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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간장같이 묵은 와인과 블렌딩한 ‘카발로 로코’

칠레 발디비에소 와이너리

씨간장같이 묵은 와인과 블렌딩한 ‘카발로 로코’

발디비에소의 와인셀러(왼쪽)와 카발로 로코 16번. [사진 제공 · 이지와인㈜]

발디비에소의 와인셀러(왼쪽)와 카발로 로코 16번. [사진 제공 · 이지와인㈜]

카발로 로코(Caballo Loco)는 칠레의 발디비에소(Valdivieso) 와이너리가 만들었다. 카발로(표기법은 카바요) 로코는 스페인어로 ‘미친 말(crazy horse)’이라는 뜻이다. ‘미친 말’이 과연 맛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서지만 칠레 명품 와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카발로 로코는 이 와인을 만든 와인메이커 호르헤 코데르크(Jorge Coderch)의 별명이다. 코데르크는 별명처럼 기발한 생각을 잘하는 양조가였던 모양이다. 1990년대 초 그는 어떻게 하면 칠레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가 내놓은 것은 에디션 번호가 붙은 블렌드 와인으로, 레이블에서 빈티지(포도의 생산연도)와 산지명을 없앴다. 

카발로 로코는 최우수 산지 네 곳에서 생산한 최고급 포도로 만든다. 리마리(Limari)에서는 시라(Syrah)를, 마이포(Maipo)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콜차과(Colchagua)에서는 카르메네레(Carmenere)를, 쿠리코(Curico)에서는 말벡(Malbec)을 가져온다. 칠레가 워낙 긴 나라여서 리마리와 쿠리코는 1000km나 떨어져 있다. 

지역과 품종별로 포도를 구분해 따로 양조한 뒤 숙성시켜 와인을 만든다. 이 와인들을 섞어 카발로 로코를 생산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한 해의 와인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발로 로코는 새 와인 50%에 이전 와인 50%를 블렌드해 만든다. 카발로 로코 1번이 1994년 탄생했고, 최신 블렌드인 카발로 로코 16번이 2015년 출시됐다. 16번은 2010년산 와인과 카발로 로코 15번을 반씩 섞어 만들었는데, 절반만 병입해 출시하고 나머지는 지금 보관 중이다. 17번 와인을 만들 때 써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발로 로코는 생산량이 많지 않다. 16번의 경우 3만6000병에 불과했다. 

이렇게 와인을 생산하는 방식을 솔레라(Solera)라고 한다. 솔레라는 셰리(Sherry)처럼 증류주를 섞은 강화와인을 만들 때 주로 쓰는 방식으로, 칠레에서 솔레라로 일반 와인을 제조하는 곳은 발디비에소가 유일하다. 솔레라의 장점은 최신 와인에 오래전에 만든 첫 와인이 조금이나마 포함된다는 점이다. 집안의 장맛을 지키려고 오래 묵은 씨간장을 넣어 장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카발로 로코 중에는 솔레라 방식으로 만들지 않은 와인도 있다. 카발로 로코 그랑 크뤼 시리즈는 각 산지에서 매년 생산하는 빈티지 와인이다. 리마리, 마이포 안데스, 아팔타(Apalta),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등 네 가지가 있는데, 와인마다 산지별 포도가 뿜어내는 개성 넘치는 향미가 생생히 살아 있다. 

카발로 로코 16번은 검은 베리류의 향이 농밀하고, 초콜릿 · 연기 · 향신료 등 다양한 향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복합미를 만들어낸다. 카발로 로코는 노포의 곰탕을 연상케 한다. 와인의 깊은 풍미가 오래 쓴 무쇠솥에서 끓인 진한 국물맛과 어딘지 비슷해서다. 뭐든 빨리 만들고 빨리 소비하는 이 세상에서 느릿느릿 에너지를 축적하며 슬로 쿡 방식으로 생산한 와인 같다. 

카발로 로코를 한 잔 따라 천천히 돌리면서 음미해본다. 와인이 품은 긴 세월이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 든다.




주간동아 2018.01.17 1122호 (p76~76)

  •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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