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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희고 크고 맑고 아름다운 ‘백합’

봄꽃 만개할 때, 개펄 꽃 따러 가세

희고 크고 맑고 아름다운 ‘백합’

안주도 되고 해장도 되는 백합탕(왼쪽). 백합 국물과 살을 넣은 백합죽.

안주도 되고 해장도 되는 백합탕(왼쪽). 백합 국물과 살을 넣은 백합죽.

계절이 바뀌면 철에 맞는 꽃이 핀다. 꽃은 낮 길이, 온도 변화 등을 감지해 스스로 피어난다. 자연의 생리이긴 하지만 생각할수록 신기한데, 이 같은 개화 메커니즘만 연구하는 이들도 있다. 올해는 꽃샘추위가 가시자마자 이상하리만큼 무더운 날이 수차례 끼어들었다. 여느 때 같으면 순서대로 피었을 개나리, 벚꽃, 진달래 같은 봄꽃들이 불쑥불쑥 때 없이 또는 동시에 피기도 했다. 2018년 봄꽃지도는 무색해졌지만 꽃 천지를 바라보는 눈과 마음은 또 다른 즐거움을 느꼈다. 

봄꽃이 만개할 때 백합을 먹어야 한다. 이 또한 신비로운 자연의 메커니즘이다. 백합을 맛있게 먹으려면 무더위가 오기 전까지 서둘러야 하니 기껏해야 한두 달밖에 즐길 수 없다. 이때를 놓치면 선선한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 백합은 이름처럼 희고 깨끗한 조개다. 껍데기 안쪽은 미백색이며, 조갯살은 굴에 버금갈 정도로 우윳빛이 돌고 맛이 맑으며 국물을 내면 보얗게 우러난다. 껍데기 바깥에 나이테와 함께 100가지 무늬가 있어 백합이라고 하는데, 날것으로 먹어도 맛있기에 생합, 큼직해서 대합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합은 모래가 많이 섞인 개펄에서 자라지만 여느 조개들과 달리 요리 전 해감하지 않아도 된다. 채취 후 깨끗한 물에 헹궈 바로 껍데기를 열어봐도 모래나 진흙 한 톨 없이 깨끗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날 백합을 먹으면 부드러우면서도 사각사각 씹는 맛이 나며, 비린 맛이 적고 기분 좋게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하다. 알이 작은 백합은 살을 발라 막걸리식초를 넣은 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로 양념해 풋풋한 푸성귀와 함께 무쳐 먹으면 맛있다. 

찹쌀을 달달 볶아 푹 끓이다 백합 살을 넣어 죽을 만들면 따로 간하지 않아도 구수하고 심심한 맛이 좋다. 솥밥을 하면서 뜸 들일 때 백합 살을 얹어 익힌 뒤 간장양념에 비벼 먹으면 맛있다. 

죽이나 밥을 할 때 백합 우린 국물을 넣으면 그 맛이 배가돼 반찬이나 양념 없이도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다. 백합 우린 국물은 찬물에 백합을 잔뜩 넣은 뒤 입이 벌어질 때까지 끓이면 된다. 이때 고추나 파, 생강, 마늘을 조금 썰어 넣으면 맛있고 몸에도 좋은 백합탕이 된다. 백합으로 찌개를 끓여 먹기도 하는데 달고 시원한 맛은 좋으나 양념이 많고 오래 끓여 백합 자체의 맛을 보기에는 좀 아쉽다. 

백합 요리의 하이라이트는 찜이다. 요리라고 하기에는 조리법이 너무 간단하지만 백합의 제맛을 누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손바닥에 올리면 한두 개로 꽉 찰 만큼 큼직한 백합으로 찜을 한다. 깨끗이 씻은 백합의 힘줄 부분을 칼로 끊은 뒤 한 개씩 쿠킹포일로 감싼다. 그다음 솥에 넣고 김을 올려 가볍게 찐다. 쿠킹포일로 감싸 입을 벌리지 못한 백합 안에 조갯국물이 가득 차 있고 살은 말랑말랑하게 익어 있다. 국물 먼저 호로록 마시고 살을 알뜰하게 발라 먹는다. 바다의 간이 그대로 배어 간간하면서도 조개의 단맛이 잔뜩 우러나 있으니 맛이 없을 수 없다. 찜을 하나씩 꺼내 정성 들여 먹다 보면 온통 집중하게 돼 머리가 하얘지니 역시 이름처럼 백합인가 싶다. 

백합은 서해안 개펄에서 채취한다. 그중 충남 서천, 전북 부안, 전남 영광과 신안에서 특히 많이 잡히며 그만큼 요리도 다양하고 맛있다. 수확량이 많을 때는 채취해볼 수 있는 기회도 있으니 택배보다 이왕이면 개펄로 찾아가 맛보면 좋겠다.




주간동아 2018.05.23 1139호 (p72~72)

  •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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