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6

2017.07.12

커버스토리

김상곤號가 그리는 ‘서열 없는 대한민국’

교육혁신의 출발일까, 거대한 혼란의 시작일까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7-07 18: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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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 두 달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6월 말 전국 유권자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에서 문 대통령의 전국 지지율은 80%를 기록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문 대통령 앞에 변수가 나타났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취임이다.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의 실질적 설계자로 통하는 김 장관은 ‘교육혁신가’를 자처한다. △수능 절대평가제 △외고·자사고 폐지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등 중고교 교육 현장을 뒤흔들, 파괴력 있는 정책이 대부분 그에게서 나왔다. 김 장관은 7월 5일 취임과 동시에 이 모든 ‘약속’을 본격적으로 실현해나갈 전망이다.

    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은 새로운 교육으로 시작한다’고 밝힌 점도 이런 예상에 힘을 싣는다. 그는 취임사에서 ‘학교와 교육 전 영역에 깊게 뿌리 내린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공존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교육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 때문에 출항을 앞둔 김상곤호(號)를 바라보는 교육계에는 태풍 전야 같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층인 3050세대 학부모 사이에서 김 장관의 교육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번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는 한 40대 직장인은 “김 장관이 말로는 ‘교육의 공정성을 높이고 교육의 계층사다리를 복원하겠다’고 하지만 내놓는 정책은 하나같이 ‘가진 자’에게 유리해 보인다. 그러잖아도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서 수능 변별력을 줄이고, 고교 내신 변별력조차 없애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교수는 “김 장관 생각대로 교육정책을 바꿀 경우 우리나라 성장을 견인해온 한국 교육의 특수성이 사라지고 학생 수준이 하향평준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김 장관의 행보가 문재인 정부 앞에 닥친 첫 번째 시험대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수능 절대평가제

    논란의 중심은 빠르면 2021학년도부터 시행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제다. 김 장관은 8월 초까지 이에 대한 정책 방향을 발표하기로 했다. 만약 이때 수능 절대평가제 전면 시행이 결정될 경우 교육계에 태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현행 상대평가제에서 수험생은 수능 영역별로 백분위 상위 4%까지 1등급을 받는다. 전 영역 1등급을 받는 학생은 보통 1400명 안팎이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이 부분이 달라진다. 영역별로 90점 이상이면 누구나 1등급이 되기 때문에 시험이 어려울 때는 1등급을 받는 이가 적고, 쉬우면 많아진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수능을 절대평가로 환산할 경우 전 과목 1등급 수는 2015학년도 1만4000여 명, 2016학년도 1만3000여 명, 2017학년도 4700여 명이다. ‘최상위권’ 수험생 수가 지금에 비해 최대 10배까지 많아질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현재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입학 정원은 약 9000명 수준이다. 수능 절대평가제가 시행될 경우 문제 난도가 낮은 해에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은 전 과목 1등급을 받고도 이른바 ‘일류대’ 진학에 실패할 수 있다. 이 경우 대학입시에 일대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게 수능 절대평가제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김 장관은 ‘수능 점수 1점 차이로 대입 당락이 갈리는 현실’을 개선하고, 문제 풀이 교육에 치우쳐 있는 고교 현장을 정상화하려면 수능 절대평가제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다. 고교 교사 출신인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도 “성적 상위 10% 이내 학생이 1% 혹은 0.1%가 되려고 국·영·수 공부 경쟁을 벌이는 걸 이제는 그만두게 해야 하지 않나”라며 “수능 절대평가제를 정착해 학생들에게 ‘수능 점수를 높이려는 경쟁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불필요한 공부는 그만하고 창의력, 문제해결력, 의사소통능력 등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하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수능 절대평가제를 도입한다고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서열 문화가 일시에 바뀔 리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이 변별력 강화를 위해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 평가 비율을 높이거나 면접을 강화하고, 심지어 본고사를 도입할 경우 수험생의 입시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한 사교육업계 관계자는 “본고사가 사실상 금지된 상황에서 대학들이 지원자의 학업 능력을 추가로 확인할 방법은 논술, 면접 정도밖에 없다. 만약 대학들이 ‘심층면접’을 통해 교과 심화 내용 숙지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하면 공교육이 이에 대응할 수 있겠나. 논술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전형의 영향력이 커지면 학생들은 결국 사교육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원칙적으로 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대입전형 간소화+고교 내신 성취평가제

    사교육을 유발하는 대학입시를 대폭 개선해 대입전형을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수능전형 3가지로 단순화하겠다는 것은 문 대통령의 주요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학생부교과전형은 고교 내신을 주로 보고, 학종은 교과 성적에 더해 동아리·봉사활동 등 비교과활동까지 평가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 교육 공약 중 하나인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가 전면 시행되면 학생부교과전형이 사실상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현재 고교 내신은 상대평가 방식(9등급제)으로 산정된다. 상위 4%까지 1등급, 4〜11%는 2등급을 받는 식이다. 성취평가제는 이를 개선해 등수와 무관하게 학생의 성취 수준에 따라 A~E등급을 부여하는 평가 방식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한 반 학생이 모두 수학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으면 전원이 A등급이 될 수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상위권 대학 입시에서 고교 내신은 변별력을 갖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 수능 절대평가제를 통해 수능 전형의 변별력 또한 낮아질 경우 대입의 ‘대세’는 학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때 당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고교 교사들이 학생의 학교생활을 평가해 기록하는 학생부 내용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새 정부 구상대로라면 앞으로 교육 현장에서 학교 교사의 권한이 더욱 막강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실제로 ‘교사가 교육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왔다. 2014년 펴낸 책 ‘뚜벅뚜벅 김상곤 교육이 민생이다’에서는 한국 교육의 강점으로 ‘질 좋은 교사’를 꼽았다. 책의 한 대목이다.

