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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

세월의 씨줄과 트렌드의 날줄을 정교하게 엮다

이문세의 16집 ‘Between Us’

세월의 씨줄과 트렌드의 날줄을 정교하게 엮다

10월 2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정규 16집 앨범  ‘Between Us’ 발매 기념 음악감상회 무대에 선 가수 이문세. [뉴스1]

10월 2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정규 16집 앨범 ‘Between Us’ 발매 기념 음악감상회 무대에 선 가수 이문세. [뉴스1]

좋은 앨범이란 무엇인가. ‘좋은 노래들의 모음’은 부족한 답이다. 한 음악가가 음악 인생의 특정 시점에 갖게 된 철학과 지향점, 그리고 욕망이 버무려져 있어야 한다. 써놓고 보니 왠지 고상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이른바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많은 앨범이 말해주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앨범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 노래만 듣고 앨범은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정성스럽게 앨범을 내놓아도 타이틀곡을 제외한 다른 노래는 들려지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비효율적인 일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좋은 앨범을 만나게 될 때의 기쁨은 더욱 커진다. 대량생산 시대일수록 수공예 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과 같다. 

깊어가는 가을이 한 장의 앨범을 배달했다. 1959년생, 한국 나이로 올해 육십인 이문세의 열여섯 번째 앨범 ‘Between Us’다. 미리 말해두자면, 좋은 앨범이다. 가히 수작이라 할 만하다. 15집 이후 2년, 그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 느낌표를 찍을 수 있는 작품으로 돌아왔다.


‘블라인드 테스트’로 뽑은 10곡

이 앨범을 들으면서 떠오른 사람이 있다. 해외여행 중 우연히 만난 한 노신사였다. 단정히 빗어 넘긴 백발에 온화한 주름이 인상적인 그는 웬만한 젊은이도 소화하기 어려운 화려한 슈트를 입고 있었다. 네이비블루 계열 원단에 슬림 핏, 그리고 노란색 실크 스트라이프 넥타이. 단지 화려한 패션뿐 아니라 평생 아침마다 다듬고 또 다듬었을 게 분명한, 기품이 흘러넘쳤다. 세월의 씨줄에 트렌드의 날줄이 정교하게 얽혀 있었다. 

‘Between Us’가 딱 그런 앨범이다. 30여 년 음악생활 동안 쌓인 깊은 내공이 동시대 음악가의 작품들과 만난다. 어우러진다. 조화롭게 서로를 치켜세운다. 

중견이 된 이후 이문세는 오랫동안 자신의 음악을 홀로 진두지휘했다. 스스로 곡을 고르고 배치하며 앨범을 만들어왔다. 이번 앨범에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이제는 식구나 다름없는 소속사 사람들과 함께 곡을 선별하고 골랐다. 

그 과정이 특별했다. 메이저급부터 이제 갓 활동을 시작한 신인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곡을 받았다. 쌍끌이 저인망 조업에 비교될 만큼 음악계 구석구석에서 곡이 모였다. 애초에는 한 곡씩만 받을 예정이었지만 아껴둔 노래를 몇 곡씩 보낸 이도 있었다. 혼자에 그치지 않고 지인의 곡까지 모아준 이도 있었다. 그렇게 모인 노래가 200곡이 넘었다. 

‘Between Us’에 담긴 노래가 총 10곡, 그 중 이문세의 자작곡이 3곡이니 30 대 1 이상의 경쟁을 거쳐야 했다. 그 경쟁은 철저하게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됐다. 데모 음원에서 작사  ·  작곡가를 다 지우고 오직 노래가 가진 힘만으로 걸러내고 또 걸러낸 것이다. 

‘심사’는 이문세 혼자만의 몫이 아니었다. 소속사 직원이 총동원됐다. 다양한 연령과 취향의 관계자가 토론을 거치고 의견을 나누며 이문세에게 어울리는 노래, 이문세가 불렀으면 하는 노래, 이문세가 불러야만 하는 노래를 골라냈다. 

