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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앉은뱅이밀, 금강, 조경, 백강이라고 들어봤나?

이름조차 몰랐던 ‘우리밀’의 고소한 매력

앉은뱅이밀, 금강, 조경, 백강이라고 들어봤나?

우리밀로 만든 네 종류의 빵으로 차려진 식탁. [사진 제공·김민경]

우리밀로 만든 네 종류의 빵으로 차려진 식탁. [사진 제공·김민경]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다. 그래서 학교 방학 때 휴가 가는 일이 드물다. 친구나 친척 아이들과 동행해봤지만 영 재미없는 어른으로 취급받기 일쑤인 데다, 우리까지 덩달아 여행지를 붐비게 만들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주로 봄가을에 휴가 계획을 세우고, 아이 대신 양가 엄마를 모시고 간다. 

이번에도 너무 더워지기 전에 고즈넉한 풍경을 벗 삼아 쉴 곳이 없을까 인터넷을 뒤지던 중 한 여행기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밀밭 풍경이었다. 봄바람에 너울너울 춤추는 보리밭이 아름다운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밀밭도 보리만큼 곱구나 싶은 찰나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보리는 봄에 수확해 여름에 제일 맛있게 먹는데 밀은 어떨까. 햅쌀, 햇보리 같은 햇곡식은 제때 구해 맛을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작물이건만, 햇밀은 다소 생소하다. 집에 있는 밀가루는 언제 수확했을까 궁금해져 포장을 살펴봐도 유통기한만 있을 뿐 수확, 제분 시기는 적혀 있지 않다. 밀과 밀가루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졌다.


단백질 함량 낮아 소화 잘 되는 앉은뱅이밀

우리나라에서 키운 네 종류의 밀(아래)과 이것으로 만든 빵. [사진 제공·김민경]

우리나라에서 키운 네 종류의 밀(아래)과 이것으로 만든 빵. [사진 제공·김민경]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어 지난 30여 년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사람이 하루에 밥 1.5공기를 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밥공기 수치를 보니 내 생활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양이다. 쌀을 대신한 건 주로 밀가루다. 밥 대신 빵이나 시리얼 한 컵을 택한다. 간편한 외식으로 국수, 수제비, 만두, 파스타 같은 밀가루 반죽 요리를 즐겨 먹는다. 

밀가루 요리는 내 손으로 빚어 먹는 일이 거의 없다. 쌀 소비량이 줄어들수록 질 좋고 맛 좋은 쌀을 수소문해 먹는 데 반해, 밀가루의 경우 소비율이 점점 늘어나도 소비자의 선택권은 거의 없다. 집에서 쓰는 밀가루는 쌀과 달리 보통 손에 잡히는 대로 산다. 대부분 미국산이나 호주산이고 가끔 국산인 경우도 있다. 

괜찮은 밀가루로 요리하고 싶다면 ‘우리밀’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밀은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밀을 가리킨다. 중부 유럽에서 주로 생산되는 스펠트밀 같은 외래종도 우리 땅에서 재배했다면 우리밀로 분류된다. 다만 우리밀과 토종밀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토종’은 우리나라 고유의 종자를 뜻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앉은뱅이밀’이 토종밀이다. 앉은뱅이밀은 2013년 국제슬로푸드생물다양성재단의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된 종자다. 맛의 방주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음식과 종자를 찾아 기록하고 널리 알리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다. 맛의 방주에 앉은뱅이밀이 등재된 것은 국내 유일의 토종밀이 위기에 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앉은뱅이밀은 이름처럼 키가 다 자라도 50~80cm로 작고 대가 단단하다. 덕분에 거센 바람이 불어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밀은 한번 쓰러지면 수확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앉은뱅이밀로 만든 가루는 일반 밀가루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낮아 소화가 잘 되는 편이다. 또 특유의 향이 강해 개성 있는 맛을 연출할 수 있다. 빵을 만들면 독특한 밀향이 짙게 나고, 국수를 빚으면 구수한 맛이 그만이다. 제분하고 남은 밀기울은 맛 좋고 효과 높은 누룩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된다. 

