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5

2016.04.27

사회

인터넷은 전문藥 ‘불법약국’

개인 간 불법거래 횡행, 치명적 부작용 우려…보건당국 체계적 단속 미흡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4-22 16: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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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덕틸 비만치료제 10mg 22알 팝니다. 한 달분 10만 원에 병원 처방전비 2만 원, 총 12만 원. 팔고자 하는 가격은 22알 8만 원. 운송비 제가 부담. 가격이 좀 비싸다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처방전이 싼 곳도 만 원이거든요. 처방전비는 제외했다 생각하시면 돼요. 연락주세요.’

    2015년 10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국내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식욕억제제 구매를 유도하는 내용이다. 같은 약품명을 한 인터넷 중고장터 사이트에서 검색하자 ‘리덕틸 팝니다’라는 글이 2016년 4월 11일자로 올라와 있다. 게시 글에 있는 연락처로 문의하니 ‘팔렸다’는 답장이 왔고, 해당 글은 곧 삭제됐다.

    온라인에서 의약품 불법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인터넷 다이어트·피부 미용 관련 사이트, 중고장터 등에서 특정 의약품명을 검색하면 ‘○○○ 팝니다’ ‘○○○ 삽니다’ 같은 글들이 수년 전부터 꾸준히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약분업 무너지는 약품 오·남용 기승

    한 블로거는 ‘의약품 해외 직구하는 법’을 화면 캡처자료까지 제시하며 자세히 안내했다. 여드름 치료 성분 트레티노인이 들어간 연고를 태국에서 수입하는 방법이었다. 이 약품은 국내에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매가 가능하다. 이 블로거는 ‘태국에서는 트레티노인 연고가 처방전 필요 없이 싸게 파는 제품이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해외 직구로 구매했다’며 구매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현행법상 개인 간 의약품 거래는 불법이다. 약사법 제44조는 ‘약국개설자(약사 또는 한약사) 및 의약품판매업자(한국희귀약품센터, 허가를 받은 한약업사 및 의약품 도매상)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할 수 없다’고 규정하며, 제50조는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반한 불법거래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새누리당 이종진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상 의약품 불법판매 게시물 적발 건수는 2011년 2409건, 2012년 1만912건, 2013년 1만3542건, 2014년 1만6394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2014년 적발된 의약품 판매 게시물은 발기부전 치료제 4722건, 종합영양제 2115건, 스테로이드 1048건, 발모제 902건, 최음제 870건 순이었다.

    전문의약품 불법유통은 의약분업의 목적 가운데 하나인 ‘의약품 오·남용 방지’ 체제를 무너뜨린다. 이주영 녹색소비자연대 의약품안전사용운동본부장(약사)은 “의약품 구매가 법으로 제한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의약품을 잘못 또는 과하게 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누구나 어디서든 약을 쉽게 살 수 있다면 그 피해가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약품을 불법으로 구매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먼저 의사에게 처방전을 받지 못한 환자다. 특히 전문의약품은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약국에서 살 수 있는데, 처방전을 받지 못하면 불법거래에 손을 뻗게 된다. 가장 쉽고 빠르게 거래가 진행되고, 거래 흔적을 지울 수 있는 공간이 온라인이다.

    비싼 의약품을 저렴하게 구매하고자 인터넷을 찾는 사람도 있다. 올해 국내 출시를 앞둔 한 C형간염 S치료제는 지난해 말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의약품으로 분류되면서 국내 판매가격이 3800만 원(12주 복용 기준)으로 책정됐다. 미국 판매가인 1억 원보다 저렴하지만 일반인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C형간염 환자와 가족들은 방글라데시 구매대행에 눈을 돌렸다. 인터넷에서 ‘방글라데시에서는 이 약의 복제약을 처방전 없이 살 수 있으며 가격도 훨씬 싸다’는 정보가 퍼졌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한인민박집 가운데 한 곳은 인터넷에 이 약의 가격, 성분, 예상되는 부작용 등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구매대행 연락처도 올려놨다. 보건복지부가 4월 20일 이 약을 “보험급여 의약품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줄이겠다”고 발표했지만 온라인 해외 직구는 여전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판매 중단된 약도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약국에서 팔아도 불법인 제품을 인터넷에서 버젓이 팔고 있는 것. 비만치료제 ‘리덕틸’(전문의약품, 성분명 시부트라민)은 2010년 10월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약처)의 권고 조치에 따라 국내에서 전량 회수됐다. 2010년 1월 유럽의약품기구(EMA)와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주성분인 시부트라민이 심장 발작이나 뇌졸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리덕틸의 판매 및 사용 중지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당시 리덕틸뿐 아니라 국내 제약사가 만든 시부트라민 성분의 모든 약품이 판매 중지됐다. 그럼에도 온라인에서는 지금도 리덕틸 매매 게시 글이 올라오고 있다.

