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4

2017.11.22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40년 팬이 열정으로 완성한 ‘비틀스’라는 우주

한경식 저 ‘Across the Universe’

  • 입력2017-11-21 11: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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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스(왼쪽)가 발표한 모든 노래에 대한 해설이 담긴 책 ‘Across the Universe’ 표지. [동아DB]

    비틀스(왼쪽)가 발표한 모든 노래에 대한 해설이 담긴 책 ‘Across the Universe’ 표지. [동아DB]

    팝의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비틀스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도 팬덤이 존재한다. 단순한 팬질을 넘어 연구에 가깝게 몰입하는 사람도 많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관련 서적도 다른 음악가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비틀스 멤버가 공인한 유일한 전기인 헌터 데이비스의 ‘비틀즈’가 진작 나왔고, 비틀스에 관한 가장 방대한 자료집인 ‘비틀즈 앤솔로지’도 한글로 만날 수 있다. ‘Across the Universe : 비틀즈 전곡 해설집’은 이러한 비틀스 서적세계에 깃발을 휘날릴 수 있는 책이다. 

    비틀스 관련 책은 몇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그들의 연대기를 기반으로 한 대하 서사. ‘비틀즈’와 ‘비틀즈 앤솔로지’가 대표적이다.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성한 책들도 있다. ‘THE COMPLEAT BEATLES CHRONICLE’이 그런 예다. 사진을 중심으로 한 책도 적잖다. ‘Across the Universe’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없이 연대기와 데이터로 써나간 비틀스의 역사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다른 책이 보통 앨범을 시간의 분기점으로 삼는 반면 이 책은 노래가 그 구실을 한다. 그렇다. ‘Across the Universe’는 비틀스가 남긴 282곡의 해설서다. 

    링고 스타가 비틀스에 가입하기 전, 즉 그들이 ‘쿼리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 처음으로 레코딩한 ‘That’ll Be The Day’부터 비틀스 멤버가 모두 참여한 마지막 레코딩이 된 ‘Real Love’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이 100권이 훌쩍 넘는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돼 있다. 해당 곡이 앨범에 담긴 순서가 아니라 녹음일자에 따라 연대기를 작성해 비틀스 노래가 어떤 순서로 녹음됐는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건 덤이다. 

    저자는 이 씨줄에다 각 노래에 얽힌 이야기와 배경, 그리고 멤버 및 관계자들의 증언을 날줄로 엮어 비틀스라는 세계를 홀로그램처럼 살려낸다. 참고자료와 증언 내용이 엇갈릴 때는 교차 검증을 통해 무엇이 참인지를 입증하는 촘촘한 노력도 잊지 않는다. 예를 들어 ‘Yesterday’. 어느 날 폴 매카트니가 꿈에서 들은 멜로디를 바탕으로 만든 이 곡의 정확한 완성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증언이 있다. 저자는 엇갈리는 증언들을 모두 소개한 뒤 서로 다른 내용을 종합해 “1965년 초 ‘Yesterday’의 멜로디는 거의 완성 단계였지만 가사는 녹음 세션에 들어가기 바로 며칠 전에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린다. 

    디테일은 말할 것도 없다. 각각의 노래가 언제 레코딩됐는지 날짜까지 적시한 것은 물론, 레코딩이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됐는지가 기본으로 소개된다. 그 밖에 비틀스 멤버와 관련 인사들이 겪은 사건도 마치 재판 기록을 보듯 숨 막힐 정도로 자세히 기록해뒀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의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고1 때 처음 비틀스를 알게 돼 순식간에 빠져든 한경식은 꾸준히 자료를 모아 2001년 ‘The Beatles Collection’을 출간한다. 이후 17년 동안 내용을 보완해 ‘Across the Universe’로 제목을 바꿔 다시 냈다. 개정판이라기엔 너무 많은 내용이 달라졌으니 사실상 다른 책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집념, 열정, 재능을 꼭짓점 삼아 비틀스라는 우주를 한글로 가로지른다. 비틀스 노래의 제목을 빌려 이 노고를 표현하자면 ‘The Long And Winding Road’ 자체가 아닐까. 고단하고 값진 그의 여정이, 한 사람의 비틀스 팬으로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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