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1

2018.08.15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백두산이 위험하다

4년간 3000회 지진 등 화산 활동 징후 명확 … 남북 공동대응 필요

  • 입력2018-08-14 11: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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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천지 모습. 휴화산인 백두산은 1000여 년 전 분화한 후 아직 분화한 이력이 없다. [뉴시스]

    백두산 천지 모습. 휴화산인 백두산은 1000여 년 전 분화한 후 아직 분화한 이력이 없다. [뉴시스]

    홋카이도, 도호쿠 등 일본 북부에는 화산재가 쌓인 지층이 존재한다. 1981년 한 과학자가 일본 북부지역에 널리 쌓인 이 화산재가 백두산에서 날아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10세기, 즉 900년대 어느 날 엄청난 규모의 화산 폭발이 백두산에서 일어났다. 일본 화산재 층은 바로 백두산 화산 폭발의 증거였다. 

    이 과학자 이름은 마치다 히로시. 오늘날 마치다 박사가 주장한 백두산 대폭발을 부정하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실제로 그 규모도 엄청났다. 10세기에 있었던 백두산 대폭발로 약 100km³에 달하는 분출물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이 정도 양이라면 남한 전체를 1m 높이 화산재로 덮을 수 있다.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1700년 동안 용암과 화산재에 묻혀 있다 발굴된 폼페이 시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동아DB]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1700년 동안 용암과 화산재에 묻혀 있다 발굴된 폼페이 시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동아DB]

    이런 분출량은 과거 2000년간, 즉 서기 이래 지구상에서 일어난 화산 분화 가운데 최대 규모다. 79년 화산으로부터 10km 떨어진 폼페이를 순식간에 멸망시켰던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 폭발도 10세기 백두산 대폭발과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다. 백두산 대폭발은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2km³)보다 50배 이상 많은 화산재를 분출했다.

    백두산 대폭발과 발해 몰락

    그렇다면 이런 유례없는 백두산 대폭발을 당시 역사가는 어떻게 기록했을까. 이상한 일이다. 과학자가 보기엔 사실인 백두산 대폭발이 역사책에는 그 기록이 없다. 도대체 왜? 

    1992년 마치다 박사는 백두산 대폭발로 10세기 동북아시아 강대국 가운데 하나였던 발해가 몰락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가설은 곧바로 역사학계의 조롱거리가 됐다. 926년 발해 멸망 사실을 언급한 공식 역사책 ‘요사(遼史)’를 포함해 역사 기록들이 일제히 백두산 대폭발에 침묵했기 때문이다. 



    1000년 전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분명히 있었을 법한 세계 최대 화산 폭발이 역사 기록으로 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 최초로 일본 북부의 백두산 화산재를 접한 후 ‘백두산 대폭발’을 연구해온 소원주 박사가 쓴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사이언스북스)은 조심스럽게 그 답을 찾고 있다. 

    먼저 10세기는 중국에서 907년 당나라가 멸망하고 5대 10국으로 불리는 여러 왕국이 난립하던 때였다. 동북아시아에서는 거란의 요(916~1125)가 발흥해 발해를 멸망시켰다. 한반도 역시 후삼국의 격랑에 싸여 있었다. 이런 대혼란 시기에 백두산 대폭발이 겹쳤다면? 제대로 된 기록이 없었을 만한 상황이다. 

    더욱더 흥미로운 대목은 발해 멸망을 둘러싼 미스터리다. 발해가 멸망하고 400년이 지나 편찬된 ‘요사’를 보면, 동북아시아 최강국이던 발해가 보름 만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으로 나온다. 발해는 어쩌다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진 것일까. 발해 수도는 다섯 곳(상경, 중경, 동경, 서경, 남경). 발해는 상경을 포위당한 지 닷새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당시 발해 상경에 있던 고위층은 다른 수도에서 원군이 올 가능성이 있는데도 왜 버티지 않았을까. 만약 화산 대폭발로 백두산에서 북쪽으로 250km가량 떨어진 상경을 제외한 다른 네 곳이 풍비박산이 났다면 상황이 이해된다. 백두산 대폭발은 거란이 침략하기 전 발해 문명을 사실상 궤멸 상태로 내몰았을 테니까. 

    마치다 박사의 주장이 나온 이후 백두산 대폭발과 발해 몰락의 관계를 놓고 여러 반론이 제기됐다. 예를 들어 백두산 인근에 있는 화산재 퇴적물에 묻힌 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해 세계 각국 과학자가 정확한 화산 폭발 시점을 측정하고자 노력했다. 일본 과학자 나카무라 도시오 박사는 이런 연구를 토대로 2002년 백두산 대폭발이 937년(오차 ±8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2017년에는 영국 화산학자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박사도 백두산 인근에서 채집한 나무의 나이테를 분석해 백두산 대폭발 시점을 946년 여름 이후라고 주장했다. 나카무라 박사의 오차를 염두에 둔 예측(937+8=945년)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백두산 대폭발은 발해 몰락 이후 벌어진 일이다. 

    백두산 대폭발 시점을 둘러싼 이런 논란에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백두산 대폭발은 그 인근에 터를 닦고 살던 수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는 점이다. 과학자 다수는 대폭발 이후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 두만강, 쑹화강을 따라 형성된 문명권이 몰락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지적한다.

    백두산 대폭발, 남북 공동연구 필요해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백두산 지하에서 끓고 있는 엄청난 양의 마그마가 다시 지상으로 솟아날 준비를 하고 있다. 2002~2005년 백두산 천지 인근에서 화산 지진이 3000회 이상 일어났다. 최근 100년 이내에 볼 수 없었던 백두산 천지가 솟아오르는 현상은 화산 활동의 명백한 징후다. 

    이런 백두산이 언제 폭발할지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수많은 과학자가 화산 폭발의 주기나 규칙을 알아내고자 애썼지만 화산 활동은 그때 그때 달랐다. 백두산은 당장 내일이나 몇 주 뒤 폭발할 수도 있고, 10~20년이 지나도 계속 폭발의 징후만 보일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지금 다시 백두산이 폭발해도 1000년 전의 대폭발 같은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10세기 백두산 대폭발 같은 규모의 화산 폭발은 수천 년에 한 번쯤 일어나는 아주 드문 현상이다. 만약 백두산이 다시 폭발한다면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정도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정도 폭발이라도 무방비 상태라면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2007,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 과학계가 먼저 한국과 국제사회에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를 제안하며 손을 내민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이 같은 북한의 제안에 응답하지 못했다. 

    8월 1일부터 4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한미과학자대회(UKC)가 열렸다. 국내 과학자와 재미 한인 과학자 등이 어울리는 이 자리에서도 ‘백두산’이 화제가 됐다. 이구동성으로 남북 과학자가 중심이 돼 백두산 화산 폭발 국제 공동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백두산이 위험하다. 더 늦기 전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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