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0

2017.08.09

김민경의 미식세계

접시에 핀 꽃까지 먹어야 제맛

서울 신사동 일본 식당 ‘모국정서’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gmail.com

    입력2017-08-08 10: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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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을 수 없는 것은 그릇에 올리지 않는다’는 말은 당연한 것 같지만 음식점에 가면 왕왕 대면하게 된다. 예를 들면 생선회 접시에 담긴 채 썬 무나 파슬리, 제육볶음 아래 깔아놓은 깻잎, 중국 요리 귀퉁이의 꽃당근 등이다. 요리를 돋보이게 하는 식재료지만 안타깝게도 버려지기 일쑤다. 맛보다 모양에 더 신경 쓰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모국정서’라는 술집에 가면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화려하고 예쁜 요리가 많다. 모든 음식이 1인분씩으로 한 그릇의 양이 적다 보니 섬세함과 정갈함이 더욱 돋보인다. 화사한 색감과 고운 자태에 덥석 먹기 미안한 가니시(garnish)가 종종 등장한다. 물론 망설임 없이 싹 먹어도 된다. 이곳의 가니시는 요리에 따라 소스가 되고, 토핑이 되며, 반찬이 되고, 입가심을 도와주는 구실도 하기 때문이다. 한 접시에 요리사가 구상한 맛의 의도가 담겨 있으니 식재료를 남기면 나만 손해다.



    그 대표 격이 마 소면이다. 마는 맛과 향이 무(無)에 가깝지만 찐득한 진이 나오고 사각거리는 식감이 아주 독특하다. 마를 소면보다 가늘게 채 썬 뒤 사리를 지어 그릇에 담는다. 섭씨 68도에서 35분간 수비드(sous-vide)로 익힌 달걀노른자를 소면에 얹고 곱게 채 썬 유자껍질을 올린다. 마와는 다른 아삭함을 선사하는 얼갈이배추 절임 2~3쪽을 곁들인다. 다시마와 일본 간장, 술, 미림을 넣고 끓여 맛을 낸 국물을 차갑게 식혀 붓는다. 먹을 때는 국수 먹듯 노른자를 쪼개고 마 소면을 국물에 휘휘 저어 얼갈이배추, 유자와 함께 건져 한입에 먹는다. 맛, 향, 식감, 온도에서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조화롭다. 언제 먹어도 마음이 달뜨는 한 그릇이다.

    살이 보드라운 금태구이는 활짝 핀 꽃 같은 무절임과 조린 알밤이 함께 나온다. 금태는 잔가시를 모두 발라내고 껍질에 칼집을 여러 번 내 꼬치에 끼워 직화로 굽는다. 거의 다 익으면 아몬드페이스트를 몇 차례 덧발라가며 구운 뒤 그릇에 담고 아몬드 슬라이스를 뿌린다. 촉촉한 살코기와 고소한 페이스트, 바삭한 아몬드를 한입 가득 넣고 우물우물 먹는다. 아삭하고 시원한 것이 당겨 꽃무 한 송이를 집어 먹는다. 생선을 다 먹고 나면 입안에 배릿함이 약간 돌아 달콤한 밤으로 입가심을 해본다.





    가니시 없이 툭툭 담겨 나오는 음식도 있다. 생선회가 그렇다. 여러 종류의 신선한 계절 생선살, 성게알, 중간에 입가심을 도와줄 향신채소 약간, 고추냉이가 전부다. 싱싱한 생선은 꾸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디저트로 즐기는 모찌(찹쌀떡)구이도 마찬가지. 쫀득한 모찌 안에 곶감과 치즈를 넣은 뒤 지글지글 구워 달콤, 짭조름한 양념을 넣고 버무린다. 구운 잣과 메이플 시럽을 올려 함께 먹는다.

    ‘모국정서’는 계절 재료와 조리법을 다채롭게 해 즐거움을 선사한다. 접시에 담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게 하려면 요리사는 그만큼 준비 시간에 공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우리는 한 점 남김 없이 먹는 것이 그 노고에 대한 답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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