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1

2019.08.09

원포인트 시사 레슨

‘아베의 최순실’, 안도 이와오?

‘일본회의’ 배후로 의심받는 ‘생장의 집’ 출신 학생운동권의 대부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9-08-09 16:56:2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신화=뉴시스]

    [신화=뉴시스]

    “어린 강아지가 늑대 무리에 섞여 사는 동안 저렇게 돼버렸다.” 

    회사원 시절 아베 신조의 상사였던 인물이 총리가 된 아베에 대해 내린 평가다. 정치나 역사에 별다른 식견이 없던 인물이 제국주의 시절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로 미화하며 메이지 헌법 체제로 회귀하자고 주창하는 것에 대한 인상비평에 가깝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근 한국을 상대로 경제제재 칼을 꺼내 든 아베 정부에 대한 대책회의 회의석상에서 언급한 ‘일본회의의 정체’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본회의의 정체’ 일본어판(왼쪽)과 한국어판.

    ‘일본회의의 정체’ 일본어판(왼쪽)과 한국어판.

    그렇다면 그 철부지 강아지를 사납게 길들인 늑대무리는 누구일까. 먼저 ‘일본회의’라는 극우단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일본 주류 언론은 이 단체 관련 보도를 거의 내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해외 언론은 2차 아베 정부 3년째인 2014년 이후 이 단체에 대해 ‘극단적인 우파’(미국 CNN), ‘강력한 초국가주의 단체’(프랑스 르몽드), ‘국수주의적이고 역사수정주의적인 목표를 내세운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영국 이코노미스트)라는 분석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늑대 무리’로서 ‘일본회의’

    2018년 10월 개각을 단행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아랫줄 가운데)가 새 내각 각료들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2018년 10월 개각을 단행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아랫줄 가운데)가 새 내각 각료들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1997년 결성된 일본회의는 일왕 숭배와 신헌법 제정, 국방력 강화, 애국교육 추진 등 4대 목표를 내걸고 정재계와 종교·문화계 인사 1000여 명으로 발족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2017년 기준 전국 241개 지부와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지자체)에 본부를 둔, 회원 수 4만 명을 자랑하는 일본 최대 우익단체가 됐다.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전통에 기초한 부강한 일본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우익의 대본영’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일본회의의 영향력은 여기에 참여한 현직 정치인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일본회의 소속 국회의원 모임인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 의원 수를 보자. 참의원(상원·242석)과 중의원(하원·465석) 구별 없이 창립 당시 소속 의원은 115명이었다. 그러다 2018년 기준으로 전체 의원의 38%에 해당하는 268명으로 늘었다. 



    현재 아베 정부의 전체 각료 19명 중 15명이 여기에 소속돼 있다. 아베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는 이 간담회 특별 최고 고문이며,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과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성 대신은 부회장이다. 더 무서운 점은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해당하는 총리 핵심 참모진의 100%가 여기 가입돼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런 통계자료가 쏙 빠져 있다. 특히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 국회의원의 명단이나 숫자는 비밀이다. 일본회의 측에선 의원 개개인이 공격당하는 일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대지만 음습한 냄새가 나는 게 사실이다. 

    일본회의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들의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파고들 필요가 있다. 이 단체는 샤머니즘에 기초한 토종 종교단체 연합세력(‘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과거 제국주의 일본 시절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정재학계 연합세력(‘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의 변종 결합체로 탄생했다.

    ‘일본회의’에 감도는 사이비종교의 향기

    ‘생장의 집’ 도쿄 시부야 본부(왼쪽)와 ‘일본 우익 설계자들’ 한국어판. [위키피디아]

    ‘생장의 집’ 도쿄 시부야 본부(왼쪽)와 ‘일본 우익 설계자들’ 한국어판. [위키피디아]

    종교단체 연합세력이 먼저 태어났다. 1974년 결성된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다. 이들은 일왕의 연호를 뜻하는 원호(元號)를 법제화하자는 운동을 펼쳐 1979년 이를 관철시키며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 핵심 세력은 둘이다. 그중 하나는 샤머니즘에 기반한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로 일왕을 살아 있는 신으로 떠받드는 신도(神道) 세력이다. 8만 개나 된다는 일본 신사의 90%를 관장하는 신도청과 3대 신사로 꼽히는 이세신궁, 메이지신궁, 야스쿠니 신사의 신관들이 참여했다. 특히 도쿄 중심지에 엄청난 부동산과 도쿄 최대 예식장을 갖춘 메이지신궁의 자금력이 큰 역할을 했다. 

