과 함께 ‘섬소년’을 연주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들이 퇴장한 후 유지연은 다른 노래도 듣고 싶었다며 관객들에게 왜 앙코르를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 앙코르 요청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무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밖에 나갔다는 전언이었다. 

하덕규는 의미심장하게 ‘이후’가 있을 거라고 전했다. 시인과 촌장의 음악은 1980년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조성모가 리메이크해 다시 알린 ‘가시나무’를 제외하더라도, 그들의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의 유미주의와 서정미를 대표한다. 시인과 촌장의 더 길고, 더 잘 준비된 공연을 보고 싶다. 만사 제치고 달려갈 것이다.






주간동아 2019.02.08 1175호 (p78~79)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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