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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

평론가보다 대중이 먼저 알아봤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보헤미안 랩소디’

평론가보다 대중이 먼저 알아봤다

[사진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진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적으로 크게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각본은 뛰어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고, 프레디 머큐리를 비롯한 그룹 퀸의 드라마틱한 일대기가 잘 녹아 있는 것도 아니다. 머큐리가 양성애자였고, 감독이 ‘엑스맨’ 등을 통해 성소수자 문제를 세련되게 작품에 녹였던 브라이언 싱어임을 감안하면 아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퀸의 팬이 이 음악영화를 보려고 극장을 찾는 이유는 ‘영화’보다 ‘음악’을 기대하기 때문이리라. 대형화면과 고가의 스피커로 퀸의 명곡을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감독도 이런 사실을 알기에 드라마적인 부분을 과감히 포기하고 라이브 장면을 대거 삽입했다. 이는 대성공을 거뒀다. 

메타크리틱, 로튼 토마토를 비롯한 각종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평론가들의 점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관객의 평가는 매우 만족스럽다. 개봉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고, 한국에서도 ‘맘마미아’ ‘라라랜드’ 등 흥행에 성공한 음악영화보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밴드

[사진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진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퀸은 대중음악 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밴드로 꼽힌다. 1973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부터 1995년 ‘Made in Heaven’까지 총 15장의 앨범을 남겼고 숱한 히트곡을 배출했지만, 1960년대 후반 결성된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보다 음악적 영향력에서 밀렸고 마이클 잭슨과 U2로 대변되는 1980년대의 음악 사조를 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먼저 전통적인 음악 비평이 블루스에서 하드 록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중시하는 탓이다. 하드 록을 완성한 레드 제플린,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는 핑크 플로이드 같은 수사가 퀸에는 붙지 않는다. 발라드부터 디스코까지 건드린 장르가 너무 많다. 어떤 계보로도 묶기 힘들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그들이 앨범보다 싱글로 많이 회자된 탓도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담긴 ‘A Night At The Opera’는 각종 명반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지만, 정작 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Greatest Hits’ 시리즈, 즉 베스트 앨범들이다. 

비평의 역사에서 퀸이 상대적으로 소외받았다고 해 퀸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것은 아니다.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컨은 모두 훌륭한 작곡가였고 밴드는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했다. 리더의 독재가 아닌, 멤버들의 분권으로 돌아가는 밴드였기에 음악적 다양성은 필연이었다. 

라디오에서 그들의 히트곡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음악인이 되면서 그들은 제대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룹 뮤즈의 매슈 벨러미는 “세계 최고의 밴드는 단연코 퀸”이라고 했는데, 뮤즈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화려한 사운드를 생각해보면 수긍이 간다. 1992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에 데이비드 보위, 엘튼 존, 건즈 앤 로지스, 애니 레녹스, 그리고 조지 마이클 같은 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총출동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그들은 계보의 밴드가 아니라, 사운드의 밴드이자 범접할 수 없는 스타일리스트였다. 그 사운드와 스타일을 상징하고 대변하는 노래가 보헤미안 랩소디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진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진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데뷔 이래 퀸은 클래식 음악과 과장된 가성, 그리고 신비주의가 혼합된 음악을 해왔다. 그들의 방향이 완성된 곡이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대중은 늘 이 노래를 사랑했다. 1975년 발표된 후 9주 동안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 차트에서도 톱 10에 진입했다. 현재까지 영국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다. 1위가 엘튼 존의 다이애나 왕세자비 추모곡인 ‘Candle in the Wind’, 2위가 아프리카 난민 돕기 프로젝트였던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다. 두 곡 다 시의성이 강한 노래임을 생각하면 사실상 가장 많이 사랑받은 곡이라 해도 좋다. 

이 노래가 음반의 시대에만 관심을 받은 건 아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유튜브 조회수는 6억 뷰를 뛰어넘는다. 1980년대 이전에 나온 곡 가운데 단연 1위다. 비틀스와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의 어떤 곡보다도 높다. 그만큼 혁신적이었다. 이 노래가 대성공한 후 프레디 머큐리는 “오페라와 록의 테마를 결합한다는 건 들어본 적 없는 얘기였다”고 회상했다.


퀸’의 왕관처럼 빛나는 노래

[사진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진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보통 밴드는, 특히 퀸 같은 ‘공화국적 밴드’라면 멤버들이 곡 창작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한다. 하지만 이 노래만큼은 브라이언 메이의 첫 번째 기타 솔로를 제외한 모든 것을 프레디 머큐리가 주도했다. 화성 편곡, 베이스, 드럼, 기타 리프까지. 다른 멤버들은 녹음 당시까지도 곡이 어떻게 완성될지 모른 채 자신의 악기만 연주했을 뿐이다. 왜 이 노래가 퀸을 대표할 뿐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 자신이기도 한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오페라 파트에는 존 디컨을 제외한 세 멤버가 화음을 쌓아 올렸다. 소프라노 파트를 프레디 머큐리가 담당했을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로저 테일러가 맡았다는 점이 재미있다. 머큐리가 중간 음역을, 브라이언 메이가 저음부를 담당했다. 복잡한 녹음 과정을 거쳐 완성한 곡답게, 레코딩 비용도 영국 음악산업 사상 가장 많이 들었다. 

그해 10월 31일, 즉 핼러윈 데이 때 발매된 이 비싼 곡에는 그만큼 많은 우려도 따랐다. 엘튼 존의 매니저이기도 했던 존 레이드는 이제 막 퀸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새로 맡은 밴드의 첫 싱글이 6분에 이르는 오페라 같은 곡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저었다. 멤버 가운데 존 디컨 또한 곡을 잘라서 발표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 로저 테일러, 그리고 브라이언 메이는 완강히 거부했다. 아카펠라로 시작해 발라드로 이어지고, 오페라가 등장하면서 화려한 록 기타 사운드가 터진 후 다시 발라드로 끝나는 이 공전절후의 음악 드라마에서 1초도 덜어낼 수 없다는 선택은 옳았다. 

프랑스에서는 오페라 파트를 제거한 3분 18초까지 편집본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 버전에서 사라지는 건 약 3분의 시간에 그치지 않는다. ‘삼국지’에 비유하자면 도원결의 이후 바로 적벽대전으로 넘어가는 듯 허탈하다. 그만큼 혁신적이었다. 프레디 머큐리와 멤버들의 혜안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음악산업에서 창작자의 의견은 종종 비즈니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직 퀸이었기에 이 혁신을 창출하고 또 소화해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수없이 많이 소환당했다. 원곡 그대로 영화에 삽입되고, 예고편에 쓰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차트는 이 노래를 다시 불러내곤 했다.
 
많은 명곡이 그러하듯 몇 번의 리메이크 시도도 있었지만 원곡을 뛰어넘는 해석은 단언컨대 없다. 70시간 넘게 진행한 180번의 오버 더빙을 누가 흔들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퀸조차도 중간 오페라 파트는 공연 녹음테이프를 트는 것으로 대체했을 정도니. 모방할 수 없는 위대함, 이 거창한 문장이 1975년부터 지금까지 보헤미안 랩소디 위에서 벗길 수 없는 왕관처럼 빛난다.




주간동아 2018.11.09 1163호 (p74~75)

  •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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