    따라서 온라인에서 ‘리덕틸’이라고 파는 약의 경우 당시 국내 제약사가 제조해 판매했던 시부트라민 제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리덕틸은 2010년 이미 전 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판매 중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관했다면 사용기한이 훨씬 지났을 공산이 크다. 시부트라민 성분은 치명적인 심혈관계 합병증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데다 유통기한까지 지났으면 건강에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인터넷에 리덕틸로 판매되는 제품은 제조 후 6년 이상 지났거나 가짜 약일 우려가 있다고”고 말했다.



    부작용 생겨도 보상 방법 없어

    불법거래되는 약은 구하기 어렵거나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매자는 국내에서 팔지 않는 약의 해외 구매를 대행해 이득을 얻고자 하거나, 복용하고 남은 약을 처분하고 싶거나, 약의 유통기한이 임박했는데 더는 복용 계획이 없을 경우 약을 불법으로 판매한다. 때로는 제약사 영업사원들이 빼돌린 약이 암암리에 유통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먼저 처방전 없이 약을 임의대로 복용한 후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여드름 치료제 성분 ‘이소트레티노인’이 들어간 전문의약품이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매매되고 있는데, 전문가는 “의사의 지침 없이 복용했다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진호 서울대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는 “이소트레티노인을 잘못 사용하면 간 기능 저하나 고지혈증 등을 초래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복용 후 2년 내 임신하면 기형아를 출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임기 여성은 신중하게 복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짜 약을 구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발기부전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이주영 본부장은 “‘발데나필’과 ‘실데나필’ 성분의 발기부전 치료제는 전문의약품인데, 의사 처방을 받지 못한 환자 일부가 인터넷에서 가짜 약을 찾는다. 가짜 약에는 치료제 성분이 미미하게 들어갔거나 완전 다른 성분이 들어갔을 우려가 있다. 당연히 큰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법이 없다. 의약품 부작용 신고 및 피해 상담을 담당하는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관계자는 “전문의약품 복용으로 입원, 중증장애, 사망 등 피해를 입었을 때 의사의 처방전을 증거자료로 제출해야 한다. 의약품을 불법구매한 경우 부작용 피해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건당국이 의약품 불법거래를 모두 막기에는 역부족인 측면이 없지 않다. 식약처 측에는 온라인에 대한 수사 권한이 없는 데다 단속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 불법유통이 적발되면 경찰에 수사를 맡긴다. 게시 글 작성자의 아이피(IP) 주소가 국내일 경우 경찰이 게시 글 작성자의 인적사항을 조회해 수사하고, 해외일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사이트를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온라인 게시물이 바로 삭제되는 경우도 많아 모든 매매를 단속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해외 직구’, 합법과 불법 사이


    현행법이 의약품 불법거래를 방치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주경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의약품 온라인 거래와 관련된 쟁점과 개선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의약품 온라인 거래에 대해 약사법과 관세법 사이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약사법은 의약품 오·남용 방지를 위해 의약품 판매 경로를 엄격히 제한하는 반면, 관세법은 과세, 면세의 기준이 되는 자가 소비에 한해 의약품 통관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약사법은 의약품의 온라인 거래를 허용하지 않지만, 관세법상으로는 전문의약품의 경우 의사 처방전에 정해진 수량 이하로 통관이 가능하다. 또한 자가 사용 목적으로 간주되는 분량(3개월 치 또는 6병)은 처방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내로 수입할 수 있다. 의약품 해외 직구의 합법 여부가 2개 법에서 상충하는 지점이다.

    의약품 해외 직구에 대한 식약처의 대응도 애매하다. 김주경 조사관은 보고서에서 “식약처는 국내 소재 구매대행업체가 의약품을 해외 직구할 경우 ‘수입대행형 거래’로 분류돼 약사법 규정을 적용하지 않지만, 인터넷상 의약품 거래는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약품 해외 직구 소비자에게는 혼란이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식약처는 1월 약사법과 관세법에 의약품 불법거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온라인 의약품 구매에 대한 고시개정을 관세청과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의약품 불법거래를 방지하려면 소비자와 보건당국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약품을 불법구매, 오용한 후 생기는 부작용은 소비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주영 본부장은 “소비자는 불법거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적법한 틀 안에서 의약품을 사용해야 한다. 불필요한 약은 안 살수록 좋다. 약을 구매할 때 자신의 건강, 생명에 직결되는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보건당국에 대해선 “중증질환자의 경우 약값이 너무 비싸 해외 현지 구매 또는 온라인 직구를 하는 고충도 만만찮다. 정부는 비싼 약값을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사회 전체적으로 불법의약품 구매 방지에 대한 교육을 확산하고 불법판매자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단속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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