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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기품 있는 향과 깊은 맛을 내는 유자

무뚝뚝한 생김새에 숨겨진 참맛

기품 있는 향과 깊은 맛을 내는 유자

울퉁불퉁 못생긴 유자. [shutterstock]

울퉁불퉁 못생긴 유자. [shutterstock]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서만 살다 보니 과실수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기존 주택을 허물고 지은 아파트 단지와 본래 있던 주택 단지가 한 동네라 남의 집 마당에 있는 과실수 몇 가지는 보며 자랐다. 담장보다 한참 크게 자란 감나무, 열매가 왁자지껄하게 열리는 대추나무, 멀리서도 열매의 보송보송함이 느껴지는 살구나무가 전부였다. 때가 돼 가지가 휠 정도로 열매가 달리면 부러웠고, 왜 부지런히 따지 않나 싶어 애간장이 탔다. 어른이 되면서 먹을거리가 열리는 나무에 대한 애정도 사그라졌고 탐스럽던 풍경도 점차 잊혔다. 

이탈리아 남부에 갔다 길에서 레몬나무를 만났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윤기 나고 통통한 초록색 잎 사이로 다부지게 영근 레몬이 반짝반짝 빛났다. 태어나 처음으로 레몬나무를 봤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같은 해 늦가을 유자나무를 처음 봤다. 두 과일은 모두 시트러스 계열, 즉 감귤류인데 서로 멀리서도 영근다 싶었다.


꼭꼭 씹을수록 퍼지는 달콤 쌉싸래한 맛

정성으로 만든 유자주머니, 유자 전체를 먹는 유자청, 겨울철 별미 유자화채. (왼쪽부터) [Ⓒ박유빈, 김윤정]

정성으로 만든 유자주머니, 유자 전체를 먹는 유자청, 겨울철 별미 유자화채. (왼쪽부터) [Ⓒ박유빈, 김윤정]

레몬을 썰어 그대로 과육을 발라 먹곤 하는데, 정말 고속도로처럼 쭉 뻗은 신맛이 대차게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유자도 그렇게 먹는데 레몬과는 맛이 완전히 다르다. 시면서 쓰고 달면서 떫은, 굉장히 오묘한 맛이 난다. 반면 잘 익은 유자의 껍질은 꼭꼭 씹으면 달콤 쌉싸래해 아주 맛있다. 

유자는 감귤류 중 단연 못생겼다. 오렌지, 자몽, 레몬, 라임, 귤을 떠올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유자는 껍질이 거칠고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지만 움푹움푹 파여 있어 표면이 고르지 않다. 유자 개량종인 한라봉은 꼭지가 도드라지고 큼직하며, 껍질에 윤기가 자르르 흘러 유자보다 훤칠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먹을거리로 치자면 감귤류 중 유자만 한 게 없다. 

유자는 꼭지와 씨를 빼고 다 먹는다. 유자는 속보다 껍질을 더 쳐준다. 잘 익은 유자는 한 손에 꽉 차는 정도의 크기다. 다른 감귤류에 비해 껍질이 두꺼운 편인데 0.5~0.7cm 된다. 과육은 단단하고 큰 씨가 많이 들어 있다. 씨는 쓴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일반적인 요리를 할 때는 발라내야 한다. 

유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유자청이나 유자잼이다. 두 가지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유자청은 꼭지와 씨만 제거해 잘게 썰어 설탕에 재운다. 손질한 유자와 똑같은 무게의 설탕을 준비해 병에 담는다. 사람에 따라 설탕 양을 줄이기도 하고 꿀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유자 그 자체의 맛과 향을 고스란히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설탕이 완전히 녹으면 일주일 정도 숙성시킨 후 바로 먹을 수 있다. 보통 3개월가량 숙성시키고 건더기는 건져 요리에 쓰거나 푹 끓여 차로 마신다. 맑은 유자액은 걸러 냉장실에 두면 다음 해 유자가 나올 때까지도 먹을 수 있다. 

