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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담박함에서 피어나는 농후한 매력

담박함에서 피어나는 농후한 매력

담박함에서 피어나는 농후한 매력

경북 울진에서 채취한 1등급 송이버섯. (왼쪽) 갓이 피었지만 채취한 지 얼마 안 됐다면 먹어볼 만하다. [사진 제공·김민경]

경북 울진에서 채취한 1등급 송이버섯. (왼쪽) 갓이 피었지만 채취한 지 얼마 안 됐다면 먹어볼 만하다. [사진 제공·김민경]

어릴 때 살던 동네의 가로수는 플라타너스였다. 도로와 인도 경계에 줄줄이 서 있는 키 큰 나무는 가을이 되면 엄청난 양의 낙엽을 떨궜다.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낙엽을 끌어모아 커다란 자루에 담은 뒤 길가 여기저기에 세워 뒀다. 친구들과 나는 그 낙엽을 한아름씩 안고 놀이터로 뛰어갔다. 모래 구덩이를 파고 낙엽을 모아 넣은 다음 어디서 났는지 모를 성냥으로 불을 지폈다. 불놀이를 시작하자마자 동네 어른들한테 흠씬 혼나기 일쑤였지만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만지는 재미와 타는 냄새가 좋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내가 처음 반한 가을 냄새다.


가을 내음 중 으뜸, 송이버섯향

가을 공기에는 겨울 채비를 하는 나무와 풀이 잎을 말려 떨구면 흙이 살금살금 끌어안으면서 내품는 내음이 있다. 싱싱한 것들이 느리게 겨울 나기를 시작할 무렵 고개를 내밀고 나오는 것이 바로 송이버섯이다. 

송이버섯향은 가을에 맡을 수 있는 내음 중 으뜸이라 할 만하다. 은은한 솔향이 좋을뿐더러 일 년에 딱 한 달 남짓만 만날 수 있다. 신선한 송이버섯을 결대로 쪽쪽 찢어 날것으로 맛보면 아삭거림 안에 쫀득거림이 있고, 알싸한 첫맛 뒤에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맛이 따라온다. 땅속에서 고작 며칠을 살며 영근 것이 내는 맛과 향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풍성하고 깊어 놀라울 따름이다. 

송이버섯은 기온이 20도 이하로 떨어져야 생기기 시작하므로 대체로 9월 중순 이후부터 채취가 이뤄진다. 하지만 기온만 떨어져서 되는 것이 아니라 비가 3~5일 충분히 내려야 하기 때문에 채취 시기는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강원 양양, 삼척, 고성에서부터 채취를 시작해 국내 최대 송이버섯 산지인 경북 영덕, 울진, 봉화로 내려온다. 이외에도 문경, 안동, 청송, 청도, 포항이나 경남 거창에서도 송이버섯을 채취한다. 

송이버섯은 수령이 10~40년 된 적송(赤松)의 잔뿌리에 터를 잡고 자라나기 시작한다. 소나무 뿌리로부터 탄수화물을 공급받는 대신 무기물과 수분을 뿌리에 선사하며 나무와 공생한다. 송이버섯은 식생, 기후, 강수량, 대기 및 토양의 온도와 습도, 토질, 환경오염 정도, 균사 감염 여부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잘 자랄 수 있다. 자칫 사람 손을 타거나 쇠붙이 등과 닿으면 더는 자라지 않는다. 이렇듯 생장 환경을 임의로 조성할 수 없고, 늘 같은 위치에서 피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채취가 어렵다. 

송이버섯은 자라기 시작한 지 5~6일이 돼야 채취가 가능한데, 열흘이 지나면 갓이 너무 피는 데다 향도 사라지고 질겨진다. 짧은 시간에 적당하게 성장한 송이버섯을 일일이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러니 가을 제철 송이가 그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다. 

송이버섯은 신선도, 크기, 생김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1등급은 길이가 8cm 이상이며 갓이 거의 피지 않아 기둥보다 약간만 넓어야 한다. 개당 최고 6만~7만 원을 호가하기도 하며 대체로 3만 원 선이다. 2등급은 길이가 6~8cm이며 갓이 3분의 1 정도 핀 것이다. 3등급은 갓이 피지 않았어도 길이가 6cm에 못 미치는 것, 그리고 기둥이 잘 자랐어도 갓이 3분의 1 이상 핀 것이다.


