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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on the stage

고달픈 인생에서 한줄기 빛, 가족

연극 | '만리향'

고달픈 인생에서 한줄기 빛, 가족

[사진 제공 ·극발전소301]

[사진 제공 ·극발전소301]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영화 대사처럼 연인 간 사랑은 보통 강렬하고 화려하게 불타오르지만, 사랑이 식어버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가는 씁쓸함을 안긴다. 반면 아무리 밉디미워 밖으로 돌고 돌아도 가족 간 사랑은 언젠가 다시 타오르고야 만다. 가족은 외모뿐 아니라 걸음걸이, 말투, 식성, 버릇도 비슷하다. 그래서 편하다. 하지만 ‘언제나 내 편’이라는 무한한 믿음 때문에 무심하고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영원한 위로와 안식을 주는 존재는 가족뿐이라는 것을 머리와 가슴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살갑고 다정한 표현을 하려면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며 어렵다. 

‘극발전소301’의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인 연극 ‘만리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삶의 이유이자 원천인 가족이지만 서로 알지 못했던 벽이 존재하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다.


[사진 제공 ·극발전소301]

[사진 제공 ·극발전소301]

도시 변두리 중국집 만리향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만 해도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소문난 ‘맛집’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만리향은 주방의 짜장 냄새가 싫어 집 나간 둘째 아들(김경남·이교엽 분) 대신 외국 유학 후 실패를 거듭한 첫째 아들(박완규·성노진 분)이 맡아야 했다. 그러나 만리향의 명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유도를 그만둔 셋째(최은경·백선우 분)까지 ‘배달맨’으로 합세했지만 가게를 꾸려가기도 벅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김곽경희·김효숙 분)가 5년 전 사라진 지적장애인 막내를 시장에서 봤다고 우기며 극이 시작된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혼자서라도 찾아보겠다고 성화인 어머니를 말리려고 둘째까지 돌아와 모처럼 가족이 다 모였다. 가족은 용하다는 무당의 굿을 통해 막내 생사를 알아보기로 하고 셋째의 친구 유숙(송영주·문학연 분)을 앞세워 가짜 굿판을 계획한다. 그리고 가족은 각자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상흔을 하나씩 꺼내놓으며 서로 많이 아파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연출가 정범철은 개성 있는 캐릭터를 융합해 ‘만리향’만의 따뜻하고 정감 있는 무대를 선사했다. 연극은 가족 간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보듬어줄 수 있는 치유의 살풀이였다. 그래서 객석에는 가족 단위 관객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가족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극장을 나서는 관객은 한결같은 안식처는 가족임을 다시 깨닫는다. 고달프고 치열한 인생에서 가족은 반짝거리는 한 줄기 빛이다.




주간동아 2018.06.13 1142호 (p79~79)

  • | 공연예술학 박사 ·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 간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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