문제는 제분이다. 앉은뱅이밀은 알이 작고 껍질이 얇아 수확률이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는 앉은뱅이밀에 딱 맞는 제분기로 빻았을 때 이야기다. 알려진 바로는 경남 진주 금곡정미소에서 3대째 사용하고 있는 맷돌 제분 방식이 앉은뱅이밀에 알맞다. 얇고 까칠까칠한 껍질에 둘러싸인 작은 밀알이 거칠거칠한 맷돌 사이에서 바스러져 껍질이 벗겨지고 알은 갈린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롤러식 제분기에 앉은뱅이밀이 들어가면 압착, 분쇄되는 과정에서 껍질(겨)과 함께 알갱이(배젖) 일부까지 벗겨져 밀기울로 배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밀가루 양이 적어진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앉은뱅이밀을 대량재배하는 농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제분소에서 대형롤러를 한번 가동하려면 일정 양의 밀이 필요한데 그 양을 작은 농가가 맞추기가 쉽지 않다. 결국 앉은뱅이밀을 재배하는 농가는 자체적으로 제분기를 마련해 가루를 소량씩 만들어 포장한 뒤 판매까지 해야 한다. 앉은뱅이밀이 매스컴을 통해 유명해진 지 꽤 됐지만 소비자가 앉은뱅이밀가루를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이유다.


개량종도 우리밀, 성질 우수하지만 빵 만들기 어려워

황진웅 농부의 수확을 앞둔 앉은뱅이밀밭 (오른쪽)과 버들방앗간. [사진 제공·김민경]

황진웅 농부의 수확을 앞둔 앉은뱅이밀밭 (오른쪽)과 버들방앗간. [사진 제공·김민경]

생산량이 많은 우리밀로는 금강, 조경, 백강, 백중 같은 개량종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밀 종자가 재배되고 있지만 대체로 소량이다. 생산량이 많은 밀 종자임에도 앉은뱅이밀만큼 생소한 이름이다. 쌀은 고시히카리, 아키바리처럼 낯선 이름도 외우고 있는 반면, 앞에서 언급한 밀의 이름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밀가루는 품종별로 소비자에게 소개되는 경우가 없는데 밀이 갖는 고유의 특성보다 가루가 갖춰야 하는 성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산품처럼 판매되는 수입산 밀가루는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나뉘어 있어 목적에 따라 필요한 것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는 ‘다목적’인 경우가 많다. 매년 작황이 바뀌고, 제분에 따라서도 여러 밀가루가 섞일 수 있기 때문에 가루의 성질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우리밀의 장점은 방부제나 농약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이고, 단점은 밀가루의 성질을 미뤄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밀로 빵을 만들 때 애로사항은 더욱 도드라진다. 집에서 국수 반죽을 하거나 발효 없이 바로 케이크를 굽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발효 과정을 거쳐야 하는 빵을 만들려면 결과물이 들쭉날쭉하게 나온다. 우리밀로 빵을 만들어본 제빵사는 대부분 실패의 아픔과 금전적 손해의 쓴맛을 보게 마련이다. 

한국의 제빵 레시피는 유럽, 미국,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 많다. 유럽과 미국은 빵을 밥처럼 먹기에 그것에 알맞은 밀가루를 저마다 생산한다. 일본 역시 오랜 제빵 역사와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밀가루를 촘촘히 분류해 생산하고 있다. 수많은 제빵소와 제빵사가 외국산 밀가루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얼마 전 우리밀로 빵을 만드는 몇몇 전문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메뉴는 우리 땅에서 자란 네 가지 밀로 만든 네 종류의 빵이었다. 금강 밀가루를 바탕으로 토종밀인 앉은뱅이밀과 우리밀인 보르도밀, 레드파이프밀, 스펠트밀을 각각 섞어 만들었다. 빵은 저마다 개성을 지녔고 맛도 모두 좋았다. 여느 빵집에서 파는 식사용 빵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밀은 빵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빵 네 조각을 통해 말끔히 사라졌다.


우리밀을 사랑하는 사람들

충남 공주시 계룡면에서 토종밀 키우는 
‘버들방앗간’ 황진웅 농부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토종밀을 키우고 상품으로 판매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밀을 키우는 농사법은 토종이든 개량이든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품종의 특성을 살려 밀가루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소량씩 재배하는 밀은 농가가 직접 가루를 내고 포장까지 해야 한다. 잘 익은 밀알을 먹어보면 아주 작은 과일처럼 수분과 제맛을 갖고 있다. 밀알을 말려 가루로 만들지만 신선한 밀가루는 냉장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비자 역시 우리 같은 생산자의 농가 밀은 냉장해두고 먹는 편이 좋다.”


우리밀 제빵연구소 ‘더베이킹랩’ 운영하는
이성규 제빵사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우리밀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밀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수입 밀가루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밀로 빵을 만들어보니 맛이 충분히 좋았다. 밀에 대해 이해하려면 생산자와 나 같은 소비자가 가까워져야 한다. 그럼 생산지와 여러분의 식탁도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주간동아 2019.06.14 1193호 (p78~80)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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