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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누군가에게는 사무치게 그리웠을 가족의 맛

고향 대신 헛제삿밥

누군가에게는 사무치게 그리웠을 가족의 맛

실제 제사상처럼 구색을 맞춘 헛제삿밥.

실제 제사상처럼 구색을 맞춘 헛제삿밥.

나는 명절마다 간사한 자신을 만난다. 결혼 전에는 명절이 나에게 ‘축제’와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와 넘쳐나는 시간, 평소 맛보지 못하는 귀한 음식과 반가운 친척 방문으로 집 안이 북적북적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가도 문득 집을 빠져나와 한적한 도심이나 극장을 돌아다니며 혼자만의 시간을 누렸다. 그러던 내가 결혼 후에는 ‘명절은 도시의 삶과 맞지 않다, 이 많은 음식은 낭비다, 왜 친척은 명절에만 만나느냐’ 같은 말을 중얼대며 어두운 기운을 등에 이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닌다. 

희한하게도 명절 내내 반갑지 않던 제사 음식이 못 견디게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어릴 때 굳어진 입맛이라 어쩔 수 없이 그리워지는 맛이다. 그러니 고향에 가지 못한 사람, 가족과 모이기 힘든 이들, 따뜻하고 푸짐한 명절 한 상이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들이 분명 있을 터다. 제사 음식은 누군가에게는 노동이고 노고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가족의 따뜻한 맛이니까. 

서울에는 없지만 경북 안동에 가면 헛제삿밥을 파는 식당이 있다. 헛제삿밥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쌀밥이 먹고 싶어 안동지역 유생들이 축과 제문을 쓰고 제사상을 차려 먹었다는 설, 그리고 당시 제사를 지낼 수 없던 상민들이 제사 음식을 그냥 만들어 먹었다는 설이다. 이 헛제삿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78년부터 식당에서도 팔기 시작했다. 

안동 상아동 ‘까치구멍집’은 언제 가더라도 구색 맞는 제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탕, 적, 나물, 찜, 구이, 전, 떡과 함께 안동지방 전통 음료인 안동식혜까지 후식으로 먹을 수 있다. 제삿밥은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 콩나물, 가지, 토란대, 무나물과 함께 탕의 건지와 국물을 밥에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맛을 놓칠 수 없다. 고춧가루나 파, 마늘을 쓰지 않고 양념한 나물의 부드러운 맛에 탕국의 촉촉함이 스며들어 심심하되 깊은 맛이 난다. 탕국은 쇠고기와 무를 넣어 맑게 끓이는데 예전에는 귀한 생선을 구해 어탕이나 채소로만 끓여 먹기도 했다고. 

안동은 바다와 먼 지역이라 제사상에 오르는 생선 요리가 하나같이 짭짤하다. 특히 소금에 절인 상어고기(돔배기)는 짠맛이 입맛을 돋우고 두툼하게 씹는 재미를 선사하는 안동의 별미다. 사람들이 많이 찾기에 김치와 고추장을 상에 차려주지만 간장으로 간을 맞춰가며 제삿밥의 참맛을 경험하기를 권한다. 

안동식혜는 찹쌀로 지은 밥에 얄팍하게 썬 무, 엿기름, 생강즙, 고춧가루를 넣고 2~3일 삭힌 것이다. 건더기가 많아 마시기보다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제맛이다. 시큼, 매콤, 달콤한 맛이 차례대로 느껴지는데 처음 먹는 이에게는 낯설고 오묘하지만 안동 사람들에게는 고향이며 추억의 맛이라고 한다. 

‘까치구멍집’ 앞에는 안동호와 그 위를 그림처럼 가로지르는 월영교가 있다. 길이 387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로 알려져 있다. 월영교에는 처와 자식을 두고 일찍 세상을 등진 고성 이씨 문중의 이응태(1566~1586)와 그의 부인 ‘원이 엄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주간동아 2018.03.07 1128호 (p77~77)

  •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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