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5

2018.09.12

김민경의 미식세계

여름이 끝날 무렵 찾아오는 달콤함

제 몸에 꽃을 품은 과일, 무화과

  • 입력2018-09-11 1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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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매 형태를 갖춘 무화과(왼쪽)와 잘 익은 무화과.

    열매 형태를 갖춘 무화과(왼쪽)와 잘 익은 무화과.

    어릴 때 울릉도에 사는 삼촌댁에 놀러간 적이 있다. 몸으로 느끼기엔 올해만큼 더웠던 8월, 경북 포항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했다. 바닷바람에 더위를 쫓아볼까 했지만, 내리쬐는 햇빛과 금세 꿉꿉해지는 습한 바람 탓에 선선한 그늘을 찾아들어가기 바빴다. 에어컨도 없고 길까지 험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우리에게 유일한 피서처는 집 앞마당에 놓인 평상뿐이었다. 이름 모를 키 큰 나무가 그늘을 제공하는 평상 옆에는 아담한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여름 며칠을 눈만 뜨면 평상에 앉아 나날이 익어가는 무화과를 똑똑 따 먹으며 보냈고, 돌아올 때는 무화과 고추장 한 단지가 손에 들려 있었다. 

    꽃이 없는 열매라는 무화과(無花果). 우리가 무화과의 ‘열매’라고 하는 것은 꽃잎, 꽃받침, 암술, 수술이 모여 달리는 ‘꽃턱’이다. 그 안에서 꽃이 피어나고 그대로 열매가 영그니 우리 눈에는 꽃이 피지도 않은 채 열매를 맺는 것처럼 보인다. 

    무화과는 여름과 가을 사이, 즉 8월부터 시장에 나왔다 11월이 되면 자취를 감춘다. 무화과는 빨리 무르고, 자칫하면 눌리거나 터져 보관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제철이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 얇게 썰거나 통째로 말려 보관할 수 있지만 싱싱한 무화과의 맛은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무화과는 통통한 물방울 주머니처럼 생겼다. 색깔은 초록으로 영글기 시작해 익을수록 짙은 자줏빛으로 변한다. 잘 익은 무화과는 껍질이 얇아 말랑하고, 맛은 꿀보다 달고 부드러우며, 씨가 톡톡 씹힌다. 수박이나 석류처럼 흰 테두리 안에 붉은색 속살이 꽉 찼고, 겨자 같은 씨가 빼곡히 들어 있다. 껍질부터 속까지 색이 다양하고 고와 반달로 썰든, 원형으로 납작하게 썰든 어떻게 잘라도 모양이 예쁘다. 단단한 꼭지만 잘라내고 껍질과 씨를 모두 먹어야 제맛을 볼 수 있다. 

    무화과를 곁들인 디저트(위)와 무화과 오픈 샌드위치.

    무화과를 곁들인 디저트(위)와 무화과 오픈 샌드위치.

    무화과는 물이 많고 시원한 여름 과일도 아니고, 아삭거리면서 단단한 가을 과일도 아니어서 과일계의 이단아로 통한다. 이 특별한 과일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먼저 치즈와 잘 어울린다.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썬 무화과에 좋아하는 치즈 몇 가지만 곁들이면 끝이다. 블루치즈, 염소치즈처럼 향과 맛이 진하면 더욱 잘 어울린다. 곡물빵이나 바게트 슬라이스를 구워 크림치즈를 바르고 동그랗게 썬 무화과를 올린 뒤 꿀과 호두를 뿌려 내면 근사한 오픈 샌드위치가 된다. 아무 솜씨 없이 맛을 내기 좋은 요리다. 포카치아, 치아바타 같은 빵 등에 모차렐라 치즈, 얇게 썬 무화과, 슬라이스 햄을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어도 좋다. 이것을 치즈가 녹을 정도로 따뜻하게 구워 먹으면 더욱 맛있다. 단맛이 강한 무화과 덕에 잼이나 다른 소스 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무화과는 짠맛이 나는 재료와도 잘 어울려 피자 토핑으로 사용하거나, 프로슈토 또는 하몽 햄 샐러드에 멜론 대신 곁들여도 궁합이 훌륭하다. 



    후숙(과실 등을 수확한 뒤 일정 기간 보관해 더 익히는 것)이 많이 된 무화과가 있다면 디저트로 활용해보자. 무화과 여러 개를 준비해 사과 주스나 레드 와인에 통째로 넣고 10~20분 뭉근하게 끓여뒀다 먹기도 한다. 먹을 때는 작은 그릇에 무화과와 국물을 던 다음 숟가락으로 무화과를 조금씩 잘라 국물과 함께 먹는다. 무화과는 살살 녹으며 넘어가고 달콤한 맛과 향은 오래 남는다. 차게 먹을수록 맛있다. 초콜릿 머핀이나 브라우니의 재료, 토핑으로 올려도 되고, 씨가 꼭꼭 씹히는 맛좋은 잼으로 만들어두면 오래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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