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9

2017.12.27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항생제 내성균이 신생아 위협한다

몸속에 똬리 틀고 있다 면역력 약한 고리 공격

  • 입력2017-12-26 16: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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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6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80여 분 사이 잇따라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까지 했지만 사망 원인은 아직 밝히지 못했다. 한 공간에서 치료받던 신생아 4명이 거의 동시에 숨지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는 세균 감염, 수액이나 약물 오염 등 몇 가지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대두되는 상황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번 사건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다 시선이 머무는 대목이 있었다. 사망 전 실시한 검사 결과 신생아 3명의 혈액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Citrobacter freundii)’라는 세균이 검출됐다는 내용이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세균이 ‘항생제 내성균’일 가능성을 의심한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의 몸속에 항생제 내성균이라니.

    항생제 내성균의 탄생

    신생아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12월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이 잠정 폐쇄됐다. [뉴시스]

    신생아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12월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이 잠정 폐쇄됐다. [뉴시스]

    알다시피 세균을 죽이는 최초의 항생제는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이다. 페니실린 덕에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다. 항생제는 외과 수술과 함께 현대 의학을 지탱하는 양대 기둥이다. 

    항생제를 처음 발견한 공으로 1945년 노벨상을 받은 플레밍은 일찌감치 암울한 경고를 했다. 적정량의 항생제를 환자에게 처방하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한 것이다. 필요한 양보다 적은 항생제는 제때 질병 원인균을 없애지 못한다. 그렇게 살아남은 세균은 항생제에 맞설 수 있도록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항생제 내성균이다. 

    가끔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생제를 먹다 하루 이틀 지나 몸 상태가 좋아지면 복용을 멈추는 경우가 있다. 바로 플레밍이 걱정한 상황이다. 이는 몸속 질병 원인균 가운데 일부가 살아남아 항생제 내성균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길을 열어준 셈이다. 그러니 일단 처방받은 항생제는 귀찮더라도 꼭 다 먹자! 



    그런데 플레밍은 헛짚었다. 지금은 너무 적은 항생제가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항생제가 문제다. 오늘날 세계에서 매일 처방되는 항생제의 절반 정도는 전혀 필요가 없거나 필요한 양보다 많다. 미국에서 2013년 10월 발표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항생제가 필요 없는 기관지염 환자 가운데 73%가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국 사정도 마찬가지다. 알다시피 감기는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항생제는 바이러스와 상관없는데도 감기약에 무조건 항생제를 끼워 넣는 관행이 있다. 특히 어린아이의 감기에 항생제 처방이 심하다. 우리나라 영·유아(만 2세 이하)를 대상으로 한 항생제 처방을 외국과 비교했을 때 3배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도 있다. 놀라지 말라. 지금 세계에서 쓰이는 항생제의 약 80%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한테 투여되고 있다. 가축이 사람보다 세균 감염이 많아서일까. 아니다. 이 항생제는 대부분 항생제 투여가 필요 없는 건강한 가축에게 쓰인다. 항생제를 사료에 섞어 먹이면 가축이 살찌는 신기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1940년대 항생제가 가축 성장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축산업계는 수십 년간 건강한 소, 돼지, 닭에게 항생제를 먹여왔다(항생제는 가축뿐 아니라 사람도 살찌운다. 생후 6개월 이전에 항생제 처방을 받은 어린이가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렇게 항생제를 먹이면 세균 감염도 예방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이렇게 가축 몸속에 들어간 항생제는 어디로 갈까. 대부분 분뇨에 섞여 외부로 나온다. 인도 갠지스강 수질을 검사해보면 심할 때는 항생제 처방을 받은 환자의 혈액 속 농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 물을 다시 사람이나 가축이 마신다고 생각해보라. 

    이뿐 아니다. 우리가 삼겹살, 치킨, 갈비 등을 먹을 때도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등에 남아 있는 항생제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7년 11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가축 항생제 사용 중단을 권고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이 2006년 성장 촉진용 항생제 사용을 금지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권고다.

    현대 의학도 손 못 쓰는 항생제의 역습

    이렇게 수십 년간 우리 몸속을 비롯한 도처에 항생제가 널려 있다 보니 세균은 재빠르게 항생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흔히 ‘슈퍼박테리아’라 부르는 항생제 내성균은 우리 손이 닿는 구석구석은 물론, 몸속 소장이나 대장에도 똬리를 틀고 호시탐탐 활약할 기회를 엿본다. 

    미국에서는 한 해 200만 명이 심각한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되고, 이 가운데 2만3000명이 사망한다. 시야를 세계로 넓혀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유엔 보고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균 사망자는 세계적으로 매년 70만 명에 이른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는 매년 1000만 명이 이 문제로 목숨을 잃을 전망이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할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항생제 내성균이 몸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데, 그것 때문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는데 왜 나는 괜찮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건강하기 때문이다. 건강할 때는 몸의 면역계나 몸속 건강한 세균이 항생제 내성균을 억제한다. 문제는 건강을 잃었을 때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수술을 받은 중환자, 아직 면역 기능이 발달하지 못한 신생아야말로 항생제 내성균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항생제 내성균은 바로 이들을 공격해 최악의 경우에는 목숨을 빼앗는다. 물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 의학도 속수무책이다. 

    이번에 발견한 세균(시트로박터 프룬디)도 마찬가지다. 항생제 내성균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하더라도 건강한 사람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생아는 사정이 다르다. 물론 항생제 내성균이 이번 신생아 집단 사망의 원인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항생제 내성균은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징표다. 해당 병원 말고 다른 병원 사정은 이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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