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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우리 식탁과 가까워진 특이한 채소들

아이스플랜트·오크라·공심채…

우리 식탁과 가까워진 특이한 채소들

아이스플랜트. (왼쪽) 오크라. 단면(원 안)이 별 모양이다. [사진 제공·김민경]

아이스플랜트. (왼쪽) 오크라. 단면(원 안)이 별 모양이다. [사진 제공·김민경]

1990년대 말 서울에 처음 생긴 쌀국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 업무는 홀서빙이었지만 한가할 때는 주방 일을 도왔다. 육절기로 양파를 썰면서 한없이 울기도 하고, 씨가 눈에 튀지 않게 주의하며 청양고추를 잘게 써는 일도 했다. 

그중 가장 조심스럽고 예민한 일은 고수 다듬기였다. 실란트로, 실란초 등으로 불리는 고수는 당시 굉장히 귀한 향신 채소였다. ‘몇 줄기 값이 아르바이트 일당’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아침저녁으로 고수 잎을 살살 뜯어 촉촉하게 적신 종이타월에 올리고 다시 촉촉한 종이타월로 덮어 신선하게 보관했다. 게다가 고수는 특별히 요청하는 손님에게만 제공되는 비밀스러운 식재료이기도 했다.


이름도 생김새도 독특한 아이스플랜트, 오크라

그랬던 고수가 이제는 동네 슈퍼마켓 채소 코너에 수시로 등장한다. 한 다발에 1000원 선에 구매할 때도 있다. 아스파라거스, 줄기콩, 방울양배추, 망고, 파파야 같은 식재료도 고수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우리와 친해졌다. 이 식재료들의 뒤를 이을 낯설고 매력적인 채소는 여전히 줄을 서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재배가 가능한 것들이라 더욱 반갑다. 

‘아이스플랜트(iceplant)’는 통째로 먹을 수 있는 다육식물이다. 다육식물은 수분이 적고 건조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보통 줄기나 잎에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선인장이다. 아이스플랜트 표면은 선인장의 뾰족뾰족한 가시 대신 물방울처럼 투명한 결정이 촘촘하게 뒤덮고 있다. 마치 얼음 결정처럼 생긴 ‘블러더 세포(bludder cell)’인데, 수분을 부여잡고 있는 이 독특한 세포 덕에 ‘아이스’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아이스플랜트는 토도독 터지는 식감이 나며 굉장히 연하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채소라기보다 바다에서 건진 해초 같은 탄력과 시원함이 있다. 향은 진하지 않고 묽은 간수에서 날 법한 연한 짠맛이 감돈다. 본래의 매력을 맛보려면 샐러드로 먹는 게 좋다. 오일식초드레싱, 참깨간장드레싱을 곁들이거나 초고추장에 살짝 버무려 먹어도 맛있다. 오동통하며 고운 초록색을 띠는 생김새 덕에 요리 장식으로 쓰기도 좋고, 민트처럼 개성 강한 허브나 레몬처럼 새콤한 과일로 만든 디저트에 곁들이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입맛을 돋우거나 입가심을 도맡는 대조적인 쓰임이 있는 채소다. 

생김새 때문에 ‘레이디핑거’로도 불리는 오크라(okra)는 정말 유용하다. 짧은 풋고추같이 생겼는데 골이 길게 파여 있고, 까슬까슬한 솜털이 있으며, 광택은 없다. 껍질은 고추보다 약간 부드럽고, 맵지 않지만 독특한 맛도 없다. 시원하고 밍밍한 맛이 오히려 매력이며, 굵은 씨가 들어 있지만 그냥 먹어도 된다. 예전에는 신선한 것을 구하기 어려워 냉동 오크라를 주로 먹었다. 통째로 얼린 것은 그대로 볶아 먹었고, 잘라서 얼린 것은 살짝 데쳐 샐러드나 달걀 요리에 넣었다. 싱싱한 오크라는 오이, 풋고추처럼 고추장이나 쌈장에 푹푹 찍어 먹어도 맛있다. 표면의 잔털이 억셀 수 있으니 소금이나 부드러운 수세미로 문질러 닦는 게 좋다. 더 부드럽게 먹고 싶다면 통째로 살짝 찌면 된다. 오크라를 먹다 보면 마처럼 진득거리는 ‘뮤신’이 나오는데 마에 비해 손질과 요리가 수월한 편이라 건강식품으로 챙겨 먹는 이도 꽤 많다.


