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0

2018.03.21

구가인의 구구절절

잿빛 삶에 띄운 무지개

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 입력2018-03-20 13:51:2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여섯 살 꼬마 무니(브루클린 프린스 분)는 미국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 외곽에 위치한 모텔 ‘매직 캐슬’에서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 분)와 함께 산다. 큰언니뻘인 엄마는 별다른 직업이 없다. 끼니를 때우기도 버거워 엄마 친구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와플가게에서 남은 와플을 몰래 얻어먹는 신세지만, 무니는 늘 해맑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모습은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즐거워 보인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포스터나 예고편만 보고 극장에 들어섰다면 적잖이 당혹스러울 듯하다. 포스터 속 쨍한 푸른 하늘 아래 무지개가 뜬 연보랏빛 ‘매직 캐슬’은 알고 보면 노숙자가 모여 사는 숙박시설이다. 

    영화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홍보사에 따르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5년 디즈니사가 테마파크 디즈니월드 건설을 위해 플로리다주 올랜도 지역의 부동산 매입 계획에 붙인 가칭이다. 동시에 이 단어는 주거복지와 관련된 뜻도 함의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디즈니월드 주변의 모텔 상당수는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의 거주지가 됐다. ‘매직 캐슬’을 비롯해 ‘퓨처 랜드’ ‘오렌지 월드’ 같은 영화 속 모텔은 하나같이 이름만 화려하다(이하 스포일러 있음). 

    싱글맘 핼리는 무능하고 철이 없다. 주 단위로 숙박비를 내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그 돈조차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인근 호텔에서 불법으로 향수를 팔고 구걸에 딸을 동원한다. 딸을 사랑하지만 아이 앞에서 욕을 서슴지 않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무책임한 엄마다. 

    그 탓에 아이는 일찍이 세간의 규범에서 벗어나 사는 방식을 익혔다. 친구들과 주차된 자동차에 침 뱉는 놀이를 즐기는가 하면, 근처 빈집에서 놀다 방화를 저지르기까지 한다. 무니와 친구들이 한나절 내내 구걸한 돈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나눠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여 관객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된다. 



    영화 말미, 생활고에 시달리던 젊은 엄마는 급기야 매춘을 한다. 감독은 매춘을 하는 핼리의 모습 대신, 같은 시간 방구석 욕실에서 물놀이하는 무니의 얼굴을 비춘다. 

    이 영화를 보는 건 불편하다. 특히 35mm 필름으로 찍었다는 달달한 파스텔톤 화면과 예쁜 아이들의 모습이 그들의 현실과 대조돼 더욱 그렇다. 이 불편함은 의도된 것이다. 세상이 동정하거나 멸시하는 삶이라도, 그 안에서 사는 아이들에겐 행복했던 기억이 있을 터다. 침대에 진드기가 끼고 엘리베이터에선 오줌 냄새가 나는 모텔 위로 때로 아름다운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 브루클린 프린스의 천재적인 연기와 숀 베이커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더해져 세상 어딘가에 무니가 실제로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는 아이들 시각으로 대상을 표현하고자 낮은 데서 올려다보는 촬영 기법을 자주 사용했다. 단정하는 대신 지켜보려고 노력한 연출의 흔적 덕분에 영화는 ‘윤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의 한 에피소드에서, 단짝친구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나뭇등걸에 걸터앉은 무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좋아하는 줄 알아?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기 때문이야.” 어딘가에서 계속 자라고 있을 무니와 그 친구들이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할 수 있길 바란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