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잔나비는 어떻게 방탄소년단에 맞설 수 있게 됐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로 한 달 가까이 음원차트 1, 2위 오르내려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9-05-20 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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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2014년 여름의 문턱, 나는 그해 8월 열리는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공연할 신예 뮤지션을 뽑는 ‘펜타포트 슈퍼루키’ 심사위원이었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10여 개 팀의 공연이 서울 홍대 앞 한 공연장에서 펼쳐졌다.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도 이 이벤트를 거쳐 첫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그해 참가팀도 쟁쟁했는데 세 팀이 뽑혔다. 

    리플렉스, 아즈버스, 그리고 잔나비. 앞의 두 팀은 전에 몇 번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입소문도 제법 난 상태였다. 잔나비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원숭이의 우리 옛말이라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막상 공연을 봤을 때의 느낌은 좀 더 생생하다. 전형적인 록도 아니고, ‘달달한’ 어쿠스틱 사운드도 아니었다. 팝의 뚜렷한 영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뻔한 가요 사운드도 아니었다. 이런 경우 보통 ‘개성이 강하다’고 표현하겠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뭔가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다른 팀에 비해 현장 관객의 호응이 좋았다. 이미 어느 정도 팬덤이 형성된 듯했다. 정규 앨범 한 장 없는 밴드에게 작게나마 견고한 팬덤이 존재한다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유독 그날이 기억나는 건 당연하게도, 5년이 지나 잔나비 신드롬이 일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높고 낮은 스타덤에 오른 밴드 가운데 잔나비가 상당히 특이한 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5월 14일 현재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에서 1, 2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경쟁 상대는 무려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다. 이 노래가 담긴 정규 2집 ‘전설’이 발매된 건 3월 13일. 차트 중위권으로 시작한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발매하고 약 한 달이 지난 4월 19일 첫 1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최정상권에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이돌그룹이나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혹은 이미 음원차트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음악인이 아닌 이상 차트 정상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어쩌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아이돌 팬덤을 중심으로 사재기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이른바 차트 역주행을 통해 정상에 오르는 어려운 일을 달성했거니와 사재기 의혹도 피해갔다. 강력한 기획사는커녕, 자신들이 세운 레이블 ‘페포니 뮤직’으로 활동하는 말 그대로 ‘쌩 인디 밴드’로서 극히 드문 기록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무 타는 재주 혹은 음악적 저력

    잔나비 1집 ‘Monkey Hotel’(위)과 
2집 ‘전설’.

    잔나비 1집 ‘Monkey Hotel’(위)과 2집 ‘전설’.

    차트 1위, 그리고 롱런은 2012년 결성 이래 꾸준히 이력을 쌓아온 그들로서는 화룡점정의 이벤트였다. 2집 앨범 발매 전인 2017년 말 3000석 규모의 단독 콘서트를 매진시킬 만큼 저력을 갖췄으니 말이다. 

    그 공연에는 이문세가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이문세의 최근 앨범 ‘BETWEEN US’에 담긴 ‘길을 걷다 보면’을 잔나비가 만들고 피처링한 것이 인연이 됐고, 이문세는 멤버들도 모르게 무대에 등장해 이 노래의 원곡격인 ‘그게 더 슬프잖아요’를 함께 불렀다. 

    1집 활동 중이던 2016년 11월에는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 출연해 자신들의 노래 외에 산울림의 ‘회상’을 김창완과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다. 김창완과 이문세,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목이자 각각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이정표 같은 인물들과 협연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들과의 교집합 지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 동시에, 잔나비의 음악적 원류를 유추할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김도형(기타), 유영현(키보드), 윤결(드럼), 장경준(베이스), 최정훈(보컬) (왼쪽부터) [사진 제공 · ⓒ페포니 뮤직]

    김도형(기타), 유영현(키보드), 윤결(드럼), 장경준(베이스), 최정훈(보컬) (왼쪽부터) [사진 제공 · ⓒ페포니 뮤직]

    초기 잔나비는 많은 모던 록 밴드 가운데 하나였다. 퀸, 콜드플레이, 마룬5 등의 영향이 짙었다. 흔하다면 흔한 음악에서 그들이 뚜렷한 색깔을 낸 건 2016년 1집 ‘MONKEY HOTEL’이었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 2년 전 펜타포트록페스티벌 심사에서 느꼈던 ‘아직 잘 모르겠는 무언가’가 말끔히 사라졌다. 

    데뷔 앨범을 기승전결이 뚜렷한 콘셉트로 꾸민 야심이 놀라웠다. 건반과 스트링, 브라스를 활용한 화려한 편곡으로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만드는 능력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멜로디 감각이 탁월했다. 중심이 되는 멜로디에 기타와 키보드가 서브 멜로디를 덧붙여 끝까지 귀를 붙잡았다. 싱글 지향의 곡과 앨범 지향의 곡이 공존했다. 이런 기조는 잔나비의 정체성이다. 

    2집 ‘전설’은 그들의 기존 장점을 강화하되 대중적인 감성을 덧붙인 수작이기도 하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1980~90년대 가요의 아련함을 모던한 서정성으로 재해석한 탁월한 싱글이라면 ‘나쁜 꿈’은 사이키델릭을 기반으로 한 대곡 지향의 노래다. 이런 노래는 그 시절 앨범 후반에 삽입돼 앨범을 듣는 이에게 감정의 최고조를 선사하는 데 쓰인 필살기였다. 말하자면 ‘전설’은 한국 옛 가요의 아련함에 1970년대 아트 록, 브리티시 포크의 유미주의적 서사가 만난 앨범이다. 타이틀곡과 다른 수록곡의 편차가 덜해 ‘노래’보다 ‘앨범’으로 소비되는 점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하겠다.

    요행을 믿지 않고 갖가지 재주를 부리다

    2016년 7월 인천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잔나비. [사진 제공 · 인천펜타포트음악축제조직위원회]

    2016년 7월 인천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잔나비. [사진 제공 · 인천펜타포트음악축제조직위원회]

    여기서 착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음악만 좋으면 대중이 알아준다고. 반만 맞다. 여기엔 요행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잔나비는 요행에 기댄 팀이 아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앞뒤를 가리지 않았다. FNC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인 최정훈, 그리고 나머지 멤버는 공격적이고 전략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밴드의 ‘가오’에 사로잡힌 적이 없었다. 오프라인에서는 버스킹, 온라인에서는 네이버 뮤지션 리그를 비롯한 각종 신인 발굴 프로그램에 출전해 꾸준히 팬을 만들었다. 

    방탄소년단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로 직접 생산한 콘텐츠로 팬과 소통한다는 점이 꼽히는데, 잔나비가 그렇다. 네이버 V LIVE를 통해 다양한 영상을 공개할 뿐 아니라, 팬들과 소통하며 곡을 쓰기도 했다. 단독 공연을 앞두고 유튜브를 통해 ‘떼창 포인트’를 알리는 레슨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좋은 음악과 공연, 즉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노력뿐 아니라 그 콘텐츠를 어떻게 알릴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행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최정훈이 출연했을 때 보여준 자연스러움은 어쩌면 오랫동안 쌓아온 카메라 앞에서의 익숙함에 기인한 것이리라. 

    그동안 밴드와 싱어송라이터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성공했다. 입소문을 타거나 TV 예능프로그램의 힘을 빌리거나. 장기하와 얼굴들에서부터 혁오까지 그랬다. 잔나비는 그런 시대에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 밴드도 음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미디어 홍보가 아닌, 셀프 프로모션을 고민해야 한다고. 활동, 그리고 콘텐츠의 누적이 결국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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