중화요리의 친구 공심채

공심채볶음, 펜넬(원 안)과 펜넬 샐러드. (왼쪽부터) [사진 제공·김민경]

공심채볶음, 펜넬(원 안)과 펜넬 샐러드. (왼쪽부터) [사진 제공·김민경]

오크라는 통째로 묽은 튀김옷을 입혀 튀겨도 맛있고, 송송 썰어 양파, 감자와 함께 섞어 부침개로 부쳐 먹어도 좋다. 물론 짭짤한 장떡이나 씹는 맛 좋은 김치전에 넣어도 잘 어울린다. 오크라를 썬 단면은 영락없이 별 모양이다. 얇게 썰어 샐러드나 볶음밥 토핑으로 올려도 되고 두부나 묵, 회처럼 차갑게 먹는 음식에 곁들여도 좋다. 도톰하게 썬 뒤 간장, 설탕 등을 넣고 볶아 반찬으로 먹어도 괜찮고, 고추처럼 된장에 버무려도 잘 어울린다. 독특한 생김새, 개성 없는 맛, 몸에 이로운 성분, 걸림 없는 식감 덕에 무엇을 곁들여도 무난하고, 누가 먹어도 거부감 없는 식재료다. 

공심채도 이제 집밥에 곁들일 수 있을 만큼 구하기 쉬워졌다. 공심채(空心菜)는 모닝글로리(morning glory), 워터스피나치(water spinach)로도 불린다. 잎은 길쭉하고 부드러우며, 줄기는 통통하지만 비어 있어 ‘공심채’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이나 태국, 베트남 요리를 파는 식당에 가면 사이드 디시로 공심채볶음을 주문해 먹는 일이 많다. 

공심채는 주로 굴소스, 피시스소 등으로 맛을 내 볶는다. 뜨겁게 달군 기름에 매운 태국고추와 마늘을 넣어 향을 충분히 우려낸 다음 공심채를 한가득 넣고 센 불에서 볶는다. 짙은 초록색의 축 처진 공심채 줄기는 보들보들하며 아삭거리는 맛이 그대로 살아 있고 씹을 때마다 맛있는 소스가 쭉쭉 배어나온다.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짭조름하지만 맛깔스럽다. 볶는 것 외에도 다양한 요리법으로 즐길 수 있다. 살짝 데쳐 시금치나물처럼 무쳐 먹어도 되고, 베이컨이나 햄과 함께 볶아 달걀 요리를 곁들여도 된다. 고기와 함께 간장이나 액젓으로 간해 촉촉하게 볶은 다음 덮밥 요리를 해 먹어도 맛있다. 


아티초크(원 안)와 오일, 해산물을 넣은 아티초크 요리. [사진 제공·김민경]

아티초크(원 안)와 오일, 해산물을 넣은 아티초크 요리. [사진 제공·김민경]

회향이라고 부르며 말린 씨앗을 허브로 먹어온 펜넬(fennel)은 초간단 샐러드 재료로 그만이다. 흰 부분을 잘게 썰어 오일, 식초, 소금만 넣어 버무려 먹으면 입맛을 돋우는 데 최고다. 토마토, 올리브, 오렌지 등을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거대한 꽃봉오리인 아티초크(artichoke)는 단단한 껍질 안에 담백한 속살을 숨기고 있다. 부드러운 속 부분만 손질해 오일을 잔뜩 뿌려 오븐에 굽거나, 크림과 함께 뭉근하게 끓여 먹는다. 겹겹이 오므린 채소의 담백한 맛과 식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신선한 아티초크는 구하기 어려우니 병조림으로 된 제품으로 맛보면 된다.




주간동아 2019.01.18 1173호 (p76~77)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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