    또 하나는 ‘생장(生長)의 집’이라는, 이름도 낯선 신흥종교단체다. 메이지대 영문과를 중퇴한 다니구치 마사하루(1893~1985)가 1930년 세운 ‘생장의 집’은 사실 그가 생계 유지를 위해 발간하던 개인 잡지의 이름에서 출발했다. ‘질병 치유’와 ‘인생고 해결’에 도움을 주려는 그의 글들이 인기를 끌자 일종의 출판종교로서 변신했다. 그는 유명 인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여러 종류의 잡지로 신도를 끌어들였다. 신도를 ‘지우(紙友)’라고 부르는 연유다. 

    일본의 종교연구가들 사이에서 ‘괴물’로 평가받는 다니구치가 세운 이 종교 단체의 교리는 사이비종교 단체가 넘쳐나는 한국에서도 익숙하듯, 여러 종교 교리의 짬뽕이었다. 불교, 유교, 기독교부터 심령학과 정신분석학까지 넘나든다. 그로 인해 ‘칵테일 종교’ ‘종교 백화점’이라고 비판받았음에도 전후 교세가 정점에 달했을 때는 신도 수가 3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신도는 아니더라도 다니구치가 펴낸 잡지나 책을 열독한 이가 상당수였는데, 대표적 인물이 ‘포스트 아베’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는 이나다 도모미 자민당 정조회장이다. 

    문제는 다니구치가 그 무수한 종교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만교귀일’을 주장하며 그 하나로서 일왕 중심, 일본 중심을 내세웠다는 점에 있다. 그는 “대일본제국은 신국이며, 대일본 천황(일왕)은 절대적인 신, 대일본 민족은 그 적자”라면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고 열렬한 반공주의를 주창했다.

    ‘늑대 무리’의 수뇌부 ‘생학련’

    [kumamoto keizai, Kyodo News via AP, Kokushikan University]

    [kumamoto keizai, Kyodo News via AP, Kokushikan University]

    1945년 패배 이후 한동안 은인자중했지만 그 영향력은 점점 커졌고 1960~70년대 좌익학생운동에 맞서 ‘학원정상화운동’을 펼치던 우익학생운동 지도자의 상당수가 ‘생장의 집 학생회전국총연합’(생학련) 출신이었다. 좌익학생조직이던 전공투에 맞서기 위해 그들로부터 풀뿌리조직운동을 배운 이들은 이후 정계와 학계로 진출해 우익 논객으로 성장했다.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이들을 주춧돌로 삼아 1981년 결성됐다. 1970년대 우익학생운동 지도자였던 가바시마 유조(74) 일본청년협의회 회장, 아베 총리의 브레인으로 꼽히는 이토 데쓰오(72) 일본정책연구회 대표, 개헌론의 기수 모모치 아키라(73) 니혼대 교수,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다카하시 시로(69) 메이세이대 교수 등이다. 

    이들은 이시이 고이치로 전 브리지스톤 사이클 회장, 세지마 류조 전 이토추 상사 회장, 평론가 에토 준, 오하라 야스오 고쿠가쿠인대 명예교수 등 지명도가 높은 우익 인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청원운동 형식의 밑바닥운동을 조직해갔다. 우익 교과서 집필운동, 신헌법 제정운동, 전후 50년 국회 결의 반대운동 등이다. 그러다 1997년 1월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결성되자 우파 운동세력의 결집 차원에서 같은 해 5월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통합해 ‘일본회의’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일본회의의 주축이 생학련 출신이라는 점은 ‘일본회의의 정체’와 같은 연도(2016)에 일본에서 출간된 ‘일본 우익 설계자들’이 상세히 파헤쳤다. 생학련의 OB모임에 해당하는 일본청년협의회의 가바시마 유조 회장은 벌써 22년째 일본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역시 생학련 출신인 이토 데쓰오 일본정책연구회 대표는 2004년 당시 자민당 간사장을 맡은 아베를 우익방송인 채널 사쿠라의 개국기념 방송에 초청해 대담을 나누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보수 혁명을 담당하는 리더야말로 아베 간사장이 아니면 안 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당시 아베는 보수 혁명에 매진하겠다고 화답했고 일본회의의 지지 속에서 2006년 최연소 총리가 된다. 건강상 문제로 1년여 만에 물러났지만 2012년 다시 총리로 복귀하자 일본 언론은 이토를 ‘아베 정권을 탄생시킨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생장의 집’ 장학생이라는 점은 외면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문고리 권력’이라고 부를 만한 에토 세이이치(72) 총리 보좌관 역시 생학련출신이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여야 정치인들 앞에서 “과거 일본에선 한국을 매춘관광국으로 찾았다”고 발언해 논란을 부른 그는 ‘일개 보좌관’이 아니다. 일본 참의원 현역의원으로 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7년째 총리 보좌관을 맡고 있는 최측근이다.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간사장이기도 하다.

