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6

2017.09.20

책 읽기 만보

호퍼의 그림과 함께 하는 17명 작가의 상상력 잔치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2017-09-19 13: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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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혹은 그림자’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문학동네/ 440쪽/ 1만8000원

    이름만 들어도 호화롭다. 이런 라인업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현존하는 미국 유명 작가들을 다 모아놓은 듯하다.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조이스 캐럴 오츠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여기에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 톰 크루즈가 영화 주연을 맡았던 ‘잭 리처’ 시리즈의 리 차일드, ‘본 컬렉터’ 시리즈의 제프리 디버,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로버트 올렌 버틀러 등이 뒤따른다.

    국내에선 생소할지 몰라도 미국에선 ‘짱짱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도 많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 로런스 블록도 미국 추리작가클럽에서 주는 에드거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이 책에 쓴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로 올해 에드거상을 또 수상했다.

    이들 작가 17명을 한곳에 모은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들이 오마주하며 소설 17편을 바친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다. 그는 쓸쓸하고 고독한 삶의 일상을 포착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림 주인공들은 밝은 빛 아래 있어도 어두워 보인다. 뒷모습은 삶의 무게를 잔뜩 짊어진 듯하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응시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지만, 한결같이 무표정하거나 우울하다.

    그래서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주인공들이 바라보거나 대화하는 주제는 무엇이고, 기다리는 건 누구일까. 호퍼의 그림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가 호퍼 작품을 모티프로 삼은 영상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배우 공유와 공효진의 쓱(SSG) 광고가 바로 호퍼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단박에 유명해졌다. 말하자면 이 책은 호퍼를 위한 소설판 오마주라 할 수 있다.



    이 책 기획자인 로런스 블록은 참여 작가들에게 한 가지만 요구했다. 오직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었다. 주제나 장르를 제한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스릴러, 드라마, 범죄, 미스터리, 환상문학 등 그 어떤 선집(앤솔러지)보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작품이 모였다.

    17개 작품 가운데 형태가 가장 특이한 건 호퍼의 ‘선로 옆 호텔’을 보고 쓴 ‘11월 10일의 사건’. 이 단편소설은 1954년 소련 시절 구속 수감된 군사정보국 소속 대령이 소련 연방 각료이사회 제1부의장에게 보내는 탄원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대인인 독일 출신 핵무기 공학자를 감시하던 대령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한 상황과 ‘선로 옆 호텔’이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연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다. 그만큼 호퍼의 그림이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 돋보일 뿐이다. ‘본 컬렉터’의 작가답게 시대 상황과 스파이 작전을 절묘하게 연결한 상상력이 기발하다. 

    가장 극적인 반전은 로런스 블록의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 그림처럼 우아하게 차려입은 여인은 실제로는 집세도 제대로 못 내는 가난뱅이다. 그는 5센트짜리 동전 5개씩 4묶음을 주고 간신히 끼니를 때운다. 하지만 그는 식당을 나서다 지배인에게 붙잡힌다. 티스푼 등 식기를 훔쳤다는 것인데…. 책을 다 읽고 나면 큰 잔칫상을 받은 느낌이다. 배불러도 쉬 숟가락질을 멈추기 힘든.




    회계는 필요 없다

    바루크 레브·펭 구 지음/ 신지현 옮김/ 한스미디어/ 396쪽/ 1만8000원


    주식투자를 처음 할 때 흔히 듣는 조언은 기업의 재무보고서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의 진짜 가치를 알 수 있고, 그 가치와 주가를 비교해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 말은 외부 이슈나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재무보고서를 통해 ‘진짜 좋은 주식’을 스스로 발굴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이거, 지극히 당연한 말 아닌가. 

    이 책은 재무보고서에 나온 지표가 과연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주식투자에서 가장 필요한 항목, 즉 기업의 미래가 얼마나 희망적인지는 재무보고서를 통해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903년 US스틸은 주주를 위해 세계 최초로 연차보고서를 냈다. 1902년 실적을 기준으로 작성된 이 연차보고서와 2012년도 재무제표를 비교해보면 구조와 내용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110년 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해온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 기업은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재무제표의 유용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저자들은 기업의 주요 재무제표와 주가의 상관관계를 비교해 지난 반세기 동안 크게 약화됐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어 두꺼운 재무보고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는 고작 5%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회계장부는 현재 기업의 가치를 창출하는 주된 자원인 무형자산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소프트웨어, 인터넷, 바이오, 무선통신, 나노테크 등 무형자산 집약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개발비, 브랜드, 노하우를 회계장부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새로운 공시체계를 제안하고 있다. 재무보고서상 이익과 자산 등 전통적 회계 정보는 간단히 처리하고, 기업의 전략과 실행 방안, 무형자산 등에 초점에 맞춘 ‘전략보고서’를 내자는 것이다. 전략보고서에는 특허, 브랜드, 정보기술(IT) 역량, 사업 인허가, 고객 명단, 비즈니스 플랫폼, 사업 제휴 관계 등을 담는다. 이 책에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손해보험, 제약/바이오테크, 석유/가스 등 4개 분야의 산업을 사례로 전략보고서 샘플도 제시했다. ‘재무보고서에 가려진 기업의 진짜 가치를 찾는 법’이란 부제가 과하긴 해도 투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지침서가 될 만하다.






    토베 얀손, 일과 사랑

    툴라 카르얄라이넨 지음/ 허형은 옮김/ 문학동네/ 308쪽/ 2만2000원

    요즘 서울 예술의전당에선 핀란드 인기 캐릭터 ‘무민’의 원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무민 창작자인 토베 얀손은 1945년 ‘무민 가족의 대홍수’를 시작으로 70년 ‘무민 골짜기의 11월’ 등 무민 시리즈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화가로 인정받고 싶었던 얀손은 자신만의 화풍과 색채로 꾸준히 회화 작업을 해왔다. 저자는 얀손이 남긴 수기, 메모, 지인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를 분석하고 남동생과 수년 동안 대화하면서 얀손의 인생을 세심하게 담아냈다. 도판 150여 점도 얀손의 인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제목 ‘일과 사랑’은 그의 좌우명 ‘일이 우선, 그다음이 사랑 순’에서 따왔다.






    알짜배기 골프 1, 2, 3

    이봉철·박상용 지음/ 지상사/ 각 권 108쪽/ 각 권 1만 원


    골프 초심자가 자연스럽고 빠르게 골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 입문서. 기본자세와 기술, 용어, 에티켓은 물론, 기초체력 향상을 위한 방법을 그림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1권은 기초 과정이고    2권은 응용, 3권은 심화 과정이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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