결대로 찢어 그대로 꼭꼭 씹어야 제맛

신선한 송이버섯은 결대로 찢어 날로 먹어야 한다. (왼쪽) 송이버섯만 먹으면 속이 허하니 기름기가 적당한 쇠고기를 함께 구워본다. [사진 제공·김민경]

신선한 송이버섯은 결대로 찢어 날로 먹어야 한다. (왼쪽) 송이버섯만 먹으면 속이 허하니 기름기가 적당한 쇠고기를 함께 구워본다. [사진 제공·김민경]

갓이 너무 핀 것, 모양이 너무 굽었거나 흠집이 생긴 것, 벌레 먹은 것은 등외품이다. 등외품이라 해도 채취한지 이틀 내외라면 먹어볼 만하다. 북한이나 중국에서 채취된 송이버섯은 생김새가 꽤 좋은데도 가격이 저렴한 경우가 많다.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잘난 모양보다 신선함이 송이버섯의 맛을 즐기는 데는 더 중요한 기준이다. 신선한 송이버섯은 근처에만 가도 향이 진하게 나며 기둥을 만졌을 때 야무진 느낌이 든다. 거뭇거뭇한 것이 잔뜩 묻어 있지만 노르스름한 표면에 윤기가 나고 촉촉함이 눈으로도 보인다. 갓 안쪽에는 촘촘한 결이 있는데 마르지 않고 부드럽게 자르르 주름져 있다. 

모든 버섯이 그렇듯 송이버섯 역시 물기를 빨리 머금기 때문에 손질에 주의해야 한다. 밑동의 단단한 회색 부분은 칼로 살살 긁어 벗긴다. 표면의 거뭇한 것은 모두 먹어도 되니 흐르는 물에 나뭇잎 정도만 가볍게 털어낸다. 헹군 다음엔 깨끗한 헝겊이나 키친타월로 물기를 재빨리 닦는다. 보관할 때는 손질하지 말고 한지로 여러 번 감싸 밀봉해 냉장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송이버섯은 결대로 찢어 그대로 꼭꼭 씹어 먹어봐야 한다. 그래야 그 매력을 알 수 있다. 그다음엔 잘 달군 팬이나 은은한 숯불에 송이를 도톰하게 찢어 올려 구워 먹는다. 아작거림은 줄고 쫀득하고 촉촉한 맛이 살아나며 향도 농후해진다. 아무리 좋은 송이버섯이라도 그것만 먹으면 속이 허한 것은 당연하니 기름기가 적당한 쇠고기를 함께 구워본다. 기름기가 너무 많은 고기는 제맛이 진해 송이랑 같이 먹기에 오히려 별로다. 고기를 구우면서 햅쌀을 씻어 송이밥을 지어본다. 이때 햅쌀을 너무 바락바락 주물러 씻지 말고 여러 번 헹구더라도 살살 저어가며 씻는다. 그래야 밥이 더 윤기 나고 고슬고슬하며 맛도 좋다. 솥밥을 안치고 뜸을 들일 때 송이를 군데군데 올려 마무리한다. 다 된 밥은 가만히 그릇에 떠 그냥 먹는다. 다른 양념 없이 혹은 소금만 살짝 뿌려 먹기를 권한다. 이때 송이밥 위에 잘 구운 고기 한 점 올려도 참 좋다. 

맑은 닭 육수나 다시마 국물에 송이버섯을 넣고 찌듯이 끓여 마시기도 하고, 과감하게 다른 재료와 함께 볶아 먹기도 하는 등 송이버섯은 여러 요리에 두루 사용할 수 있다. 단지 귀하고 비싸 그렇게까지 조리해 맛볼 기회가 흔치 않을 뿐이다. 행여 송이버섯이 남았거나 등외품을 구매했다면 라면이나 파스타에 넣어 먹는 호사를 누려본다. 라면에 넣으면 라면수프가 무색할 만큼 향을 내뿜는다. 파스타로 요리할 때는 프라이팬에 좋은 올리브 오일을 달궈 송이버섯을 가볍게 볶고 삶아 놓은 파스타를 넣어 소금으로 간해 먹으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에게 가을이 베푸는 호의가 무척이나 크다.




주간동아 2018.10.12 1159호 (p74~75)

  •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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