유자잼은 꼭지와 씨, 껍질의 흰 부분을 도려내고 만든다. 귤색 껍질을 잘게 썰고, 과육은 믹서에 간다. 냄비에 손질한 유자와 설탕을 넣고 원하는 농도로 끓인다. 설탕은 손질한 유자 무게의 3분의 1~2분의 1만 넣으면 된다. 유자 껍질을 먹으려고 만드니 잼이라기보다 마멀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마멀레이드가 청보다 향이 진하게 나므로 차나 음료로 마시기에는 오히려 더 좋다. 

유자청과 유자마멀레이드는 고기 요리를 할 때 소스로 쓰기도 하고, 생선을 굽거나 조릴 때 양념 재료로 넣기도 한다. 고기나 생선 요리에 유자를 넣으면 잡냄새를 없애고, 향긋함을 주며, 다른 양념의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또한 신선한 음식에 드레싱으로 곁들이기도 한다. 쌉싸래한 맛이 나는 치커리, 쑥갓, 라디키오 같은 채소나 수삼에 유자 드레싱을 뿌리면 아주 잘 어울린다. 단짠(단맛과 짠맛)이 있듯 쓴맛과 신맛도 한데 어우러지면 매우 조화롭다.


유자화채ㆍ유자백김치는 겨울 별미

기품 있는 향과 깊은 맛을 내는 유자
또한 가볍게 숙성시킨 흰 살 생선회, 겉만 살짝 구운 쇠고기 안심처럼 날것의 식재료와도 잘 어울린다. 맛뿐 아니라 식감도 탄력 있고, 소화도 도와 함께 먹으면 여러모로 좋다. 유자청과 유자마멀레이드는 고추장, 된장, 간장 같은 한식 양념은 물론 두반장, 토마토케첩, 마요네즈, 스테이크소스, 올리브 오일 등과도 맛이 어울려 입맛대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신선한 유자의 즙과 껍질을 간장에 담그거나 살짝 끓여 향과 맛을 내 요리에 쓰기도 한다. 

신선한 유자를 구했다면 다음 두 가지는 꼭 만들어 맛봐야 한다. 우선 유자화채다. 설탕과 물을 1 대 3 비율로 섞은 뒤 살짝 끓여 설탕물을 만들어둔다. 유자의 노란 껍질만 얇게 벗겨 곱게 채 썰고, 배도 유자처럼 곱게 썬다. 유자 과육만 잘 발라내 잠시 설탕에 재운다. 그릇에 유자, 배, 설탕물을 부어 낸다. 같은 계절에 나는 석류 몇 알을 올려 장식하면 색도 곱고 새콤한 맛도 잘 어울린다. 유자화채는 보기에도 정갈하고 맛도 또렷하며 개운하다. 만들기 어렵지 않지만 유자가 나지 않는 계절에는 맛보기 힘들다. 

다음은 유자백김치다. 여느 백김치를 담그는 과정과 똑같다. 다만 배추에 밤, 무채, 대추채와 더불어 채 썬 유자 껍질을 넣고, 김칫국물에 유자 껍질과 과즙을 넣어 숙성 시킨다. 눈 속에서 퍼 올린 동치미 못지않은 겨울 별미가 돼줄 것이다. 솜씨가 좋은 이들은 백김치 속재료에 넣었던 밤, 대추를 활용해 유자주머니를 만들기도 한다. 유자 속을 파내고 여러 가지 재료와 유자 과육을 섞어 다시 유자에 채워 넣은 뒤 실로 묶어 여민다. 이것을 설탕물에 넣고 살짝 끓인 다음 숙성시켜 먹는, 정성스럽고 달콤한 음식이다. 

유자는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고 촉촉한 해풍이 부는 지역에서 잘 자란다. 전남 고흥  ·  완도  ·  장흥  ·  진도, 경남 거제  ·  남해  ·  통영 등이다. 지금쯤 내려가면 이파리 색이 짙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무뚝뚝한 유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이 ‘풀꽃’을 보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중략)// 너도 그렇다’라고 했다면, 유자는 싱싱한 것으로 먹어야 예쁘다. 정말 그렇다.




주간동아 2018.11.23 1165호 (p72~73)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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