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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팝의 근원인 블루스에 그루브를 얹은 댄스음악

김간지×하헌진의 ‘세상에 바라는 게 없네’

팝의 근원인 블루스에 그루브를 얹은 댄스음악

[ 사진 제공 · 붕가붕가레코드]

[ 사진 제공 · 붕가붕가레코드]

블루스에 대한 한국 젊은 음악 팬들의 인식을 바꾼 이가 있다면 하헌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하헌진 이전, 새로운 세대(그 약간 이전 세대까지도)에게 블루스란 낡디 낡은 음악이었다. ‘꼰대’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기타 솔로를 연주하는 이미지였단 얘기다. 과하게 따지자면 한국 대중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뮤지션 역시 화이트 아이드 블루스 이후의 블루스에 영향을 받은 이가 대부분이었다. 

하헌진은 고착화된 블루스 이미지를 단숨에 깨부쉈다. 강력한 손아귀 힘으로 슬라이드와 벤딩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되, 지루한 솔로 따위는 하지 않는 그의 연주는 오직 짧고 단순한 ‘노래’와 함께했다. 이 땅에서 개념조차 생소하던 델타 블루스는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이뤄지는 그의 공연과 몇 장의 EP반으로 동시대 음악이 됐다. 연주만이 아닌, 하찮은 일상을 기지 넘치게 포착한 에스프리 같은 가사, 담백함을 넘어 심심하다 할 멜로디와 무미건조한 창법까지….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블루스 맨을 주목했다. 요컨대 스타일과 장르로서 블루스가 아닌, 근본적이자 라이프스타일로서 블루스를, 하헌진은 우리에게 들려줬다. 

때로는 어쿠스틱을, 때로는 일렉트릭을 사용했지만 늘 혼자 무대에 섰던 그는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술탄오브더디스코’ 밴드의 드러머인 김간지와 만났다. 둘은 자립 음악가들의 행사인 ‘레코드 폐허’에서 우연히 인사를 나눴고, 하헌진의 무대에서 즉석으로 합을 맞췄다. 그 뒤 하헌진 공연은 대부분 김간지와 함께였고 결국 앨범으로 이어졌다. 하헌진이 그동안 발표했던 노래를 새롭게 편곡해 내놓은 ‘김간지×하헌진’은 팝의 근원인 블루스에 김간지의 직관적 그루브를 얹어 몸에 보내는 신호를 구체화했다. 가장 오래된 장르를 춤에 걸맞은 영역으로 이식한 것이다. 

4년 만에 내놓은 2집 ‘세상에 바라는 게 없네’는 전작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기존 노래들이 하헌진이 혼자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면, 이 앨범에 담긴 9곡 모두 김간지와 함께 하는 팀플레이를 전제로 쓰였으니 말이다. 즉 애초부터 리듬을 염두에 둔 곡들이다. 블루스라는 큰 틀 안에 있지만 블루스로부터 뻗어 나온 갈래들, 예컨대 펑크(funk)에서 하드 록에 이르는 터치가 묻어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앨범에는 적용되지 않은, ‘다채로움’이란 단어는 이 앨범을 설명하는 열쇳말이다. 

다채로움은 그저 장르 활용에 머물지 않는다. 곡 중간 중간에 찔러 넣는 감각적인 기타 솔로가 있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는 보컬 멜로디가 있다. 다양한 색깔의 비트가 있다. 음악을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리는 요소다. 물을 만난 고기처럼 하헌진은 짧지 않았던 음악 생활 동안 들려주지 않던 연주를 펼치고, 김간지는 앞뒤에서 빈틈없이 공백을 메우며 그루브를 일군다. 

‘세상에 바라는 게 없네’는 결국 몸을 관통한다. 이제는 힙합과 EDM(일렉트로닉댄스뮤직)의 전유물이 된 몸의 음악이 된다. 생각해보면 세상을 바꾼 모든 음악은 결국 댄스음악 아니었던가.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을 타고 아메리카에 정착한 이들의 리듬이 그 시작점 아니었던가. 머리와 어깨를 까닥이며 이 앨범에 담긴 9곡을 듣는다. 자연스럽게 몸 전체가 흐느적거린다. 이게 블루스다.




주간동아 2018.04.18 1134호 (p78~78)

  •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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