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8

2018.05.16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영어 ‘솔(Soul)’ 보다 한국어 ‘영혼’이 어울리는 앨범

나얼의 ‘Sound Doctrine’

  • 입력2018-05-14 17: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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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나얼. [뉴스1]

    가수 나얼. [뉴스1]

    5월 6일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 이른 오후까지 내리던 비가 그쳤다. 오랜만에 하늘이 청명했다. 바람은 쾌청했다. 휴일이라 한적한 캠퍼스에 마치 등교시간처럼 사람이 몰려들었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 3년 만에 공연을 열었기 때문이다. 연말이 아닌 봄 공연으로는 8년 만이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는 11년 만이라고 했다. 20대에서부터 30대 후반에 이르는, 그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왔거나 다소 늦게 그들의 팬이 된 세대가 속속 객석을 채웠다.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의 배경이 된 숲속의 무대에 석양이 깔릴 즈음, 보컬리스트 4명이 올라왔다. 정엽, 성훈, 영준, 그리고 나얼. 약 10명에 이르는 세션과 함께 그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넷이 함께 하는 시간을 거쳐 성훈과 영준, 정엽과 나얼 순으로 솔로 무대를 가진 후 다시 넷이 하모니를 맞췄다. 모두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보컬리스트지만 단연 빛났던 건 나얼이다. 내가 처음으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공연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그가 내놓은 두 번째 솔로 앨범 ‘Sound Doctrine’을 라이브로 접하고 싶어서였다. 

    그의 목소리를 세상에 널리 알린, ‘브라운 아이즈’(나얼, 윤건의 보컬 듀엣)의 ‘벌써 1년’은 박정현과 솔리드에 의해 제시된 한국 리듬앤드블루스(R&B)의 완성형이자 발표 후 15년이 지난 지금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명곡이다. 당시에도 이미 흠잡을 곳 없던 그의 목소리는 꾸준히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졌다. 아니, 스스로 다듬고 또 다듬어왔다. 


    나얼의 두 번째 솔로 앨범 ‘Sound Doctrine’.

    나얼의 두 번째 솔로 앨범 ‘Sound Doctrine’.

    2012년 ‘Principle Of My Soul’ 이후 6년 만에 발매한 ‘Sound Doctrine’은 이미 완성형인 음악가가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혀를 차게 할 정도로 독한 앨범이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 지키는 것들에 대한 가치가 그득하다. 지난해 11월 조용히 내놨던 ‘기억의 빈자리’를 포함해 기존 발표곡 4개에 신곡 6개, 그리고 콤팩트디스크(CD)에만 담긴 3곡까지 총 13곡이 들어 있는 그의 2집은 말 그대로 ‘앨범’이다. 

    스트리밍이 일반화되면서 앨범은 명함 같은 게 됐다. 소속이나 직급이 바뀌면 명함을 새로 파듯, 음악 활동의 한 분기점을 표시하는 단위로 기능한다는 뜻이다. 앨범 전체를 순서대로 듣는 사람이 줄어드니 ‘타이틀 곡’ ‘후속곡’ ‘수록곡’으로만 구분할 뿐, 하나의 서사로서 가치는 사라지고 있다. 환경이 바뀌면 가치도 변하는 법이니 씁쓸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얼은 그 외골수다운 이미지 그대로 꾸준히 앨범의 가치를 이어간다. 이는 알아주는 LP반 컬렉터이자 한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자신의 확고한 취향을 대중에게도 그대로 이식하려는 소신일 테다. 연주곡 ‘Soul Walk’로 시작해, 음반에만 담긴 ‘Sound Doctrine’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그는 솔, 필라델피아 사운드, 디스코, 펑크 등 힙합 이전의 흑인 음악들을 다채롭게 펼쳐놓는다. 

    힘과 기교, 정확함과 그루브 등 보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필요 이상의 수준으로 리듬과 멜로디 위에 얹는다. 장르 음악의 원칙과 미학에 충실하면서도 보편적 대중의 벽까지 자연스럽게 허무는 설득력이 충만하다. ‘솔’이라는 영어보다 ‘영혼’이라는 한국어를 써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주말 공연에서 그는 이 앨범 수록곡 가운데 ‘기억의 빈자리’만 불렀다. 온전히 나얼의 목소리로만 채워질 단독 공연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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