    ‘대학 입학 시 성적으로 교사들의 질적 수준을 평가한 2010 매킨지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SAT(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 하위 50% 수준에서 교사가 충원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반면 한국 교사들은 대입 수능시험 성적이 상위 5% 안에 듭니다. 이 정도면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과 더불어 3대 교육 강국으로 꼽히는 싱가포르의 교사 수준이 상위 30%, 핀란드가 상위 20% 남짓합니다. (중략) 교사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낼 만한 물꼬만 터주면 학교가 놀랍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혁신학교 같은 경우가 이를 보여준 사례죠.’

    물론 유능한 교사가 학교 현장을 바꿀 수 있다. 6월 23일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개최한 ‘수학 교과 과정중심평가 현장 정착 방안’ 토론회에서 김보현 서울 동성중 교사(수학)는 지금까지의 시험 점수 위주 평가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매시간 수업 중 관찰한 학생들의 활동을 노트에 적는다. 칠판이나 학생들 활동을 무음카메라로 촬영한 뒤 이를 개인 수업밴드에 올린다. 수업 중 노트와 수업밴드에 올린 사진을 바탕으로 수업 일기를 쓰고 개별 학생들이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한다. 작성한 일기는 매일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학생부를 통해 지원자의 학창 시절 관심사와 재능, 잠재력 등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학생부를 기록하는 교사의 이런 열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당수 교사는 학생에게 이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서울 강북지역에서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한 학부모는 “이 동네에는 잘 가르치는 교사도, 학생부를 정성 들여 써주는 교사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과 내신 변별력을 없애면 우리 애는 어떻게 대학을 가라는 말이냐”고 토로했다. 이 틈을 사교육업체가 치고 들어올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학종에 대해 불신을 쏟아내는 목소리 중 상당수는 ‘아이들의 비교과활동을 근사하게 만들려면 고액의 사교육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고교학점제

    문재인 정부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고교학점제다. 고교의 필수교과를 최소화하고 학생 교과 선택권을 확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수업의 수강 기록과 담당 교사가 관찰한 특기사항 등이 학생부에 기재되면 대학입시 자료가 된다. 예를 들어 특정 대학 수학과에 수능 전 영역 1등급 학생이 다수 지원했을 때 대학 측은 학생부를 보고 고교 교육과정에서 수학 한 과목만 들은 학생보다 여러 과목을 선택해 들은 학생에게 가산점을 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제도가 정착되면 학생 자율성 확대와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반대 의견도 적잖다. 대학 서열화가 유지되고 고교 교육이 대입을 목표로 하는 한, 일선 학교는 입시에 유리한 과목 중심으로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도 그런 수업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게 한 가지 이유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전국 초중고교 교원 2077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자료에서는 고교학점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쪽(43%)보다 부정적으로 본 쪽(47%)이 약간 더 많았다. 전자의 교사들은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든 반면, 후자에서는 ‘고교학점제가 도농 학교 간 격차를 심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서울지역 한 고교 교사는 이에 대해 “고교학점제를 실시하려면 현재 보통 한 학기에 50여 개인 교과목 수를 100개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교육 과정은 물론 학교 시설, 교원 수급 방식 등 많은 부분을 바꿔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다. 그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혜택을 보는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은 상대적으로 차별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잖아도 일반고보다 우수한 교육 여건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외고·자사고, 그리고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 고교의 경쟁력이 더욱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일단 개별 학교 단위에서 시작한 뒤, 추후 주변 여러 학교가 함께 개설·운영하는 공동교육과정을 만들고 이를 지역사회 연계형, 온라인 기반형 등으로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적잖을 전망이다.



    외고·자사고 폐지

    ‘김상곤호’ 교육정책에서 또 하나 논쟁적 주제는 외고·자사고 폐지다. 김 장관이 추진할 △수능 절대평가제 △대입전형 간소화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 △고교학점제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외고·자사고 폐지가 선결 과제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자사고·외고 문제 및 특권 교육의 폐해 등과 연계해 고교 체제 전반을 총체적으로 살펴 개혁 방안을 마련해나갈 것”이라고 밝히는 등 이 문제의 해결 의지를 분명히 했다.

    2013년 현재 우리나라 고교의 연간 교육비는 사립 일반고가 평균 296만 원인 반면 자사고는 777만 원, 외고는 863만 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외고·자사고에 가는 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2013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한 ‘고교다양화 정책의 성과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자사고 학생들이 해당 학교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가 ‘장차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이 구조를 깨겠다는 게 김 장관의 의견이다.

    그러나 교육 자율성과 학생 선택권 보장 등을 내세우며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커리큘럼과 교육 여건을 갖춘 외고·자사고가 사라지면 서울 강남 8학군이 부활하고 ‘특성화 교육’ 수요가 사교육계로 몰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수월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서열화된 고교 체제 해소와 대입제도 개혁 같은 온 국민의 이해가 걸린 중대한 사안은 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국민과 교육 주체의 뜻을 제대로 담아내는 절차와 과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논란이 된 교육정책을 현재 중3이 대입 시험을 치르는 2021학년도부터 일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가 ‘교육 서열화 철폐’를 필생의 과제로 삼은 만큼, 머잖아 경기도교육감 시절 모습대로 강력한 혁신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그것이 서열화가 사라진 새로운 대한민국 교육의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거대한 혼란의 서막이 될지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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