결과는 놀라웠다. 최종 목록에 음원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작곡가의 노래는 없었다. 자기 색깔 뚜렷한 음악가들의 작품이 끝까지 남았다. 헤이즈, 선우정아, 잔나비 등은 이문세가 몰랐던 이들이다.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트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산이 프랑스산을 압살했던 ‘파리의 심판’이 떠오른다. 

그렇게 결정된 곡들은 도처에서 녹음돼 하나의 트랙이 됐다. 이문세는 강원 평창군 봉평면 자택 겸 스튜디오에서 모든 보컬을 녹음했다. 매니저가 녹음 기술을 배워 엔지니어 역할을 맡았다. 각각의 악기는 홍대 앞에서부터 캘리포니아를 넘나들며 퍼즐의 조각이 됐다. 선곡부터 녹음까지, ‘Between Us’는 ‘뛰어난 소수 인력이 스튜디오에 틀어박히는’ 과거 방식이 아니다. 2010년대 방식인, 지역을 뛰어넘는 공동창작의 소산이다.


4집과 5집에 비견될 명반

이문세의 정규 16집 앨범 ‘Between Us’(왼쪽)는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열린 자세로 대하겠다는 이문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자, 새로운 세대를 낯설지만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열린 기성세대의 모습을 상징하는 앨범이다.[사진 제공 · 케이문에프엔디]

이문세의 정규 16집 앨범 ‘Between Us’(왼쪽)는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열린 자세로 대하겠다는 이문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자, 새로운 세대를 낯설지만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열린 기성세대의 모습을 상징하는 앨범이다.[사진 제공 · 케이문에프엔디]

효율적인 대신 일관성을 잃을 수도 있지만 이 앨범은 확고하다. 이문세는 각각의 노래가 가진 색깔을 살리면서도 1980년대부터 견고히 유지해온 색깔을 잃지 않는다. 하나의 노래마다 두 개의 색이 화학적으로 융합된다. 새로운 이문세와 친숙한 이문세가 공존한다. 앨범 전반부는 새로운 이문세를 들려준다. 개코의 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이문세가 허밍으로 뒷받침하는 ‘Free My Mind’, 유리 계단을 오르는 듯한 섬세한 상승감과 물망초처럼 아련한 가사가 만나는 ‘희미해서’, 이문세의 곡 소화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우리 사이’가 시작부터 3연타를 날린다. 

앨범 한가운데에 배치된, 기존 팬에게 직접적으로 가닿을 ‘멀리 걸어가’를 비롯해 후반 곡들은 풍성한 감정선을 보여준다. 친숙한 이문세다. 임헌일이 작곡한 ‘빗소리’는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틱한 노래로, 앨범의 정점을 찍는다. 각양각색의 노래가 흐트러지지 않는 힘은 이문세의 장악력이다. 새로운 스타일에는 익숙한 표현을, 익숙한 스타일에는 새로운 표현을 불어넣어 10곡을 재봉선 없이 한 호흡처럼 잇는다. 

이문세의 최전성기로 흔히들 고(故) 이영훈과 함께한 4집과 5집을 꼽는다. 여기에 종종 간과되는 사실이 있다. 그 앨범들에 담겨 있는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이다. 시대를 견인하는 발라드부터 록과 신스팝(Synthpop)까지, 1980년대 중  ·  후반의 최첨단 장르를 그때의 이문세는 무리 없이 소화했다. ‘Between Us’도 그렇다. 시대를 앞서간 작곡가 이영훈의 자리를, 새로운 시대를 견인하는 음악가들로 채웠다는 점만이 다르다. 

이 앨범을 듣고 그 앨범들을 다시 꺼내 듣는다. 그때도 이문세는 지금처럼 노래했다. 창법의 유행을 타지 않고, 곡 안에 담긴 감성을 목소리로 표현하는 데만 치중했다. 화려하거나 폭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래의 본연이었다. ‘Between Us’도 그렇다. 4집과 16집, 그 사이에 놓인 30년 세월의 간극은 생각보다 좁다. 거기, 그리고 여기, 이문세가 있다.




주간동아 2018.10.26 1161호 (p78~79)

  •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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