    ‘늑대 무리’의 ‘숨은 왕’

    [manabukai.org, 구글]

    [manabukai.org, 구글]

    한국에서라면 최고 권력자와 이렇게 밀접한 인맥으로 얽힌 조직은 집중 해부 대상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생학련 라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회의 라인’이라는 표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일본 우익 설계자들’의 저자 스가노 다모쓰는 이렇게 은폐된 생학련 인맥을 파헤치면서 그 핵심에 안도 이와오(80)라는 거물이 숨어 있다고 폭로했다. 

    안도는 고교 2학년 때 폐동맥협착증에 걸려 휴학하고 7년이나 폐인처럼 살다 ‘생장의 집’을 접한 뒤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교주인 다니구치의 ‘영적인 아들’로 대접받게 된 인물이다. 게다가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뒤 여섯 살 어린 가바시마 유조와 손잡고 1966년 일본 국립대로는 최초로 나가사키대에서 좌익학생운동을 물리치고 학원정상화를 쟁취한다. 그리고 우파학생운동의 전국 조직으로 1969년 결성된 ‘전국학생자치연락협의회’(전국학협) 넘버2인 서기장으로 있다 넘버1이던 스즈키 구니오 위원장을 밀실쿠데타로 제거하며 전국학협을 장악했다. 

    안도는 이후 철저히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가바시마 유조의 그림자가 돼 우익운동을 배후 조종해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스가노에 따르면 철저히 베일에 싸인 안도에 대해 취재하려 하자 “안도만큼은 포기해라, 건드리면 안 된다” “안도는 무섭다, 나는 말하지 않겠다” 같은 반응이 속출했다고 한다. 다니구치조차 특별 대접할 정도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마력과 추진력을 지녔다는 안도의 자택에선 매달 한 차례 생학련 출신 활동가 수뇌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가바시마, 이토, 모모치, 다카하시는 빠짐없이 그 회의에 참석해 직립부동의 자세로 안도의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 익명 제보자의 증언이다. 

    이는 1983년 이후 ‘생장의 집’의 이념적 변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교주인 다니구치의 데릴사위로 2대 교주인 다니구치 세초가 현실 정치와 절연을 선언하고, 그 아들이자 3대 교주가 된 다니구치 마사노부의 지도 아래 ‘생장의 집’이 좌파 생태주의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교단에 들어와 핵심 간부가 된 안도로선 교단의 지침을 위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장의 집’ 외곽 단체를 이끌다 독립해 나간 가바시마 등을 통해 초대 교주였던 다니구치의 정치적 이념을 비밀리에 전파, 실현시키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베 내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여러모로 닮았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 효과로 ‘보수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샤머니즘과 기독교를 결합한 사이비종교 교주 최태민 목사와 가깝게 지낸 이력이 있다. 그리고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라는 우익학생운동단체로 인연을 맺은 최 목사의 딸 최순실의 말을 따르던 소수세력에 의한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몰락했다. 

    아베 총리 역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이자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의 외종손이라는 점에서 일본 보수의 기대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일본회의가 신흥종교단체에 연루된 우익학생운동에 투신했던 ‘한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면?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스스로 허물고 군국주의 시절로 회귀하려는 그 작두춤이 그 종교 단체 깊숙이 숨어 있는 한 사람의 지휘 아래 이뤄지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는가.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