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9

2017.10.18

한창호의 시네+아트

그 남자아이는 ‘열매 있는 나무’가 됐을까

마이크 밀스 감독의 ‘우리의 20세기’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7-10-17 12: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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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 밀스 감독은 가족 이야기를 잘 만든다. 자전적 성격이 짙은 영화에서 그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 모두의 문제를 건드린다.

    이를테면 감독에게 명성을 안겨준 ‘비기너스’(Beginners  ·  2010)는 그의 부친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미술관 큐레이터인 주인공은 아내가 암으로 죽고 75세가 됐을 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다른 삶을 ‘시작’하는데, 실제로 감독의 부친이 75세 에 커밍아웃했다. 이 영화에는 성적 정체성에 관한 현대 사회의 논쟁적인 질문이 녹아 있는 셈이다. 밀스 감독의 신작 ‘우리의 20세기’는 그의 모친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대적 배경은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이던 1979년. 카터가 ‘소비주의의 향락’을 비판하며 ‘삶의 의미’를 강조하던 때다(카터의 1979년 TV 연설 ‘자신감의 위기’ 장면이 영화에 삽입돼 있다). 사춘기 소년 제이미(루커스 제이드 주먼 분)는 제도사(製圖士)인 엄마 도로시아(애넷 베닝 분)와 함께 산다. 이 집엔 사진기자인 페미니스트 애비(그레타 거위그 분), 그리고 히피 세대인 자동차 정비공 윌리엄(빌리 크루덥 분)이 세입자로 살고 있다. 엄마는 ‘공황 세대’(193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세대), 윌리엄은 60년대 히피 세대, 그리고 애비는 70년대 페미니즘 세대를 각각 대표한다. 여기에 제이미의 여자친구 줄리(엘르 패닝 분)가 제집 드나들듯 하는데, 이들 10대는 펑크 세대다. 즉 기존 질서에 적응하길 거부하는 청춘이다.



    도로시아는 아버지 없는 아들이 남성으로 제대로 자랄지 걱정이다. 이에 애비와 줄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세 명의 여자가 힘을 합쳐 ‘다른 남자의 도움 없이’ 아들을 멋진 남성으로 이끌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들 사이에선 이견(異見)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카터의 연설에 감동한 사람은 도로시아 혼자고, 다른 여성들은 그에게서 ‘꼰대’ 이미지를 느낀다. 페미니스트 예술평론가 수전 손태그를 좋아하는 애비는 도로시아가 보기에 ‘전투적’인 생각을 아들에게 주입하는 것 같다. 늦은 밤 싸돌아다니는 줄리의 행동도 조금씩 도로시아의 신경을 건드린다. 아들 역시 고분고분하지만은 않다. 세대가 다른 세 여성, 곧 ‘20세기의 여성들’(원제)이 충돌하고 화합하며 소년 제이미의 성장을 돕는 게 ‘우리의 20세기’의 매력이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루이 아라공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시구(詩句)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우리의 20세기’를 즐기는 데 아라공의 시만큼 적절한 접근도 없을 것 같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중략)/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거칠어질 뿐/ 열매 없는 빈 나뭇가지에 불과하다’(‘미래의 시’ 중에서).

    이 영화에도 자전적 내용이 섞여 있다. 실제로 밀스 감독의 모친이 제도사였다. 그가 모친의 뜻대로 ‘열매 있는 나무’로 성장했는지는 관객이 영화로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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